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낮에夏晝偶作/당唐 유종원柳宗元
南州溽暑醉如酒 남쪽 고을 무더위는 술에 취한 것만 같아
隱几熟眠開北牖 북쪽 창 열어 놓고 안석에 기대 푹 자네
日午獨覺無餘聲 한낮에 홀로 깨니 다른 소리는 전혀 없고
山童隔竹敲茶臼 산골 아이 대숲 너머에서 차를 빻고 있네
이 시는 유종원(柳宗元,773~819)이 영주 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된 지 3년째로 접어든 807년 35세 때 지은 작품이다.
영주는 남쪽이라 북방에 살던 유종원에겐 더 덥게 느껴졌을 법 하다. 온도만 높은 것이 아니라 습도도 올라가니 무더위에 사람이 술에 취한 것만 같다. 어쩔 수 있나. 북쪽 창문을 활짝 열어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통하게 해 놓고 안석에 기대 그냥 마음 편히 잔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콩닥 콩닥 대숲 저편에서 차를 절구에 넣고 빻는 소리만이 들릴 뿐, 여름 한낮은 적막 속에 잠겨 있다.
차를 빻는 소리로 여름 한낮의 적막을 드러내었다. 당시 차는 말차 형태로 마셨다. 봄에 찻잎을 따서 찐 다음 떡처럼 만들어 보관했다가 마실 때마다 불에 구워 곱게 빻아 탕으로 끓이는 방식이다. 지금 절구질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그 차 덩이를 불에 구워 절구에 넣고 가루를 낼 때 나는 소리이다. 오후에 나른한 상태로 깨어났을 때 차를 준비하는 소리가 쿵 쿵 들리다니! 술에 취한 것 같은 무더위도 이 차 한 사발이면 다 날라 갈 것만 같다.
술에 취한 것 같은 무더위를 절구에 차를 빻는 소리로 이겨내는 유한(幽閑)한 시경(詩境)을 연출하여 특유의 정취가 감도는 산골의 여름 산수화 한 폭을 그려보이고 있다.
365일 한시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