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짓다偶作/당唐 백거이白居易
紅杏初生葉 살구는 갓 잎이 나고
青梅已綴枝 매실은 가지에 달렸네
闌珊花落後 꽃이 져서 시무룩하고
寂寞酒醒時 술이 깨서는 적막하네
坐悶低眉久 고민에 빠져 눈을 깔고
行慵舉足遲 행동이 굼떠 더디 가네
少年君莫怪 소년아 괴히 보지 마오
頭白自應知 늙으면 절로 알 것이니
이 시는 주금성(朱金城, 1921~2011)의 《백거이집전교(白居易集箋校)》(상해고적출판사)에 의하면, 826년 백거이가 55세 때 소주 자사(蘇州刺史)를 지낼 때 쓴 시로 보고 있다. 백거이 시를 볼 때 마다 이 책을 참고하게 되고 이 책을 볼 때마다 주금성이라는 학자에 대해 탄복하게 된다. 주금성은 이백과 백거이를 장기간 연구하여 ‘백거이와 이백이라는 누각에 붙어 있는 집의 주인’이라는 뜻의 ‘쌍백이주(雙白簃主)’로 자호했다고 한다.
술 한 잔 먹고 깨어났는데 아직 정신이 덜 들어 잠시 잠인지 생각인지 모를 상태에 있다가 또 몇 발자국 흐느적거리며 걸어간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힐끗 보면서 찡그리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머리 옆에 원을 그리며 옆의 친구를 돌아보고 웃기도 한다. 다소 자조적으로 자신을 묘사하였는데 상당히 태평한 기상이 있고 유머가 있다.
‘난산(闌珊)’은 흥미가 다해 시들해지거나 의기소침한 것을 말한다. ‘난(闌)’에 쇠퇴한다는 의미가 있고 ‘산(珊)’은 패옥 소리라는 의미가 있는데, 패옥 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서 ‘흥미나 의기가 줄어든다.’라거나 영락하다는 뜻이 나오기 때문이다. 벗들과 어울려 술을 마실 때는 흥취가 도도하였지만 술이 깰 때는 아무도 없고 쓸쓸하다. 이것을 적막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5, 6구에서 술을 많이 마셔본 관록을 느끼게 한다. 술이 깨긴 했지만 아직 정신이 덜 돌아와 눈썹을 내리고 앉아서 고민하는 모양으로 있거나 걸어 갈 때는 앞 발걸음을 뒷발이 미처 호응하지 못하는 등 동작이 굼뜨고 불안하다. 술을 많이 마시는 노인 특유의 행동을 묘사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백거이는 이해 가을에 눈병이 나서 이듬해에 낙양으로 돌아오게 된다.
경쾌한 스케치를 통하여 시인의 자족적인 한 때를 잘 묘사하고 있다. 남송의 화가 양해(梁楷, 12세기 후반~13세기 초반)의 <발묵선인도(潑墨仙人圖)>가 절로 떠오르는 시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내가 가지고 있는데 그림의 제화시에 “술로 축축한 옷소매, 아직도 정신은 비몽사몽[淋漓襟袖尙糢糊]” 이라는 구절이 있다.
365일 한시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