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절구 여섯 수春日六絶句 중 둘째/ [宋] 양만리
봄날 취함은
술과 관계 없고
교외 거닐며
길도 묻지 않네
푸른 하늘은
어디서 끝날까
새하얀 새가
허공으로 사라지네
春醉非關酒, 郊行不問塗. 靑天何處了, 白鳥入空無.
어린 시절 연을 날릴 때 바람이 좀 세게 불면 자주 연줄이 끊기곤 했다. 줄이 끊긴 연은 너풀너풀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더러는 푸른 하늘 저편으로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하얀 점이 되어 사라지는 연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게 저 산 너머에 내가 꼭 가야만 할 어떤 곳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있을까/ 달이 뜨며는 해가 지며는 꽃은 외로워 울지 않을까/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나비와 같이 훨훨 날아서/ 나는 가고파 에이야호”(손석우 작사 작곡, 송민도 노래, 「소녀의 꿈」) 누나 또래가 부르던 이 노래가 어린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봄날 온갖 풀 새싹이 돋아나면 다래끼를 메고 꼴을 캐러 나섰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판을 쏘다니다 보면 꼴 캐기에 싫증이 나기 일쑤였다. 나른한 봄볕을 맞으며 논둑에 기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창공을 가르며 하얀 비행기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산 너머로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그리던 산 너머 먼 곳으로 나와 살며 늙음을 맞이하고 있다. 봄이면 술이 아니라 꽃에 취하고 신록에 취해 발길 닿는 대로 눈길 닿는 대로 걷는다. 문득 문득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하얀 새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저 허공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산 너머로 와서도 다시 산 너머 하늘을 아득히 바라보곤 한다.
한시, 계절의 노래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