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유원 樂遊原/당唐 이상은李商隱
向晚意不適 저물녘 기분이 좋지를 않아
驅車登古原 수레 몰아 옛 언덕에 오르네
夕陽無限好 석양이 더할 수 없이 좋으니
只是近黃昏 다만 황혼이 가깝기 때문이네
낙유원은 한나라 때 낙유묘(樂遊廟)가 있어 낙유원(樂遊苑)이라 불리던 곳으로 장안 동남쪽에 위치하여 근처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장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라 한다. 그 때문에 장안의 사녀(士女)들이 3월 3일이나 9월 9일 등에는 이곳에 많이 올라오는 곳이다. 시에서 옛 언덕이라 한 것은 이곳의 역사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상은(李商隱, 813~858)은 하남성 심양(沁陽) 출신으로, 자는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溪生)인데, 두목(杜牧)과 함께 만당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다만 46세로 일찍 작고하였다.
이 시인의 시는 매우 낭만적인 데다가 우수가 어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144회에서 소개하였는데 그는 당시 두 당파에 여러 인연으로 휘말려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부적(不適)이라는 말은 자신의 마음에 현실이 부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천자문》에서 내 입에 음식이 맞아 배불리 먹는 것을 적구충장(適口充腸)이라 한 것이 그런 예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답답할 때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가슴이 좀 풀린다. 시원한 바람은 기분을 바꾸어 준다.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힘을 얻게도 된다.
이 시에 묘사한 것도 별로 좋지 않은 기분 상태에서 낙유원으로 수레를 몰고 가 장안을 내려다보면서 황혼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고 마는 것은 시를 산문처럼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는 마지막 부분이 ‘석양은 무한히 좋지만 다만 황혼이 가까워 이런 풍경을 더 못 보는 게 아쉽다.’는 의미가 된다. 그럼 석양무한호(夕陽無限好) 나 (로되) 지시근황혼(只是近黃昏)을(이라)로 토를 붙여야 한다.
그런데 이 시를 여러 번 보니 석양무한호(夕陽無限好) 하니, 지시근황혼(只是近黃昏)을(이라)로 토를 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즉 석양이 무한히 좋으니 그 이유는 황혼이 가깝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지시(只是)라는 말도 ‘다름이 아니라’나 ‘다만 ~ 때문이다.’의 의미이다. 이렇게 보면 드디어 황혼이 무한한 감상을 자아내는 시어임을 느끼게 된다. 첫 구에서 왜 저물녘이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자연히 해명된다.
청나라 주이존(朱彛尊) 등 석학들은 이미 이 시를 당의 멸망을 예감하는 시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이 시의 황혼을 바로 당의 쇠락으로 본 것이다. 기윤(紀昀) 역시 이 시를 자신의 신세 한탄으로 봐도 되고 시사(時事)를 근심하는 것이라 봐도 된다는 견해를 드러낸 바 있다.
내가 볼 때 이 시는 정말 이상은다운 섬세함과 우수가 결합된 작품으로 신세 한탄, 늙음의 탄식, 한 세상의 몰락 등을 다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기윤이 온갖 생각이 아득히 한꺼번에 모여든다[百感茫茫, 一時交集]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시를 이렇게 보지 않으면 단순히 황혼을 감상한 시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은의 시풍을 볼 때 그가 단순히 이런 시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365일 한시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