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천둥新雷/청淸 장유병張維屛
造物無言卻有情 조물은 말이 없지만 마음은 있어
每於寒盡覺春生 늘 추위가 다하면 봄이 옴을 아네
千紅萬紫安排著 울긋불긋 온갖 꽃을 준비해 놓고
只待新雷第一聲 첫 천둥소리 울기기만 기다리네
장유병(張維屛, 1780~1859)은 광동 사람으로 1822년에 진사에 합격하여 관직 생활을 하다가 1836년부터는 관직을 그만두고 향리에서 은거한 시인이다. 이 시는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인 1824년에 쓴 시로 당시 암울한 청조 말기에 새로운 봄이 오기를 기대한 마음이 담겨 있다.
조물은 두보의 <망악>에 나온 ‘조화(造化)’나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조물자’와 같은 말이다. 예날 사람들이 ‘하늘(天)’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이 없지만 정(情)이 있다’고 할 때의 ‘정(情)’은 무정물이 아니라 지각이 있는 유정물의 의미로 보이는데 그 구체적인 작용이 바로 그 다음 구에 나오는 ‘지각한다’는 의미의 ‘각(覺)’을 말한다. 《논어》 <양화(陽貨)>에 ‘하늘이 말을 하지 않지만 사계절이 운행하고 백물이 생겨난다.’고 할 때의 의미가 깔려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조물이라 해서 자연 현상을 다 주관하는 것은 아니고 사시의 변화나 천둥과 같은 것은 기계적 자연 현상으로 보고 그러한 변화에 맞추어 만물을 생육하고 변화시키는 것에 의미를 국한해서 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시가 단순히 자연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철학적인 생각과 신념, 그리고 희망을 시에 담으려고 하여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런 부분을 지나치게 따지기 보다는 시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늘에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조물의 존재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평소 무신론자도 종교를 갖는 경우가 많듯이 이 시는 청조 말기의 부패와 서세 동점의 암담한 상황에서 새 시대를 준비하고자 하는 귀한 의지가 담긴 시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시인이 정한 제목을 함부로 고칠 수는 없지만 <천둥을 기다리며>로 바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며칠 전 한반도에 새 시대를 여는 우렛소리가 들리기를 고대하였는데 미국 내 보수 세력과 일본의 농간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지금은 1824년 당시와 비교하여 한국이나 중국, 모두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적폐 세력의 농간과 술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새 시대의 천둥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千紅萬紫를 반드시 안배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1999년 중화서국에서 원행패(袁行霈)가 5언과 7언의 절구 50수를 뽑아 엮은 《신편천가시》에 수록되어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아침에 찾아보니 없어 아쉬웠다. 이 책에는 삽화와 함께 시가 소개되어 있는데 모두 유명한 시들이다.
365일 한시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