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야계에 들어가서入若耶溪/남북조南北朝 왕적王籍
艅艎何泛泛 배가 어쩌면 이리도 잘 떠가나
空水共悠悠 하늘과 물이 함께 아득하여라
陰霞生遠岫 구름은 먼 산봉에서 생겨나고
陽景逐回流 햇빛은 굽이치는 물결 따르네
蟬噪林逾靜 매미 울어 숲은 더욱 고요하고
鳥鳴山更幽 새가 울어 산은 더욱 유정하네
此地動歸念 이곳 풍경 은거할 마음 동하니
長年悲倦遊 오랜 세월 따분한 벼슬 슬프네
약야계(若耶溪)는 소흥의 회계산 아래 있는 골짜기이다. 60회에서 왕유의 <산새 우는 골짜기[鳥鳴澗]>, 196회에서 이백의 <자야오가 · 여름 노래[子夜吳歌·夏歌]>가 모두 이 계곡을 무대로 삼은 것이다. 이 계곡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서시(西施)이다.
약야계는 약야산에서 흘러나와 남에서 북쪽으로 흘러가고 지금 시인은 배를 타고 그 물을 거슬러 상류로 가고 있다. 배가 장애물이 없이 잘 가고 있어 그 기쁨을 표현한 것이 첫 구이다. ‘하범범(何泛泛)’, ‘어쩌면 이리도 배가 둥실둥실 잘 가는가!’라는 말에 작가의 즐거운 기분이 드러난다. 배에서 상류를 바라노니 하늘과 물빛이 어우러지며 아득히 펼쳐 있다. 아무런 걸리는 것도 없이 툭 터인 공간! 이것을 유유(悠悠)라는 말에 담았다. 시인의 해방감이 느껴진다.
음하(陰霞)라 한 것은 산의 북쪽 면, 즉 뒷면에서 구름이 피어나기 때문이며, 내려오는 물이 바위에 부딪쳐 도는 것을 회류(回流)라 표현하고 있다. 저 멀리 약야산 어느 봉우리에는 구름이 피어나고 배가 가는 앞에는 햇빛이 물결에 비치고 있다. 구름과 햇살을 생명체인 듯 표현한데서 시인의 사물 감각이 느껴진다.
5, 6구가 가장 압권인데 전인들의 시를 계승하여 움직임으로 고요함을 드러내는 이동현정(以動顯靜)의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즉 매미와 새들의 울음소리를 드러내어, 이 산에는 오직 그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원시의 적막이 감돌고 있는 그윽한 탈속의 공간임을 드러내고 있다. 왕유의 시에서 ‘한가한 마음 계화는 떨어지고[人閑桂花落]’라고 한 것과 달이 뜨자 산새들 깜짝 놀라[月出驚山鳥]라고 한 구절이 밤중의 고요함을 드러낸 것이라면 이 시는 한 낮의 고즈넉함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옛날의 작품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을 알고 새롭게 창조하면서도 법도가 있어야 한다[法古而知變, 刱新而能典]’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에 자신의 최종적인 감정을 서술하였다. 약야계에 와 보니 오랫동안 관직에 얽매여 산 것이 슬프기만 하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직장이나 어떤 단체에 매여 살 때에는 여기서 나가면 인생이 끝날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막상 나가서 정말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일과 삶을 찾게 되면 그동안의 삶이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삶의 조건은 다르지만 삶의 본질은 시대를 초월하여 통한다는 평범한 생각을 다시금 절실히 되뇌게 된다.
왕적(王籍)은 남조 양(梁)나라 때의 시인으로 사령운(謝靈運)의 시를 배운 사람이다. 문재가 있었으나 뜻을 크게 펴지 못하였는데 《남사(南史)》의 <왕적전(王籍傳)>에는 공자에게 좌구명이 있고 노자에게 장자가 있는 것과 같다고 평가하였다. 왕적은 이 시 한 수로 중국 문학사의 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이 시는 뛰어난 산수시로 평가된다.
365일 한시 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