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춘(仲春)에 전원에서春中田園作/왕유王維
屋上春鳩鳴 지붕 위에는 봄 비둘기가 울고
村邊杏花白 마을 주변엔 살구꽃이 하얗네
持斧伐遠揚 도끼 들고서 뽕나무 가지 손보고
荷鋤覘泉脈 괭이 메고 가 지하수를 찾아 보네
歸燕識故巢 돌아온 제비는 옛 둥지를 알아보고
舊人看新曆 작년 집주인은 새 달력을 살펴보네
臨觴忽不御 술잔 앞에 두고 문득 마시지 못하니
惆悵遠行客 먼 타향살이 슬픔이 밀리어 오네
삼민서국 《왕유시문집》에서는 이 시를 왕유가 은거한 망천(輞川)에서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제목의 춘중(春中)은 ‘봄날’이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나 중춘(仲春), 즉 음력 2월로 보는 것이 시의 내용과 어울려 보인다. 오늘이 음력 2월 2일이니 지금 남쪽으로 가 보면 이와 흡사한 전원 풍경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이 시의 말구처럼 베트남이나 연변 등 외국에서 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시로 고향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3구의 원양(遠揚)이란 말은 ‘멀리 뻗어나간 뽕나무 가지’라는 뜻으로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나오는 말이다. 봄에 누에를 치기 위해 뽕을 따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뻗어나간 가지’를 손본다는 말로 보인다. 천맥(泉脈)은 농사짓는데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하여 찾는 일종의 지하수이다. 서(鋤)는 한국의 넓적한 괭이와 같은 농기구이다. 흔히 ‘호미’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실제와 맞지 않다. 호미를 어깨에 메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어(御)’는 ‘음식물을 들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임금이 약이나 음식을 먹는 것을 진어(進御)라고 한다.
5, 6구의 대구가 정교하다. 중춘에 돌아온 제비가 옛 집을 찾는 것과 이 집에 살던 자신이 새 달력을 보는 것이 신구의 대비가 된다. ‘구인(舊人)’을 동네에 오래 살던 사람으로 보는 의견도 있으나 그렇게 하면 대구가 정교하지 않고 시상이 산만해진다. 노론 벽파의 영수 김귀주의 시에 ‘옛 사람은 새 달력을 보고 새 매화는 옛 가지를 이별하네. 인생이 또한 그 얼마더냐 영화란 그저 한 때일 뿐.[舊人看新曆, 新梅別舊枝. 人生亦幾何, 榮華徒一時.]’이라고 한 표현을 보면 구인(舊人)을 ‘작년의 그 사람’이란 의미로 본 것을 알 수 있다. 또 제비가 돌아와 옛 보금자리 주변을 배회하는 광경은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술잔을 앞에 두고 문득 먼 객지에 와 있는 쓸쓸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왕유의 조부 때는 태원(太原)에 살았지만 왕유는 하동 포주(蒲州)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났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황화가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지역으로, 왕지환(王之渙)이 읊은 관작루(鸛雀樓)가 있는 곳이다. 왕유는 15살에 장안으로 갔기 때문에 여기서 그리는 고향은 바로 포주의 고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막연히 왕유가 망천에서 유유자적한 것 같지만 이 시를 보면 왕유가 그곳에서 나름대로 타향살이의 서글픔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쩌면 타향에서 은거하였기에 시, 서, 화, 음률을 두루 통하는 예술가의 삶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고향에 있었다면 사람들이 어릴 때의 모습으로 왕유를 대하였을 테니 무슨 고상한 문예 활동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사향(思鄕)의 감정은 오히려 삶의 긴장이나 촉매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365일 한시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