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에 가서 은거하는 상이 남곽에 머물며之廣陵宿常二南廓幽居/이백李白
綠水接柴門, 푸른 물 사립문 밖으로 이어져
有如桃花源. 마치 도화원 같도다.
忘憂或假草, 근심 잊고자 간혹 풀 빌었으니
滿院羅叢萱. 온 뜰에 원추리 꽃 널려 있도다.
暝色湖上來, 어스름 호수 위에 깔리고
微雨飛南軒. 가랑비 남쪽 창문에 날린다.
故人宿茅宇, 친구는 띠 집에서 잠들고
夕鳥棲楊園. 석양에 새들은 버드나무 숲에 깃든다.
還惜詩酒别, 애석하게도 시주로 이별하며
深爲江海言. 강해처럼 깊은 우정 나눈다.
明朝廣陵道, 내일 아침 광릉 떠나는 길에서
獨憶此傾樽. 이번에 술잔 기울인 것을 혼자 그리리라.
[해제]
이백은 생전에 여러 번 광릉[지금의 양주]을 행차했으나 이 시는 언제 지은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제목의 상이(常二)도 누구인지 모른다[待考]. 시인은 광릉에서 상이가 은거하는 도화원 같은 환경, 그리고 그들의 우정을 이 시에 담았다.
카네이션이 모성애를 상징하는 꽃이 되기 이전에 중국에선 원추리 꽃이 어머니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훤초(萱草)는 다른 말로 훤초(諼草)라고 부르는데, ‘훤(諼)’자는 ‘잊는다[忘]’는 뜻이다. 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시경·위풍(衛風)·백혜(伯兮)≫에 보인다.
焉得諼草, 어디서 훤초 얻어
言樹之背. 집 뒤에 심어볼까.
다른 별칭은 망우초(忘憂草)라고 한다. 어원은 ≪박물지(博物志)≫에서 나왔다. “훤초를 식용하면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근심을 잊게 해주어 ‘망우초’라고 부른다.(萱草, 食之令人好歡樂, 忘憂思, 故曰忘憂草.)” 옛날 풍속에 자식이 집을 떠나 먼 길을 나설 때 먼저 북당(北堂)에 원추리를 심어놓아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수심을 잊도록 했다고 한다.
섭이중聶夷中 유자의 노래遊子吟
萱草生堂階, 원추리 북당 섬돌 가에 자라니
遊子行天涯. 유자는 하늘가로 떠난다.
慈母倚堂門, 자모는 북당 문에 기대
不見萱草花. 원추리 꽃 보지 않는다.
이 꽃을 의남초(宜男草)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풍토기(風土記)≫에서 나왔다. “임산부가 훤초를 허리에 차고 다니면 사내아이를 낳는다.(妊婦佩其草則生男)”고 한데서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오언고시 상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