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얼시劉二囍
글쟁이, 건축기사, 광저우 1200북숍의 설립자. 본서 외에 저서로 《청춘은 일장춘몽》, 《열여덟 개의 중국》, 《천국은 서점의 모습이길》, 《타이완을 계속 걷다》가 있다.
<서문: 8월의 마지막 날, 서점과의 이별>
1200북숍 티위동로(體育東路) 지점에는 시류에 맞지 않는 낡은 책꽂이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홍풍엽’(紅楓葉)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다.
홍풍엽서점에서 온 그 책꽂이는 사실 유물이다.
1998년 문을 연 홍풍엽서점은 광저우(廣州)의 유명한 독립서점으로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상주의적 성향의 주인, 장량주(張良珠) 선생은 본래 은행원이었는데 책에 대한 사랑으로 사직 후, 무려 16년간 열심히 서점을 운영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장 선생의 충실한 고객이 됐으며 홍풍엽서점도 광저우의 지식인들이 가장 먼저 추천하는 서점이 되었다.
2008년부터 서점업계가 침체하면서 홍풍엽서점은 손실을 보며 경영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하지만 장량주 선생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바꿔가며 서점을 지키면서 다른 수입으로 손해를 메웠다.
2014년, 장 선생이 급환으로 별세하자 홍풍엽서점은 누적된 부채로 인해 인수할 사람이 없어 곧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서점을 이어받기 위해 우리는 장 선생이 남긴 책을 전부 남겨 놓고 철거 현장에서 일부 책꽂이를 구해냈다.
홍풍엽서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우리는 그 책꽂이를 1200북숍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천국은 서점의 모습이길》 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데 그 제목은 장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홍풍엽서점의 물품을 나르는 문제 때문에 나는 장 선생의 부인인 장 여사와 몇 차례 만났고 그녀의 남편과 가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서툴고 성격이 대단히 소박한 그녀는 문예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책과 서점은 오로지 남편의 일이었을 뿐, 자기는 도울 수도, 참견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서 서글픈 감정을 느꼈으며 그녀의 수척한 몸과 희끗희끗한 머리는 힘들게 생활의 무게를 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장 선생은 십여 년간 서점을 경영하면서 가족에게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제공하지 못했고 마지막 몇 년은 심지어 살림을 축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와 딸은 더 깊은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장 여사에게 서점 일은 훌륭한 일이기는커녕 피해야 할 일이었다. 나중에 딸이 서점을 열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말리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슬픔을 느꼈다.
당시 장 선생의 딸은 열다섯 살이었고 막 중학교를 졸업한 상태였다. 나는 아버지의 삶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또 그녀가 서점을 어떻게 생각하고 나중에 자기 아빠가 힘들게 지탱한 서점을 다시 열 의향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그 훌륭한 일이 계승될 수 있기를, 전염병처럼 기피되지 않기를 너무나 바랐다.
그 후로 나는 설날에나 한 번씩 연락해 인사를 했을 뿐, 장 여사와 만날 일이 없었다. 그녀가 몇 번 서점에 왔지만 역시 마주치지 못했다.
금년 6월, 갑자기 장 여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딸을 여름방학 아르바이트생으로 써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딸이 막 수능이 끝나서 할 일을 찾아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3년의 시간이 흘러 그 꼬마 아가씨가 벌써 열여덟 살의 성인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학교 졸업생이 곧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나는 바로 입바른 소리를 하고 말았다.
“따님이 서점 일을 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녀는 전화 저편에서 잠시 우물쭈물하며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분명 그녀가, 옛날 서점과는 전혀 다른 1200북숍의 새롭고 활기찬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 앞에서 몇 번이나 찬탄을 했었다. 아마도 1200북숍이 그녀의 마음을 바꾸고 서점에 관한 편견을 해소시켜주었을 것이다.
나는 얼른 화제를 바꿔 그녀에게 언제든 딸을 서점으로 보내라고, 잘 준비를 시켜놓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흥분했다. 닫혔던 문을 마침내 열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점 각 부서의 책임자들에게 그녀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서점에 있는 두 달 동안 더 많은 수확을 거두고, 서점의 여러 가능성을 확인하고, 서점이 쇠퇴해가는 존재가 아니라 얼마나 훌륭한 존재인지 알게 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서점을 사랑하게 되기를, 나아가 그녀가 자기 아버지처럼 서점을 열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기를 바랐다. 나는 홍풍엽서점이 계속되는 것이 장 선생의 소망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7월에 그녀는 서점에 와서 일을 시작했고 두 달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8월의 마지막 날은 그녀가 서점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사흘 뒤 그녀는 광둥재경대학(廣東財經大學)에 가서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그녀와, 그녀처럼 이튿날 떠날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아래의 사진이 남았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서점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늘 내 앞에서 조심하고 어색해했던 그녀가 갑자기 힘껏 내 팔을 잡은 그 순간, 나는 내가 답을 얻은 것을 알았다.
