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울타리鹿柴/당唐 왕유王維
空山不見人 빈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 다만 말하는 울림만 들리네
返景入深林 저녁햇살 깊은 숲에 들어와
復照青苔上 다시 파란 이끼 위를 비추네
이 시는 왕유(王維, 701~761)가 은거하던 종남산의 망천(輞川)에 있는 어떤 장소를 노래한 시이다. 망천의 경치 중 좋은 곳을 골라 왕유는 20경으로 노래하였는데, 그 중 사슴을 기르던 곳의 경치는 바로 이 시 ‘사슴울타리’란 뜻의 <녹채(鹿柴)>에 담아 낸 것이다.
제목에 쓰인 ‘채(柴)’는 음이 ‘시(柴)’가 아니다. 이 글자는 ‘가지나 잎이 많이 붙은 땔나무’라는 의미일 때는 발음이 ‘시’이지만 이처럼 울타리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채’이며 ‘채(寨)’와 통용한다. 사슴들이 마구 풀을 밟고 하면 거칠어져 조용하지 않을 것도 같은데 이 시에서 묘사한 세계는 깊고 고요한 세계이다. 사슴 울타리 안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곳 주변의 원시적 자연을 시의 배경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메아리[響]가 들린다는 것은 깊은 산의 적막감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왕유가 쓴 <죽리관(竹里館)> 시에 ‘그윽한 대숲에 홀로 앉아 금을 타고 길게 시를 읊네.’라고 한 표현과 유사하다.
숲이 깊어 낮에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저녁이 되서야 경사가 져서 비로소 빈틈으로 햇살이 파고든다. 이를 ‘반경(返景)’이라 한 것은 햇살이 어디에 반사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아침에 동쪽에서 비치는 햇살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햇빛이 이제 서쪽에서 동쪽으로 거꾸로 비친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 기울기가 더 낮아져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태곳적 정취가 깃든 이끼도 비춘다. <죽리관> 시에 ‘깊은 숲이라 아무도 모르고 밝은 달만 와서 비춘다.’고 한 표현과 같다.
깊은 대숲에서 금을 연주하고 시창을 하는데 오직 달빛만이 비추고, 깊은 숲이나 이끼를 저녁 햇살만이 비춘다는 것은 함축적 의미가 풍부하다. 명나라 이동양(李東陽)이 “담담하지만 오히려 농밀하고 천근하지만 오히려 심원하니, 아는 사람과는 이야기 할 수 있어도 속인과는 말하기 어렵다.「淡而愈濃, 近而愈遠, 可與知者道, 難與俗人言.」”라고 한 것이나, 《당시삼백수》에서 소개한 유폐운(兪陛雲)이 “이런 경치는 아무나 말 할 수 없고 오직 묘심(妙心)을 터득한 사람만이 시로 묘사할 수 있다.[此景無人道及, 惟妙心得之, 詩筆復能寫出.]”라고 언급한 것은 다 그 깊은 은유 세계를 지적한 말들이다.
이처럼 이 시는 저녁 해가 질 무렵의 산의 정적감과 미처 드러나지 않은 산 속 깊은 곳에 저녁 햇살이 닿아 빚어내는 은밀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나 참 모습은 이처럼 은미한 데가 있다. 은미하기에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오히려 드러날 수도 있다. 설령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가치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과 아름다움은 스스로 존재한다. 독자들도 뒤의 2구를 주목해 음미해 보기 바란다
365일 한시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