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가을의 저녁 산보秋涼晩步/송宋 양만리楊萬里
秋氣堪悲未必然 가을 기운 슬프단 말 꼭 그렇지도 않으니
輕寒正是可人天 약간 쌀쌀한 건 바로 사람에게 맞는 날씨
綠池落盡紅蕖卻 녹색 연못의 붉은 연꽃 모두 다 지더라도
荷葉猶開最小錢 연잎은 오히려 가장 작은 동전처럼 피거니
양만리(楊萬里, 1127~ 1206)의 시이다. 이 분의 시는 쉬운 말로 시를 쓰면서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데 이 시 역시 그런 면모를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봄은 호생지덕(好生之德), 즉 생명을 살리는 덕이 있어 다소 들뜨고 인애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가을은 숙살지기(肅殺之氣), 즉 생명을 죽이는 기운이 있어 쓸쓸하고 슬픈 감정을 흥기한다. 많은 문인들은 대체로 그런 면을 시문에 부각하였다. 그런데 이 시인이 보기에 가을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오히려 가벼운 한기는 사람에게 알맞은 날씨라고 한다. 여기서 가(可)는 ’가합(可合)하다‘의 의미로 요즘 말로는 알맞다는 뜻이다. 이 말 역시 이치에 닿고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 금방 수긍이 된다.
시인은 자기가 한 말에 대한 구체적인 경물을 언급한다. 저녁에 산책할 때 자주 보는 광경일 것이다. 가을이 되어 연꽃이 모조리 다 졌지만 다시 어린 연잎들이 아주 작은 동전처럼 수면에 피어나고 있다고 한다. 시인이 보기에 그 연잎의 아름다움이 연꽃에 못지않기 때문에 이 경물을 선택했을 것이며, 가을이 슬프지만은 않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울러 연꽃이 시들어 떨어진 곳에 새 생명이 눈을 뜨는 것은 새로운 희망의 비유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가장 작은 동전같은 어린 연잎의 구체적인 아름다움에 공감하지 않고서는 이 시의 추상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문을 자꾸 하면 모르는 것이 줄어들어야 할 텐데 아는 것이 늘어나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비율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시 역시 그런 면이 있어 나름대로 노력해서 아는 것을 상당히 축적한 것 같은데 모르는 것이 더욱 많이 생긴다. 이 연잎 역시 그렇다. 아마 남송 시인이라 강남을 배경으로 쓴 시이기 때문일까? 강남 지역에는 늦가을에 다시 어린 연잎이 나는 모양인데 나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잘 아는 분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학자들이 왜 저렇게 바쁜지 알 것도 같다. 모르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허겁지겁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 시인의 말처럼 가을이 꼭 슬프지만은 않듯이 바쁘게 공부하며 사는 삶도 나름대로 행복하다면 행복한 삶일 것이다.
다만 시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어 오래 책을 보게 되기를, 그리고 몸이 건강하여 가 보고 싶은 곳을 가 보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많은 곳을 가 보고 많은 작품을 감상한 힘이 있어야 나중에 와유(臥遊)라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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