나는 믿는다. 8월의 그 마지막 날이 그녀의 서점에서의 마지막 날일 리는 없다는 것을. 안녕, 다시 만나.
<한국어판 서문>
우선 오해를 피하기 위해 1200북숍이 다 24시간 서점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둬야겠다. 현재 광저우에서 1200북숍은 모두 여섯 곳이 있지만 그중 세 곳만 24시간 영업을 한다.
톈허북로(天河北路) 460호에 위치한 톈허북로점은 그 세 곳 중 하나다. 이 서점 주변에는 주택 단지가 무척 많은데 그중 몇 군데는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빈번히 한국인들과 마주치며 특히 심야 시간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중국어 공부를 하는 광경을 보곤 한다. 그들은 중국에 녹아들며 중국과 한국 간 문화소통의 교량이 되고 있다. 언젠가 나는 그저 방관자로서 강가에 서서 그 교량을 바라만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내 자신이 교량의 나사못 하나가 되었다.
한국의 출판사가 이 《서점의 온도》라는 책을 출판하려 하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한국의 독자들로 하여금 서점의 시각으로 중국의 상황을 이해하게 하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쓴 이 책이 곧 한국어로 번역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첫 느낌은 이랬다. 만약 1200북숍 근처에 사는 한국인 독자들이 서점에서 그 번역서를 들춰본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마침 며칠 전, 요요라는 내 친한 친구가 한국 남자와 결혼해 광저우를 떠나 한국으로 갔다.
나는 그녀가 틀림없이 한국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을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녀에게 안부를 전하고 한국에서 즐거운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광저우에 사는 한국인 독자들도 광저우에서 즐거운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1 양둥楊東: 서점의 아이書店童年
티베트의 승려 창양자춰(倉央嘉措)는 말하길, “사람은 몇 가지 비밀을 감춰야 교묘하게 일생을 살 수 있을까?”라고 했다.
심야의 서점에서는 비밀과 비밀, 인생과 인생이 마주친다. 이곳은 인간세상의 축도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마주쳐도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즐겨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며 그들과 벗하며 몇날 며칠을 보낸다. 그러고서 우리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채 이 인간세상에서 서로를 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운명적으로 잘 잊히지 않는다. 양둥(楊東)이라는 아이도 그렇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애가 내게 일 위안을 빚진 것이다.
*
2014년, 나는 광저우에서 24시간 서점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 전에 나는 류윈(六運) 구역에서 커피숍 두 곳을 열었고 운이 좋아서 가짜 문학청년들이 꿈에도 그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낮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햇볕을 쬐고 밤에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가끔씩 옛날 건축디자인대학원에서 힘들게 밤을 새며 도면을 그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살며시 한 가닥 기쁜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들은 내가 서점을 연다는 얘기를 들으면 당장 호들갑을 떨었다.
“서점을 연다고?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너, 평생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돼?”
“오늘 나오다가 거울은 봤어? 술집이나 드나들게 생겨놓고 서점을 연다고?”
사람이 못 생겼으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진리다. 결국 2014년 7월, 술집, 아니 서점을 개장했다. 왜 서점을 열었고, 왜 24시간 서점이어야 했고, 또 왜 이름을 1200북숍이라고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사연이 길다.
당연히 개장 직후에는 한동안 두려웠다. 제길, 진짜 밤에 사람이 아무도 안 오면 체면이 말이 아닐 텐데.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술집을 드나들지?
하지만 다행히도 그 후로 밤에 오는 손님들의 숫자가 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매일 밤 제길, 진짜 수십 명의 사람이 서점에 와서 밤을 보냈다.
그들 중 누구는 트렁크를 끌고 와서 “아침 비행기를 타려면 여기 와서 앉아 있는 게 편해요.”라고 진심 어린 눈으로 말했다.
