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中秋/당唐 사공도司空圖
閑吟秋景外 가을 풍경 한가히 읊는 것 외엔
萬事覺悠悠 만사가 다 부질없이 근심스럽네
此夜若無月 오늘 밤에 보름달마저 없었다면
一年虛過秋 올해 가을을 헛되이 보내었으리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 외에 진정으로 삶의 보람과 환희,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복잡하고 다급하며 마음 졸이던 그 수 많은 일들이 지나고 보면 한바탕 바람이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이따금 아름다운 추억으로 호명되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유유(悠悠)는 우리 말에 부사 ‘유유히’에서 보듯이 느긋하고 한가로운 것을 표현하거나 아주 아득히 오래된 것을 가리킬 때도 쓰이지만, 한문에서는 대체로 어떤 생각을 계속하거나 무슨 걱정을 할 때 이 말을 쓴다. 여기서도 어떤 일에 집착해 생각하거나 근심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시인은 만사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하고 생각도 많은데 유일한 낙이라곤 가을 풍경을 시로 읊는 것이라 한다. 필자 역시 평소엔 맡고 있는 일과 공부로 바빠 이런 시를 외우고 해설하는 게 하나의 낙이다.
바쁜 가운데서도 어떻게 짬을 내 좋은 전시를 보거나 의미 있는 곳을 답사하거나 외국 여행을 하면 그게 나중에도 남고 또 새로운 삶의 에너지도 된다. 다만 나의 이런 행동은 세속의 욕망이란 그물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어찌 오늘 보름달이 있어 그나마 올가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고 하는 이 시인의 격조에 미치기나 하겠는가? 삶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이 없이 어찌 이런 근사한 말을 한단 말인가?
이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내일 보름달이 뜰 때 정다운 사람들과 한 잔 술과 차를 나누며 좋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혼자라면 또 그 나름대로 달과 친구가 되거나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공도(司空圖, 837~908)는 자는 표성(表聖), 호는 지비자(知非子), 내욕거사(耐辱居士)로, 지금의 산서성 영제(永濟) 사람이다. 사공도는 주로 시론가(詩論家)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을 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진위 논쟁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어느 한 쪽에서 완전히 승복하지는 않고 있다. 시의 풍격을 24개로 설정하고 그 특징을 시로 읊고 있는데 한시 뿐만 아니라 회화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365일 한시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