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객劍客/ [唐] 가도賈島
십년 동안 검 한 자루
갈아왔으나
서릿발 칼날 아직
시험 못 했네
오늘 검 잡고 그대에게
보여주나니
그 누가 불공평한 일
자행하던가
十年磨一劍, 霜刃未曾試. 今日把示君, 誰爲不平事.
『천자문』을 배운 분들은 “칼 검, 이름 호, 클 거, 대궐 궐(劍號巨闕)”이란 구절을 기억하시리라. 어릴 때는 대개 그냥 글자 익히기에 급급하여 구절 전체의 뜻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는 대학 진학하고 나서야 ‘거궐(巨闕)’이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 명검 이름임을 알았다. 총포가 없던 시절 칼은 개인의 호신용 무기였을 뿐 아니라 군대의 기본 무기이기도 했다.
도검 사용은 모든 생명과 직접 관련되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으로 이를 신성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설과 일화가 생겨났다. 『원본 초한지(西漢演義)』에서 장량(張良)은 한신(韓信)에게 ‘간장막야검(干將莫邪劍)’을 팔러가서 이렇게 말한다. “이 보검으로 말하면 몰래 흑수(黑水)로 가져가면 교룡(蛟龍)이 흐느끼고, 몰래 공산(空山)에 가까이 가면 귀신이 깜짝 놀랍니다.” 물 속 깊이 숨은 교룡이나 산 속 어두운 곳에 몸을 감춘 귀신조차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이 보검의 역량은 이미 영험한 신령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만하다. 역대로 명검에 얽힌 전설은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협객들은 불의와 부패가 만연한 세상에서 공법이 법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자신의 재물과 생명을 바쳐 대의를 행한다. 협객이 의지하는 것이 바로 내면의 대의와 외면의 칼이다. 협객의 칼은 불법과 핍박에 억눌려 원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의 번갯불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유협열전(遊俠列傳)」에다 “말을 하면 반드시 신의를 지키고, 행동을 하면 반드시 결과를 내고, 이미 승낙했으면 반드시 성실하게 실천하면서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는다(其言必信, 其行必果, 已諾必誠, 不愛其軀)”라고 기록했다. 지금까지 사랑 받는 수많은 무협소설과 무협영화도 모두 기본적으로는 이런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옛 지식인들은 경서 뿐 아니라 검술도 평생 수양하고 지향해야 할 목표로 삼았다. 이 두 목표를 합쳐서 흔히 ‘서검(書劍)’이라 부른다. 대개 옛 경전과 전적을 익혀 임금을 보좌할 꿈을 꾸면서,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검술로 대의를 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달성하기 어려운 꿈이다. 세상은 늘 나의 꿈 저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려 말 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은 “서검이 연래로 평소의 뜻과 어긋나니, 이번에 강호로 가서 여생을 기탁하리(書劍年來違素志, 江湖此去寄餘生)”(「次延興島」)라고 읊었다.
우리는 어떤가? 십 년 아니 평생 동안 갈아온 칼을 한 번 휘둘러 보기는 하셨는지? 평생 품어온 뜻을 조금이라도 펼쳐 보셨는지? 혹시 무게도 이기지 못할 너무 큰 칼을 갈고 있는 건 아니신지?(사진출처: 郧阳网)
한시, 계절의 노래 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