또 누구는 아예 옷 보따리를 싸들고 왔다. 예를 들어 한 노인은 매일 서점의 무료 독서코너에 앉아 벽돌처럼 두꺼운 사전들-프랑스어사전, 러시아어사전, 스페인어사전 등등-을 연구했다. 머리가 온통 백발인 그는 그야말로 중국의 마르크스 같아서 보기만 해도 존경심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하지만 마르크스처럼 앉은 자리를 구멍 내기 전에 그는 다른 독자들에게 신고를 당했다. 알고 보니 그 마르크스는 옆에 앉은 사람의 컵라면을 훔쳐 먹었던 것이다.
구석에 누워 슬픔에 젖어 있는 아가씨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다가가 어색하게 몇 마디 물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싸우고 헤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갈 데가 없어 부득이 여기 와서 밤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그녀를 위로하면서 그래도 그녀가 있을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손을 꼽아보면 빌어먹을, 적어도 수만 명은 우리 서점에서 잠을 청했을 것이다.
물론 낮에는 자동차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밤에는 온갖 조명이 휘황찬란한, 인구 천만이 넘는 이 광저우에서 그것은 아주 소소한 일일 뿐이다. 그리고 그 천만 명은 쓰촨 연극의 ‘변검(變臉)’처럼 끊임없이 역할을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깊은 밤이 되어야만 ‘자기’라는 이름의 역할로 무대에 오를 기회를 가질 것이다.
내가 몇 명 안 되는 관객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행운인 셈이었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그 다채로운 연극을 관람하면서 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 단지 소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은 몇 가지 비밀을 감춰야 교묘하게 일생을 살 수 있을까?”라는 창양자춰倉央嘉措의 시구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서점은, 깊은 밤일수록 더 인간세상과 흡사하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마주쳐도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몇날 며칠 밤을 동행하며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는 것보다 서로를 잊는 것이 더 낫다는 이치를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두 가지 의문이 있다.
다들 무료 독서코너에 앉아서 그래도 살 만한가요?
서점에서 반년을 넘게 머무르며 당신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죠?
**
이 두 가지 의문에 다 해당되는 선구자는 바로 양둥이었다. 서점을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오가는 손님들 중에서 그 아이에게 눈길이 끌렸다.
그 애는 겨우 열 살이 조금 넘었고 사과처럼 동그란 얼굴에 가늘고 긴 눈을 갖고 있었다. 또 눈썹은 성글고 코는 컸으며 앞머리와 푹 꺼진 콧마루의 높이가 가지런했다. 그래서 온순하고 귀염성이 있어서 누구에게도 악의가 없어보였다. 당시 그 애는 자주 모습을 보였고 금세 손님들은 그 애만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했다.
“아유, 꼬마아가씨, 너무 예쁘네. 올해 몇 살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방금 마신 물을 뿜어낼 뻔했다. 하지만 양둥은 자기가 남자아이라고 해명하지 않고 씩 웃으며 답했다.
“올해 열두 살이에요. 누나도 정말 예쁘세요.”
나는 얼른 그 누나를 곁눈질했다. 엄마야, 누나는 무슨 누나. 그야말로 진짜 내 엄마가 되고도 남지 않는가. 내가 놀라는 사이에 그 꼬마 녀석은 이미 몇 마디 말로 그 ‘누나’를 홀려, 자기를 데리고 먹을 것을 사주러 나가게 만들었다.
본래 나는 그 애가 손님이 데리고 온 아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밤이 깊어진 뒤에도 그 애는 무료 독서코너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당연히 이상한 일이어서 나는 다가가서 물었다.
“꼬마야, 너 왜 집에 안 가니?”
“아저씨, 저도 이름이 있거든요. 양둥이라고 해요.”
“…… 알았다. 양둥, 시간이 늦었는데 네 엄마 아빠는 어디 계시니?”
“엄마 아빠는 지금 집에 안 계셔요.”
이튿날 낮에 내가 다시 서점에 갔을 때 양동은 여전히 거기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휴대폰을 갖고서 놀고 있었으며 옆에는 우육탕 사발면이 놓여 있었다. 휴대폰은 다른 손님의 환심을 사 빌린 것이었고 사발면은 아침에 ‘점장 형’이 쓰레기 버리는 것을 도와주고 얻은 것이었다.
나는 그 애의 높은 EQ에 탄복하며 은근히 떠보았다.
“학교는 여름방학이지?”
그 애는 게임에 집중하느라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숙제는 다 했고?”
