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의 노래春風曲/당唐 제기齊己
春風有何情 봄바람은 무슨 감정이라도 있는지
旦暮來林園 아침저녁으로 동산 숲에 불어오네
不問桃李主 복사와 자두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吹落紅無言 말 없는 꽃을 불어서 떨어뜨리네
제기(齊己, 약 862~937)는 당나라 말과 오대 시대의 저명한 시승(詩僧)으로 본명은 호득생(胡得生)이다. 담주(潭州) 익양(益陽), 지금의 호남성 영향(寧鄉) 사람이다. 영향은 동정호 남쪽 장사(長沙) 서쪽에 위치한다.
제기는 7세에 마을 아이들과 함께 대위산(大溈山) 동경사(同慶寺)에서 운영하는 소를 방목하는 일을 했는데, 항상 대나무 가지로 소의 배에다 시를 썼다. 그랬더니 그 절의 승려가 제기를 출가시켰다. 출가 후에 더욱 시 공부에 매진하고 성년이 된 뒤에는 동정호, 장안, 종남산, 화산 등지를 유람하면서 ‘형악사미(衡岳沙彌)’로 자호한다. 유람을 마치고 장사로 돌아오니 천하에 이름이 났다. 이후의 행적은 생략한다. 제기의 시집 《백련집(白蓮集)》이 전한다. 《전당시》에 제기의 시 800여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수치는 백거이, 두보, 이백, 원진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소를 방목하면서 공부도 하고 소배에다 대나무 가지로 시를 썼는데 그 시가 자연스러워 동경사 승려가 절의 명성을 높이가 위해 제기를 출가시켰다는 대목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취미와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기의 행적은 《오대사보(五代史補)》에 자세하며 대나무로 글씨 쓴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 따로 《유설(類說)》 등에 편집되어 있기도 하다.
보통 봄바람과 초목의 관계는 긍정적인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 시인은 봄바람의 시새움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말없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복숭아, 자두 꽃을 아침저녁으로 와서 그 주인인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떨어뜨린다는 내용이다. 꽃을 피운 것도 봄바람이지만 그 꽃을 거두어 가는 것도 봄바람인 셈이다.
뜬 구름도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고 방초도 죽었다가 다시 돋아난다. 천고 만고의 사람들이 청산의 무덤으로 간 뒤에 무엇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세상에 기승을 떨치는 추악한 물건도 결국 다 없어지지만 아름다운 것 또한 모두 소멸하고 만다.
이 시인은 봄날 자기가 묵고 있는 근처 숲에 바람이 불어와 꽃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인생의 무상감을 말하고 있다. 화려한 꽃이 말없이 떨어지는 것 보다 더 무상한 것도 없다. 시승다운 시경(詩境)은 꽃잎이 하롱하롱 떨어지는 봄날, 우리를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사색의 세계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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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로 드디어 이 연재가 100회를 맞았다. 100회를 맞은 기념으로 한 마디 한다면 한시는 반드시 외워서 수십 번 되뇌어 봐야 그 맛을 안다는 것이다. 나는 늘 연재하는 시를 수첩에 써서 외웠다. 점심 먹고 방죽 길을 따라 산책하며 외고 저녁에 다시 산책을 하며 왼다. 그러다 보면 좋은 생각이 나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고증이 어려워 상당한 시간을 들이며 고심하기도 했다.
필자는 예전부터 한시를 좋아했지만 대략 16.7년 전에 본격적으로 공부했는데 그때 한시를 작은 종이에 적어 가지고 다니며 늘 외우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한 편 외우기가 힘 들었는데 지금은 한두 번 집중해서 보면 대개 외워진다. 그 때는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웠고 지금은 거의 내용을 파악한 상태에서 외우기 때문에 시상을 따라 말을 만들어 가면 되기 때문이다.
이 연재를 읽는 분들에게 한시는 외우기 쉬우니 욀 것을 권해 본다.
365일 한시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