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봄날春晩/송宋 좌위左緯
池上柳依依 못가에는 버들이 하늘거리는데
柳邊人掩扉 버들 옆 인가는 문이 닫혀있네
蝶隨花片落 나비는 꽃잎을 따라 떨어지고
燕拂水紋飛 제비는 물결을 차고 날아가네
試數交遊看 벗과의 교유를 한 번 살펴보니
方驚笑語稀 함께 담소한 게 드물어 놀랍네
一年春又盡 일 년의 봄이 또 이렇게 가니
倚杖對斜暉 지팡이 짚고 기우는 해 바라보네
날씨는 화창하고 도시와 산 어느 곳이나 봄빛이 완연하다. 점심 때 근처 산언덕에 올라보니 어느새 신갈나무, 국수 나무 등에 잎이 많이 났다. 둘레길을 걸으며 보니 바람을 맞고 있는 버드나무는 제법 풍정이 있고 벚꽃은 꽃잎을 비처럼 뿌려 꽃잎을 밟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다. 서울이 봄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
연못 옆에 선 버드나무는 봄바람에 한들한들 정취를 자아내는데 그 옆에 선 집은 대문이 닫혀 있다. 아마 이 시인이 사는 집일 것이다. 꽃을 따라 내려오는 나비, 물을 스치고 나는 제비, 이런 아름다운 풍경도 곧 사라질 것이다. 봄이 저물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은 자신의 인생도 저 봄처럼 저물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교유를 떠올려 하나씩 되짚어 보니 생각보다 너무 적다. 스스로도 놀란다. 이제 봄날이 다 간다는 생각을 하며 지팡이를 짚고 기울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서 있다.
이 시의 제목은 봄이 저물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춘만(春晩)’이지만 시 안에는 3 가지 저물어 가는 것이 나타나 있다. 봄이 저물어가고 노인의 인생도 저물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 나오듯이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
꽃이 떨어지고 해도 떨어지고 봄도 저물고 시인의 인생도 속절없이 저물어간다. 그동안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교유도 헤아려 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봄날이 가고 하루가 저물고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것은 모두 애상(哀傷)에 젖게 한다. 이런 애상감은 기우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는 마지막 구와 함께 긴 여운으로 변한다.
현대시는 외로움과 그리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는 1,800년 전 송나라 시인의 시인데도 지금 우리나라 어느 시인도, 어떤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고 있다. 인간의 내면적 충일감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의 기본 속성이 고금에 걸쳐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다. 천고의 세월을 지나서도 이 시인과 정신적 교유를 하며 큰 위안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 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좌위(左緯, ?~대략1142)는 송나라 황암현(黃岩縣), 즉 지금의 절강성 태주시(台州市) 사람으로 자는 경신(經臣), 호는 위우거사(委羽居士)이다. 호를 보면 고향의 위우산(委羽山)에 있는 위우동천(委羽洞天)에서 조용히 은거해 산 것을 알 수 있다. 위우동천은 도가서(道家書)에서 말하는 36동천 중 하나이다. 어려서 과거 공부를 하다가 이게 할 만한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살았다. 두보의 시를 배웠는데 시의 뜻[意]과 이치[理], 정취[趣] 3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당시 시문으로 이름이 났으며 《위우거사집(委羽居士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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