그 애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네 엄마 아빠한테 일러야겠다. 네가 숙제는 안 하고 게임만 한다고.”
“엄마 아빠는 집에서 마작을 하세요. 나보고 서점에 가서 놀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말을 마치고서 그 애는 무슨 생각이 난 듯 휴대폰을 내려놓고 본래 작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혀를 날름댔다.
“이봐, 남자끼리 좀 솔직해지는 게 어때? 말해봐, 너 돌아갈 집이 없는 거지?”
내 추궁에 그 애는 대뜸 반발했다.
“집 있거든요. 그냥 돌아가기 싫고, 또 돌아갈 수 없는 것뿐이에요.”
그 애는 돌아갈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래, 24시간 서점을 운영하면서 어리든 늙든 오는 손님은 다 평등하게 대해야지. 게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그 애는 책을 보며 보냈다. 책을 보기만 하면 누구든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애와 몇 가지 협정을 맺었다.
첫째, 저녁에 서점 카페구역 소파에서 자도 되지만 오전 11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둘째, 책을 깔고 엎드려 자다가 책장에 침을 흘리면 안 된다.
셋째, 오래 목욕을 안 하거나 옷을 안 빨아서 다른 손님들에게 악취로 폐를 끼치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몰래 남성잡지의 코팅을 찢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양동은 비밀을 간직한 채 서점에 안착했다. 그 후로는 더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금세 나보다 더 많은 팬을 얻었다. 어떤 여성은 아침에 그 애가 아직 안 일어났을 때 몰래 아침밥을 테이블 위에 두고 갔고 어떤 커플은 그 애를 데리고 나가 분식을 사줬다. 심지어 그 애를 집에 데려가 목욕을 시켜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애는 직원들과도 잘 지냈다. 멍나(夢娜) 누나가 그 애에게 신발을 사주자, 아이(阿伊) 누나가 경쟁이라도 하듯 그 애에게 옷을 사주었다. 그러고서 나한테 비용 청구를 했는데, 그 이유는 아이 옷이 그렇게 비쌀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제 평생 절대 아이는 낳지 않겠어요!”
나는 화가 나서 양둥을 찾아갔다.
“이봐, 아이돌. 나한테 비결을 전수해줘. 언젠가 너 때문에 파산을 당해도 너처럼 의식주 걱정은 안 할 수 있게 말이야!”
그 애는 아낌없이 가르쳐주겠다면서 내게 자신의 서점 밖 생존 기술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무료로 휴대폰과 PC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백화점과 마트의 시식코너에서 역시 무료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정자(正佳)상가 일층의 여자 점주가 마음씨가 좋아서 그 애에게 아래위 세트로 옷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톈허(天河)상가 6층 게임장의 직원들은 전부 그 애의 오랜 친구였다. 가서 그 애의 이름만 대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와서 밥을 사준다고 할 것 같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그 애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2위안이에요. 라면 먹으려고요.”
나는 5위안 지폐를 꺼내주었다. 그런데 그 애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꼬깃꼬깃하게 말린 지폐 한 장을 꺼내 내게 주며 말했다.
“거스름돈이 2위안 밖에 없어요. 1위안 빚졌으니까 기억해두세요.”
“갚을 필요 없어.”
그 애는 쏜살같이 문가로 달려가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내게 허리를 숙였다.
“사장님, 고마워요. 꼭 갚을게요!”
***
얼마 안 돼서 사고가 터졌다.
양둥은 어쨌든 어린애였다. 잘해주면 바로 조심성을 잃었다. 나는 수시로 손님들에게 항의를 들었다.
“저 애 누구 애에요? 저렇게 떠드는데 단속을 안 하다니, 당신 친자식이에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양둥을 불러 손님들 앞에서 공개사과를 시키고 내 입장을 좀 생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다음에는 아이가 자기에게 먹을 것을 사달라며 귀찮게 군다고 또 누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다시 그 애를 불러야 했다. 이번에는 경찰을 시켜 엄마 아빠를 찾게 해 데려가게 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양둥은 입을 꾹 다물고 이야기를 듣다가 불쌍하게도 두 줄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길, 이 표정연기의 황제 같으니.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 애의 이런저런 ‘누나’들이 몰려와 나를 포위했다.
“왜 애를 윽박지르는 거예요?”
“양둥이 당신을 건드리기라도 했어요? 얘, 이리 오렴. 저 이상한 아저씨는 상관하지 마. 이 누나랑 나가서 달콤한 걸 좀 먹으면 진정이 될 거야.”
