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이상은李商隱 밤비에 북으로 부치며夜雨寄北

가을비에 북으로 부치며秋雨寄北/당唐 이상은李商隱

君問歸期未有期 언제 오나 그대 물음에 기약을 못하건만
巴山夜雨漲秋池 파산에 밤비 내려 가을 못물은 불어나네
何當共剪西窓燭 언제나 서창에서 촛불 심지 함께 자르며
卻話巴山夜雨時 파산의 밤비 내리던 오늘을 말하게 될까

이상은(李商隱, 812~858)의 이 시는 《당시삼백수》에 실려 있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배항방》에도 21위에 올라 있어 명실공히 이 시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 시는 이상은이 851년 40세에 동천 절도사(東川節度使) 유중영(柳仲郢)의 막부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시에서 파산(巴山)이라 한 곳은 바로 유중영의 막부가 있는 파촉 지역을 가리킨다.

이 시에서 가장 논점이 되는 것은 북(北) 자에 있다. ‘북’은 이 시를 받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가 이상은의 부인인지 친구인지 알쏭달쏭하다는 것이다. 연구자에 의하면 이 시는 그의 부인이 죽은 뒤에 지어진 시라고 한다.

이 시가 부인에게 보내는 시로 알려진 것은 예전부터 저명한 사람들이 그렇게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삼백수》에서도 그렇게 풀고 있다. 그런데 막상 이 시에서 유래한 전촉서창(剪燭西窓)이나 파산야우(巴山夜雨) 등을 활용한 후대의 시를 보면 대개 비 오는 날 친구 사이의 정을 말할 때 구사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필자가 보기에도 첫 구의 군(君)과 3구의 서창(西窓) 등의 시어는 아내보다는 친구에게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왜 이 시를 아내에게 보내는 시로 본 것일까? 우선 이상은의 시풍을 잘 살펴보지 않아서이다. 이상은은 이처럼 매우 섬세한 시에 능한 사람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인상 비평이 강하여 여러 문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 예전의 저명한 학자들 주석에 오류가 발견되고 대가들이 번역한 것에 맥락에 닿지 않는 말이나 오역이 있는 것은 여러 문헌을 교차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후인들이 선배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대개 많은 문헌을 참조하고 검색 환경이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생활환경이나 언어 환경이 예전과 매우 판이하고 사고방식도 서구화되었기 때문에 한시의 상황을 바로 지금의 관점이나 언어 감각으로 이해하여 많은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번역도 그렇지만 시를 설명하거나 논리를 전개할 때 보면 전혀 엉뚱한 말을 하는 경우를 왕왕 만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시에서는 공감 능력이나 언어적 감수성이 매우 중요한데 한시의 경우 그 한자 어휘에 대한 어감이나 사용하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조금만 응용하려 해도 말이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이상은의 시는 그런 우려를 잘 보여줄 정도로 시어의 선택에 치밀함이 있다.

가령 ‘창(漲)’ 한 자만 보아도 표면적으로는 가을비에 못물이 불어난 것이겠지만 친구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그 속에 절절하게 담고 있다. 또한 ‘파산야우(巴山夜雨)’를 중복해 써서 시의 격식을 깨고 언어의 경제성과 맞지 않아 보이지만, 지금 가을비 내리는 파산을 과거로 만들고 친구와 만나는 미래의 서창을 현재로 읽게 하여 시공을 전환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하여 나에게 편지를 보낸 친구는 물론 나 자신도 위로하는 한편 가을비의 서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전(剪)’은 촛불의 불똥을 잘라내어 불을 돋우는 것을 말한다. 가끔 박물관에서 촛불의 심지를 자르는 촉전(燭剪)을 볼 수 있다.

明 文徵明 《山水詩話冊》, Metropolitan Museum of Art

365일 한시 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