토지신에게 지내는 가을 제사秋社 其一/송宋 육유陸游
明朝逢社日 내일 아침 추사일 앞두고
鄰曲樂年豐 이웃들 풍년을 즐거워하네
稻蟹雨中盡 벼의 게 비 올 때 사라지고
海氛秋後空 바다 연무 가을엔 안 끼네
不須諛土偶 흙 인형에 아첨할 것 없고
正可倚天公 하늘에 기대는 게 딱 맞네
酒滿銀杯綠 술 가득 담긴 은잔 파란데
相呼一笑中 웃음 속에 서로 권해보네
이 시는 육유(陸游, 1125~1210)가 1191년 67세로 산음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동일 제목에 2편의 시가 있는데 그중 앞의 시이다.
사일(社日)은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로 봄과 가을에 2번 있으니 추사(秋社)는 가을에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올해는 지난 18일이다. 우리나라는 추석에 한해 농사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있고 밤에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의미도 있는 반면, 중국은 추석과 추사로 그 의미가 나누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춘사가 추사에 비해 훨씬 시문에 빈도수가 높은 것을 보면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마음이 농사가 잘 되어서 감사를 표하는 마음보다 더 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대개 사람들은 남에게 부탁할 때는 간절하지만 그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 그만 못한 경우가 많다.
도해(稻蟹)는 누런 벼와 통통한 게로 가을의 식도락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벼를 갉아먹는 해충으로서의 게를 말한다. 이런 게가 강남 지방에 나타나 농사를 망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해에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 이런 게가 어디로 다 사라지고 안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분(海氛)은 바닷가에 끼는 연무를 말한다. 이런 해무가 끼면 해가 안 보이고 해가 안 나면 곡물이 제대로 영글 리가 없다. 시인은 올해 벼농사는 병충해도 없고 일조량도 풍부해서 풍년이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연풍(年豐)은 연사(年事)가 풍등(豐登)했다는 말이다. 연사는 농사를 말하고 풍등은 곡식이 잘 여물었다는 말이다. 시화연풍(時和年豐)이라는 말은 일기가 순조로워 농사가 잘 되었다는 말이다,
‘흙 인형에게 아첨할 것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이 연재 45회에 보면 소식이 감자목란화(减字木蘭花) 사패(詞牌)로 지은 <입춘(立春)>이란 사에 ‘춘우춘장(春牛春杖)’, 즉 ‘입춘에 흙으로 만든 소와 쟁기를 든 농부’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입춘에 문간에 흙으로 빚은 소와 쟁기, 농부 모형을 만들어 놓고 그 옆에 좋은 글귀를 적은 깃발을 세워 풍년을 비는 것을 말한다.
육유는 이런 인형에게 빌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날씨를 관장하는 하늘에 기대는 게 바로 온당하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육유의 말은 인형 대신 하늘에 빌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비는 대상을 바꾼 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여기서는 하늘에 빌라는 말이 아니라 올해 해충도 멀리 사라지고 일조량도 좋아 풍년이 들어 감사하다는 마음의 표시이다. 이런 말이야 요즘도 풍년이 들면 농부들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말이 아닌가.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갓 거른 술을 은잔에 가득 담아 서로 왁자하게 웃고 건배를 외치며 지금 한잔 하는 것이다. 술잔에 담긴 술이 파랗다는 말은 갓 거른 술이기 때문에 그렇다.
풍년이 와서 감사를 표하는 추사일 전날 저녁 이웃 사람들이 모여 서로 한 잔 하라고 권하는 광경을 그린 시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풍년을 만나 그 감사를 표하는 절일(節日)을 앞둔 전날 저녁은 아마도 의미가 각별했을 것이다.
365일 한시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