내가 경찰에 신고할까 봐 양둥은 처음으로 내게 자신의 신상에 관해 조금 털어놓았다.
그 애는 말하길, 자기는 엄마가 없고 계모가 있는데 밥을 전혀 안 챙겨줬다고 했다. 그래서 아동구조보호센터에 가보기도 했지만 바로 도망쳤다. 그 애 말로는 거기는 ‘너무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그 말을 다 듣고서 나는 한동안 망설여졌다. 그 애의 말이 얼마나 진실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진실이 섞여 있기라도 하면 그 애를 내쫓는 것은 역시 차마 못할 짓이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방금 전 그 손님이 다시 와서 내게 말했다.
“저 애 말을 믿으면 안 돼요. 꾀가 얼마나 많다고요. 저 애가 나한테 어떻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는지 알아요? 서점에 무료 와이파이가 없긴 하지만 자기가 비번을 안다고, 먹을 것만 사주면 알려주겠다고 했다고요.”
나는 결단을 내리고 양둥을 내쫓았다.
****
양둥이 떠난 뒤, 나는 평온해지기는커녕 거꾸로 더 귀찮아졌다.
우선, 일부러 양둥과 놀려고 찾아온 손님들이 내가 그 애를 쫓아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 다퉈 달려와 나를 냉혈한이라고 비난했다.
“그 어린 아이를 어디로 가라고 내쫓은 거예요? 만일 인신매매라도 당하면 책임질 수 있어요?”
와, 마치 내가 양둥의 후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따졌다.
그리고 입으로 계속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날씨가 이렇게 추워졌는데, 걔는 입은 옷도 얇은데……”
더 심하게는 곧장 필살기를 날리는 사람도 있었다.
“흥, 당신도 애가 생기면 알게 될 걸.”
일리 있는 말이어서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밤이 늦어 그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고 서점은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아무 이유 없이 양둥과 있었던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글을 쓰는 틈틈이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어느덧 12월이 되어 요 며칠 광저우의 기온은 뚝 떨어져서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밤이면 확실히 조금 쌀쌀했다.
생각이 끊기고 나는 멍하니 테이블 위의 메모장을 뒤적였다. 메모 하나가 그 공책에서 뛰어나온 것처럼 내 시선에 들어왔다.
“나는 광저우라는 이 도시에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처음에 내가 이곳을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인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일 저녁 나는 여기에서 새벽까지 머물며 조용히 책을 읽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꼬마친구 양둥과 놀곤 한다. 나는 이 아이가 너무 마음에 든다! 스물네 살인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이 너무 좋다.”
여직원인 아이가 와서 함께 야식을 고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때 그 꼬깃꼬깃한 2위안짜리 지폐를 보았다. 그것은 양둥이 내게 준 것이었다.
“거스름돈이 2위안 밖에 없어요. 1위안 빚졌으니까 기억해두세요.”
아이가 내가 넋을 잃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아니면 우리가 양둥을 찾아 데려올게요.”
내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서 그녀가 단호하게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혹시 그거 아세요? 양둥이 그랬거든요. 서점에서 자기 전에 그 애는 맥도날드와 켄터키프라이드치킨에서 잤었는데 어떤 변태남이 그 애가 여자애인 줄 알고 걔가 자고 있을 때 아래를 더듬었대요……”
양둥이 내게 노숙자의 생존 기술을 전수해준 것에 감사했다. 나와 직원들은 알고 있는 단서에 의지해 짐작가는 곳을 한 바퀴 돌았다. 그 애를 찾았을 때, 그 애는 반바지 차림에 신문지로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그 애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걸까? 나는 도무지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그 애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가자, 서점으로 돌아가자.”
*****
며칠 뒤 다시 1200북숍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테이블 가장자리에 앉은 양둥은 마치 부잣집 도련님 같은 자태였다. 왼손으로는 휴대폰 화면을 콕콕 찍으며 게임을 하고 있었고, 오른손은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젊은이가 그 애를 둘러싸고 손톱을 깎아주고 있었다.
제길, 이게 무슨 난리야?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 젊은이들은 놀라서 움찔했다. 다가가서 알아보니 그들은 어느 대학의 학생들이었다. 인터넷에서 내가 양둥에 관해 올린 글을 보고 새벽같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러 온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결국 양둥의 이야기를 썼다. 달리 말하면 양둥이 결국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다.
