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잡시 5 己亥雜詩 其五/청淸 공자진龔自珍
浩蕩離愁白日斜 해는 뉘엿뉘엿 이별 슬픔 호탕한데
吟鞭東指即天涯 동쪽으로 채찍질 하니 곧 천애인 듯
落紅不是無情物 붉은 꽃잎은 본래 무정하지 않으니
化作春泥更護花 봄 진흙 되어 다시 꽃을 보호하리라
공자진(龔自珍, 1792~1841)은 항주 사람으로 청나라 말기에 변법혁신 운동을 벌인 인물로 강유위(康有爲)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시는 도광 19년(1839)년 기해년 4월 23일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시이다. 즉 조정에서 어떻게 해 볼 수 없어 낙향하는 상황에서 지은 것이다.
공자진의 시풍은 굴원과 이백 등을 계승하여 기개가 호방하고 감정이 충일한 특징이 있다. 이 시에서도 좌절의 애상보다는 호방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여기서 호탕하다는 말은 시인이 20년 이상 산 북경을 떠나면서 만단정회가 물처럼 마구 솟구쳐 흐르는 것을 말한다. 해가 기울고 있으니 그러한 감정은 고독감과 함께 더욱 북받친다. 음편(吟鞭)은 시인의 말채찍이고, 동지(東指)는 동쪽을 가리키는 것이니, 동쪽에 있는 고향 항주를 향해 말을 몬다는 말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좋을 텐데 왜 천애(天涯)라 하였을까? 이 사람은 사회를 바꾸려하는 마음을 먹고 있기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과 멀어진다는 절망감이 이런 표현을 낳았을 것이다.
말을 타고 길을 떠나는 이 시인의 주변에 분분이 꽃잎이 날린다. 떨어진 꽃잎에서 실의나 좌절에 머물지 않고 다시 한 가닥 희망을 품어 본다. 이 꽃잎이 다시 내년에 봄 흙이 되어 꽃을 피우는데 자양분이 되리라.
이 시인의 말처럼 강유위 등에게 영향을 끼쳤으니 세상에서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항주로 돌아간 공자진은 서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하니 계속 내일의 희망을 열어간 것이다. 이 시는 좋은 뜻을 품은 사람이 그 뜻을 어떻게 이어가는지, 우리가 어떤 문화 현상이나 작품을 바라볼 때 통시적인 연속성을 왜 생각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365일 한시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