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中上人寄茶 차를 보내 준 중상인(中上人)에게 감사하며/당唐 제기齊己
春山穀雨前 봄날의 산 곡우 지나기 전에
並手摘芳煙 일손 합쳐 안개 속 찻잎을 따네
綠嫩難盈籠 어린잎이라 바구니 채우긴 어렵고
清和易晚天 화창한 4월은 금방 또 지나가리라
且招鄰院客 그리곤 인근 사원 손님을 초청하여
試煮落花泉 꽃 떨어진 샘물로 차를 끓이겠지
地遠勞相寄 먼 이곳까지 보내느라 수고했는데
無來又隔年 오지 않은지 또 한 해가 지나갔네
제기(齊己, 약 862~937)는 당나라 말과 오대 시대의 저명한 시승(詩僧)인데 지난 100회에 소개하였다. 그 때 7살에 인근 사찰의 소를 뜯기면서 소의 배에다 시를 쓴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과연 이 시를 보면 당나라 최고 시승다운 면모가 눈앞에 펼쳐진다.
중상인(中上人)은 허중상인(虛中上人)을 말한다. 상인은 승려에 대한 존칭이다. 이 사람은 의춘(宜春) 사람인데 역시 시승으로 제기와 시를 주고받았다. <전당시>에는 상서(湘西) 율성사(栗城寺)에 머물렀고 제기(齊已), 상안(尚顔), 서섬(棲蟾) 등과 시우(詩友)였다고 소개하였다. 제기는 중경에 있는 용흥사(龍興寺)와 형악(衡嶽) 동림(東林) 등에 있었는데 서로 만나기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기가 쓴 시 <새로 지은 시를 보내 준 허중에게 감사하며[謝虚中寄新詩]>를 보면 ‘옛 벗이 1천리 밖에서 시 50편을 보냈네.[舊友一千里, 新詩五十篇.]라고 한 대목이 나온다.
좋은 차를 얻기 위해서는 당시에도 곡우 전에 차를 딴 모양이다. 이번 주 토요일이 곡우이다. 차는 보통 안개가 많은 곳에 잘 자란다. 차를 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는다. 그러나 아주 어린잎을 따기 때문에 바구니를 채우기가 어려운데 온화하고 맑은 이런 4월은 금방 지나간다. 차를 따면 잘 제조하여 이웃 사원의 손님을 초대하여 품다(品茶)를 한다. 차를 끓일 물을 긷기 위해 샘에 가보면 꽃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허중이 나에게 차를 보내자면 길도 멀어 참으로 어려운데 매년 이렇게 보내주어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방문하지 못한지 벌써 한 해가 지났군요.
안개가 피어오르는 차 밭에 피어난 잎을 ‘방연(芳煙)’이라 표현하였다. 그 다음 구의 ‘녹눈(綠嫩)’은 흔히 ‘눈록(嫩綠)’이라 하는 것으로 ‘아주 연해서 노란빛이 도는 갓 피어난 잎’을 말한다. 방연(芳煙)의 방(芳)을 이어받은 말이다. 2, 3구가 특히 차밭의 묘경을 잘 표현하였다.
당나라 때 차를 마시는 방법은 요즘과는 많이 다르다. 차를 쪄서 말린 다음, 이걸 가루를 내어 탕처럼 끓이는 것이다. 박물관 같은데 가면 그 과정이 소개되어 있는데 요즘 일본에서 마시는 말차와 오히려 흡사하다. 차를 끓이는 것에 ‘자(煮)’ 자를 쓴 것은 그런 풍습을 반영한 말이다.
전에 대만 가서 문징명의 <품다도(品茶圖)>를 사서 시골집에 걸어 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품다(品茶)는 차를 품평한다는 말이지만 ‘차를 맛본다.’는 의미로 주로 쓴다. 지금 이웃 사원의 손님들을 초청해서 차를 끓여(煮) 품다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앞의 6구는 모두 시우(詩友) 허중에게 차 선물을 받은 제기가 허중의 상황을 상상해서 한 말이다. 마지막에 매년 이 먼 곳에 차를 보내주어 고마운데 우리가 못 본지도 벌써 해가 지났다고 하면서 한 번 방문해 달라고 한다. 이런 시 내용으로 보면 제기가 허중보다 나이가 좀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많은 사람보고 보고 싶으니 이곳에 와 달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 시는 차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답례 형식의 시이다. 시 전편에 자연스럽게 탈속적 기운이 있고 그윽한 차향이 감돌고 있다. 정말로 담백하고 청정한 시가 이런 경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감상하기 참으로 아까운 시이지만 숨겨 놓고 혼자서만 음미하고 싶은 시이기도 하다.
365일 한시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