양둥은 귀저우(貴州)의 퉁런(銅仁)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애의 생모는 생부의 두 번째 아내였다. 하지만 양둥을 낳은 지 얼마 안 돼 그녀는 그 애를 버리고 집을 나갔고 먼 타향으로 시집을 갔다.
예순이 훨씬 넘은 아버지는 결국 전처와 다시 합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시 돌아왔을 때, 양둥은 자신의 배다른 형들이 벌써 가정을 이뤄 아버지에게 손자를 안겨준 것을 알았다.
양둥의 생모도 장시(江西)에서 가정을 이뤄 또 애를 낳았다. 그래서 어느 쪽에서도 양둥은 전혀 존재감이 없어졌다.
곧이어 생계 때문에 양둥의 부모는 광저우로 가서 2억이 넘는 중국의 농민공 대열에 끼기로 마음먹었고 양둥은 그들의 천만 자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 애는 광저우의 빈민가에 살면서 부근의 농민공학교에 다녔다. 아버지는 인력거꾼으로 생계를 꾸리느라 그 애를 돌볼 겨를이 없었으며 그 애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계모는 집에서 밥을 지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애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복잡한 신세 때문에 양둥은 다른 정상적인 애들처럼 자라지 못하고 거리를 떠돌게 된 것이다 그 애의 이야기를 다 듣고서 나는 조금 주저했다. 그 애를 다시 서점에 데려오기는 했지만 그 애에게 아이가 당연히 누려야 할 생활환경을 제공하기는 힘들었다. 만약 그 애의 사연을 인터넷에 올리면 그 애는 틀림없이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애는 일상생활로 돌아가기가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컸다. 자선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몰랐다.
나는 그 애와 몇 차례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의견을 물었다.
양둥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부랑아가 아니에요. 저는 집이 있다고요. 그냥 안 돌아가고 싶을 뿐이에요.”
“체면과 따뜻한 밥 중에서 뭐를 원하니?”
그 애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따뜻한 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너, 마음의 준비가 됐니?”
“됐어요.”
과연 글을 올린 당일 밤, 누가 바지 한 벌과, 밤에 덮고 잘 만한 담요를 보내왔다. 그리고 방금 전 내가 본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이웃사랑이 잇따랐다.
‘개뿔, 이게 무슨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거야!’
나는 속으로 욕을 하며 그 대학생들을 쫓아냈다. 그리고 다시 벽 너머의 테이블을 보니, 둘러앉아 마작을 칠 만한 숫자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고는 아침 8시부터 서점을 지키며 내게 전화를 수십 통은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12시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이 생각나 잠깐 무척 부끄러웠다.
인터뷰가 몇 차례 이어졌고 나는 앞으로 양둥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떤 변화가 생기든 그것들은 전부 내 결정에 달려 있었다. 나는, 양둥을 시켜 그 애 부모에게 전화를 걸게 하라는 기자의 요구를 거절했다.
“자기한테 아무 관심도 없는 부모에게 이렇게 빨리 연락하는 것은 이 애가 바라는 결과가 아닐 거예요.”
나는 마치 외교부 대변인이 영토분쟁에 대해 발표하는 것처럼 엄숙히 내 의견을 말했다.
기자들을 보낸 뒤, 나는 다시 서둘러 양둥과 2차 내부회의를 열었다. 나는 그 애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양 도련님, 제가 손톱을 깎아드릴까요?”
양둥은 고개를 숙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금 기자가 한 말을 듣고서 자기 부모와 연락을 하는 일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네 엄마 아빠가 너를 데려가줬으면 좋겠니?”
양둥은 힘껏 체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면 요 근처 학원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는데 네가 자기 학원에 와서 공부를 했으면 하시더라고. 너, 나랑 같이 가보지 않겠니?”
그 애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전날 밤 고민 끝에 나는 지금 양둥에게 모자란 것이 가정보다도 교육과, 같은 또래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애를 데리고 길을 걸어 학원으로 가면서 나는 불현듯 10년 뒤의 내 자신을 보았다. 아이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학교 근처의 집을 구하러 다니는 내 자신을 말이다.
나는 아직 결혼도 안 한 몸인데!
이어서 나는 담임선생이 불러 학교에 들른 가장처럼 그 학원의 완萬 선생과 열심히 대책을 의논했다. 완 선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지했다. 양둥이 원하기만 하면 그곳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숙식도 해결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서점에 있어도 좋지만 수업시간에는 반드시 돌아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또 양둥에게 간곡히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옛날 내 부모님의 교육관을 줄줄이 외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너는 똑똑하니까 집중해서 열심히만 공부하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야.”
