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江南逢李龜年/ [唐] 두보
기왕의 저택에서
평소에 자주 봤고
최구의 집에서
노래 몇 번 들었던가
때 마침 강남 땅에
풍경이 찬란한데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구려
岐王宅裏尋常見, 崔九堂前幾度聞. 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
이구년(李龜年)은 당 현종(玄宗) 때 활약한 연예계 스타다. 작곡, 연주, 노래에 모두 뛰어났다. 당시에 악성(樂聖)으로 불렸으니 지금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조용필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다고 할만하다. 그의 명성은 궁궐에까지 알려져 당 현종이 불러서 총애했으며, 현종의 아우 기왕(岐王) 이범(李範)도 자주 그를 불러 노래를 들었다. 최구(崔九)는 최척(崔滌)이다. 중국에서는 흔히 형제의 항렬 순서를 호칭으로 사용했다. 최척은 현종 때 전중감(殿中監)을 지냈다. 그 역시 이구년의 열성 팬이었다.
당시에 이구년은 가수로, 두보는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당 현종 시대는 중국 역사에서 개원의 치세(開元之治)로 불린다. 태평시절이었다. 하지만 안록산의 난 이후 당나라는 급속하게 국운이 기운다. 혼란한 전란 끝에 두 사람은 꽃 지는 시절 강남 땅에서 다시 만났다.
물론 이 시는 태평한 시대와 혼란한 시대, 젊음과 늙음의 대비가 미감의 핵심이다. 고등학교 때 『두시언해』 시간에도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모든 명시가 그렇듯 이 시도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정처 없는 나그네 길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옛 벗과의 만남, 그것은 바로 예술이면서 인생이다. 모든 만남은 우연이면서 필연이며, 필연이면서 우연이다. 우연과 필연의 변주곡, 예술과 인생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구년은 뛰어난 가수 겸 작곡가였으므로 어쩌면 두보의 이 시를 보고 바로 노래를 지어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의 예술혼은 그렇게 우연과 필연의 선율에 실려 꽃비 휘날리는 늦은 봄 강남 땅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그림출처: 搜狐, 国学经典记忆)
한시, 계절의 노래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