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의 초여름池上早夏/당唐 백거이白居易
水積春塘晚 늦봄의 연못에는 물이 그득하고
陰交夏木繁 무성한 여름의 나무 그늘지었네
舟船如野渡 배는 시골 나루에 있는 것 같고
籬落似江村 울타린 강 마을에 어울릴듯하네
靜拂琴牀席 금 연주하는 자리 조용히 닦아보고
香開酒庫門 술 저장고를 여니 향기도 끼쳐오네
慵閑無一事 빈둥빈둥 아무 하는 일은 없고
時弄小嬌孫 가끔 귀여운 어린 손자와 놀 뿐
내가 산책을 하다 보면 노인들을 많이 만나 노인들이 많아진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 노인들이 옆에 라디오를 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조용히 자연 자체를 즐기고 머리를 식히는 정양(靜養)의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데 그들은 그 조용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바삐 살거나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이런 한가한 일상이 인생 최대의 즐거움처럼 다가오는데 정작 그 시간이 주어진 사람들은 이렇게들 못 견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백거이는 낙양으로 와서 딱히 하는 공무가 없으니 나가서 친구들과 사귀지 않을 때는 집에서 이런 식으로 보낸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바로 늦봄과 초여름이 교차하는 시기이다. 날은 길어지고 아름다운 녹음이 참으로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그러나 이상의 <권태>에서 보듯 또 어떤 사람은 따분함을 느끼는 계절이기도 하다. 백거이는 집 안에 앉아 자신의 못과 울타리를 바라보며 시골이나 강마을의 풍경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가하여 거문고가 놓인 탑상의 먼지를 툭툭 털어도 하고 술을 담아 놓은 저장고의 문을 열어 보기도 한다. 5, 6구는 무료함의 운치를 잘 표현한 듯하다. 그래도 무료함을 달랠 길 없어 어린 손자와 놀아본다.
아무런 걱정 없이 이런 무료함을 자기 집에서 즐긴다는 것이 이 시의 주제이다. 대부분 금전의 궁핍이나 욕심으로 촉발된 마음의 여러 작용으로 이렇게 지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패배하여 포기한 것인지 자발적으로 초월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욕심의 뿌리를 캐어내야만 가능하다.
백거이는 829년 58세 때 권력자에게 배척을 당해 뜻을 펴지 못하자 태자빈객의 신분으로 낙양으로 왔다. 낙양 이도리(履道里)에 집을 마련하였는데, 집 안에 못을 만들어 놓고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 자적하였다. 그리고 인근 향산(香山에 있는 향산사(香山寺)에 친구를 주지로 앉히고 이곳을 무대로 낙양의 명사 8명과 함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친교 활동을 하였다. 나중에 송나라 때 사마광(司馬光)이 왕안석에게 밀려 낙양으로 와서 독락원(獨樂園)을 짓고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에 참여한 것은 이를 본받은 것이다. 백거이는 이 때 <지상편(池上篇)> 등 ‘못 가에서[池上]’라는 말이 들어가는 여러 편의 시를 짓게 된다. 주금성(朱金城)은 <<백거이집전교(白居易集箋校)>>에서 이 시가 840년, 백거이 69세 때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백거이의 당시 3대 즐거움이 시와 술, 그리고 친구와의 대화였기에 호가 취음선생(醉吟先生)이었다. 또 승려들과 교유하면서 불교에도 심취하였기에 향산거사(香山居士)로도 불렸다. 이 시는 당시 백거이의 이런 처세와 생각이 반영된 한적한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830년 12월 28일에 하남 윤(河南尹)을 제수 받았는데, 832년 62세 때 다시 사직하고 한직을 맡는다.
백거이 시가 평담하고 통속적인 경향이 있지만 그 평담과 통속이란 것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절제되어 있고 운치가 있다.
낙양에 가면 사람들이 용문 석굴을 보러 많이 간다. 용문 석굴 앞을 흐르는 강이 바로 이수(伊水)이고 이수 건너편에 보이는 산이 바로 향산(香山)이다. 이 이천의 상류로 가면 이천현(利川縣)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이 살던 곳이다. 가까운 곳에 악양루기의 작가 범중엄(范仲淹)의 묘도 있고 철학자 소옹의 묘도 있는데 모두 고구마 밭과 옥수수 밭 사이에 있어 세상이 바뀐 것을 실감하게 되며, 장자(莊子)의 묘도 있고 장자가 살던 동굴 호접동(蝴蝶洞)과 호접산(蝴蝶山)도 있다. 장자의 묘와 살던 동네를 찾기 위해 16년 전 헤매던 광경이 눈앞에 선하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중국에서 최초로 술을 만들어 주성(酒聖)이라 불리는 두강(杜康)이 살던 곳이 있다. 내가 묵었던 여관 주인이 이천의 두강주 만드는 술 공장에 일하러 다녔는데 나에게 그런 걸 말해주던 기억이 난다. 이천 시내 야시장에 가서 보면 시내 다리 이름에 모두 이 현인들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다음에 가면 독락원과 이도리를 한 번 찾아 볼 작정이다.
365일 한시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