“네가 다 컸을 때 먹고 살 능력이 없으면 사기나 도둑질이나 하며 살아야 해. 너는 이 사회의 기생충이 되고 싶지는 않지?”
“사람이 학력이 모자라면 한 가지 기술이라도 꼭 있어야 해.”
양둥은 당장 학원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학원 규칙에 따라 수업도 받겠다고 했다. 사실 그 애가 학원에 들어서자마자 실내에 동화책이 가득한 것을 보고 얼른 한 권을 집어 손에서 안 놓는 것을 보고서 나는 벌써 일이 반은 성공한 것을 알았다.
이어서 양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사장님 혼자 돌아가세요. 저는 여기서 저녁을 먹을래요.”
두 시간 뒤, 그 애는 다시 서점에 나타나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말했다.
“손님이 선물한 담요를 가지러 왔어요. 오늘 밤부터 학원에서 자려고요.”
나는 이렇게 빨리 양둥에게 버림을 받는 것인가?
양둥의 짐을 싸주다 보니 대학에 들어간 자식을 떠나보내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나는 무척 기뻤다. 어쨌든 그 애가 서점에 머무는 것은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곳은 전문적인 선생님도 있고, 입에 맞는 세 끼 식사도 있고, 또 잠을 잘 곳도 있어서 서점보다 훨씬 좋은 곳이기는 했다. 하지만 야성에 물든 그 아이가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또 얼마나 오래 그곳에 머물 수 있을까?
언젠가 길거리를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을 가리키며 양둥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저 애들이 부럽냐고. 그 애는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봐!”
그 애는 조그맣게 말했다.
“아주 약간요. 쟤들이 공부하는 건 부럽지 않아요. 제가 부러운 건 쟤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이 많은 거예요.”
“아 그래, 가자, 가.”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자신에게 말과 행동을 삼가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튿날부터 계속 완 선생에게 그쪽의 상황을 물었다. 다행히 당장 들려오는 소식은 전부 긍정적이었다.
이튿날 낮에 양둥은 내내 얌전하게 학원에 있었다.
그 애는 뚱보라고 불리는 친구를 사귀었다. 뚱보는 그 애에게 제일 먼저 말을 걸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옷도 가져다주었다. 양둥은 아래위로 다 산뜻하게 새 옷을 갈아입었다. 두 아이는 금세 같이 노는 사이가 되었다.
점심에 밥을 지을 때, 양둥은 솥에 식초를 조금 부었다.
“이렇게 하면 밥이 더 맛있어지거든.”
하지만 밥을 먹을 때 식초 냄새가 나지 않아 그 애는 무척 의아해했다.
쉬는 시간에 양둥과 뚱보 그리고 다른 남자아이 몇 명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 광장에서 공놀이를 했다. 그 광경이 몹시 활기차보였다.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운동하는 것. 아, 내가 너무 오래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양동에게 좋은 거처가 생긴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일이 이렇게 폭풍처럼 여기까지 치달아 해피엔딩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일이 이렇게 빨리 끝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가 태풍의 눈 속에 있고 암암리에 주변에서 바람과 구름이 거세질 준비를 하는 듯했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또 완 선생의 문자였다.
“지난번 그 기자가 구호센터를 통해 양둥의 아빠를 찾았대요. 양둥을 데리러온대요.”
그 기자는 왜 그렇게 필사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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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겨울은 그 전보다 조금 따뜻했다.
광저우는 여전히 낮에는 자동차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밤에는 온갖 조명이 휘황찬란했다. 서점도 여전히 24시간 영업을 했는데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서점 두 곳을 더 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재워주게 되었다.
그날 나는 지난 몇 년과 마찬가지로 또 밤이 깊었을 때 서점에 들렀다. 그날 1200북숍 체육관동로 지점은 평소보다 더 시끌벅적했다. 일본 NHK와 중국 CCTV가 거기에 자리를 잡고 특집 프로그램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 말도 섞지 않았다.
그날 밤, 내가 맡은 역할은 서점의 대변인이었다. 나는 차례로 그들의 인터뷰를 받아 몇 가지 질문에 답했다.
“당신은 왜 24시간 서점을 열 생각을 했나요?”
“심야에 이곳에 오는 손님은 어떤 사람들인가?”
“서점에서는 어떤 유형의 책을 파나요?”
나는 그들을 데리고 서점 안을 돌다가 되는 대로 책 한 권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 책은 앤서니 브루노의 세븐이었다. 표지를 보고 나는 잠깐 움찔했지만 지난 반 년 간 숱하게 인터뷰를 받은 경험을 살려 얼른 대답을 마쳤다.
“기억나는 손님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보통 나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여전히 서점에 머물고 있는 유랑자 리씨와 천군 그리고 다양한 괴짜들을 언급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귀신에 홀렸는지 전혀 다른 사람을 입에 올렸다.
“이곳에 반 년 간 머무른 한 아이가 생각나는군요. 그 아이는 제가 처음 서점을 열고나서 온 첫 번째 손님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다. 그 애는 바로 양둥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사태가 급전직하했던 그 이틀이 생각났다.
그날 밤, 나는 씩씩대며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자기가 벌써 양둥의 아버지를 만났고 두 사람을 이튿날이나 그 다음날 만나게 해줄 계획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만난 뒤에 양둥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나요?”
내 물음에 그녀는 답했다.
“부자상봉이죠.”
“만약 양둥의 가정이 정말 그 애가 말한 것 같다면 그 애는 골방에 갇히거나 아예 귀저우의 시골로 보내질 가능성이 커요. 부자상봉이 정말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봐요, 걔 아빠는 벌써 여러 차례 그 애를 찾았고 이미 그 애가 이 세상에 없는 줄만 알았어요. 그들도 그 애를 신경 쓴다고요.”
“당신이 그 애를 돌려보냈는데 그 애가 다시 가출하면 어쩔 거죠?”
“그러면 또 보도해야죠!”
나는 전화기에 대고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지만 그 내용은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결국 나는 힘이 빠져 양둥을 데려가게 하는 데 동의했다. 나는 그 애의 후견인이 아니어서 그 애의 부모를 저지할 권리가 없었다. 다만 양둥이 돌아가서 관련 부서의 관리를 받고 더 이상 학대를 안 받게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내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나 싶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정이 많아졌을까.
나는 양둥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다. 그 애는 막 자기가 좋아하는 새 환경을 찾은 참이었다. 그런데 마치 내가 어릴 적에 샀던, 벌써 많이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미처 입을 대기도 전에 철썩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아이스크림이 땅 위에서 녹아 한 줌의 물이 될 때까지 빤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돼 양둥의 아버지가 그 애를 데리러 와서 훌쩍 귀저우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양둥은 마침내 더 떠돌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애의 아버지와 계모는 그 후에도 계속 광저우에서 살았다. 그 애의 배다른 형이 고향 부근의 읍내에서 일을 하며 그 애를 돌봐주기로 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개운치 않은 결말이다. 1년 전 내가 그 애에게 새해 선물을 보내자고 했다. 다들 왁자지껄 한참을 논의했고 누구는 귀저우가 겨울이 무척 추워 적응하기 힘들 테니 보온병을 보내자고 했고, 또 누구는 그 애가 미스터리소설을 좋아했던 것이 떠올라 세븐을 선물하자고 했다.
나는 이미 알아서 공금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했으며 선물에 넣을 편지도 썼다.
“열심히 공부해라. 나중에 서점에 와서 일해도 좋아. 하지만 그러려면 빨리 자라야 해. 어느 날 서점이 문을 닫고 나도 세상을 떠돌지 모르니까.”
아마도 그 애는 광저우를 떠돌던 시절, 자기가 가장 마지막으로 또 가장 길게 머물렀던 서식처를 그리워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애가 그 모든 것을 이미 까먹었기를 더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애가 지금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 애를 아껴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많이 생겨 다른 보통 아이들처럼 천천히,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몇 가지 비밀을 감춰야 교묘하게 일생을 살 수 있을까?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이미 열두 시가 넘었다. 밤의 장막 아래, 새로운 하루는 몇 년 전의 여느 날과 아무 차이가 없는 듯했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여기 앉아 양둥에게 5위안짜리 지폐를 줬던 일이 생각났다. 그 애는 쏜살같이 문가로 달려가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내게 허리를 숙였다.
“사장님, 고마워요. 꼭 갚을게요!”
양둥. 너, 내게 1위안 빚진 거 아직도 기억하니?
*이 책의 원서는 劉二囍, <書店的溫度>(花城出版社, 201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