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다갱(桑茶坑)을 지나는 길에桑茶坑道中/송宋 양만리楊萬里
晴明風日雨乾時 비가 개어 맑은 날 바람과 햇볕 좋은데
草滿花堤水滿溪 계곡엔 물 가득 방죽에는 꽃과 풀이 가득
童子柳陰眠正著 목동은 버드나무 그늘에서 단잠에 빠졌는데
一牛喫過柳陰西 소는 풀을 뜯으며 그 그늘 서쪽을 지나가네
이 시는 양만리 나이 66세 때 1,192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한 폭의 목가적인 산수화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에 토를 붙여 읽으면 ‘晴明風日雨乾時에 草滿花堤水滿溪를. 童子柳陰眠正著한대 一牛喫過柳陰西를’이 된다. 時 다음에 ‘에’라는 토가 떨어진다. 그러나 내용은 ‘雨乾時’ 다음에 ‘晴明風日’이 온다. 뒤의 구절 역시 ‘水滿溪’가 ‘草滿花堤’ 앞에 와야만 시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첫 구는 4,3의 글자 조합 때문이고 뒤의 구문은 溪와 西를 같은 운목(韻目)에 맞추기 위해서 모두 도치를 한 것이다. 또 ‘草滿花堤(측측평평)’는 ‘草花滿堤(측평측평)’를 도치한 것인데 이는 평측을 고려한 것이다. 이러한 것을 흔히 도장구(倒裝句)라고 하는데 수사법과도 관련이 깊다.
첫 구의 ‘乾’은 발음이 ‘간’으로 ‘마르다.’의 의미이며 ‘우간(雨乾)’은 ‘비가 그치다.’는 뜻이다. 바이두에 보면 우간(雨乾)을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증발하여 흔적이 없어지다.’는 의미로 풀이하였고 우리나라 번역에도 ‘우간’이 들어가는 말을 그런 맥락으로 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이다.
두보의 <세병행> 시에 “농가에선 애타게 바라지만 비가 안 와 안타깝고, 뻐꾸기는 도처에서 봄 씨뿌리기하라 재촉하네.田家望望惜雨乾,布穀處處催春種)”에 쓰인 용례를 보면 ‘우간’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택당 이식의 시에 “봄바람 불어와 강물에 향기가 나고 장마가 그치어 해가 후원에 뜨네(香飄玉道春風轉, 日出瓊林宿雨乾) 같은 시구를 보면 우리나라 시인들도 그렇게들 알고 있었는데 후인들이 조어의 맥락과 도장구를 잘 몰라 원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할 뿐이다.
3구의 정(正)은 ‘한창 ~ 하는 중이다.’의 의미이다.
상다갱(桑茶坑)은 <<양만리집전교(楊萬里集箋校)>>(중화서국)에 의하면 지금 강남의 영국시(寧國市) 서남 35리에 있는 상수갱촌(桑樹坑村)이라 한다. 이 시는 <<양만리집>>에 보면 「영국현을 지나며(過寧國縣)」 뒤에 수록되어 있고 7언 절구 8수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연작시에는 다(茶)에 관한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개한 시는 그 중 7번째 시인데 이 동네를 지나가면서 그 풍광을 노래한 것이다. 이곳은 지금 안휘성 경현(涇縣)에 해당하는데 마을 이름에 갱(坑)이 들어가는 것이 많다. 우리나라도 산골 마을에 가면, 마을 이름에 ~골, ~실, ~뜸 등의 접미사가 붙는데 중국에도 계(溪), 산(山), 강(崗), 갱(坑) 이런 이름이 많다. ‘갱’에 곡(谷)이나 학(壑)의 의미가 있고, 주변에 비해 오망한 곳에는 따로 오(塢)라는 접미사가 있으니, ‘갱’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의 제목을 <뽕나무골을 지나는 길에>로 고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잘 아는 분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이 시에 묘사된 계절은 초여름에 해당하여 달력의 이날에는 덜 어울린다. 계절에 앞서 미리 읽는 셈 치자.
비가 그친 다음날 소를 뜯기러 간 아이는 지루해서 버드나무 그늘에서 쉬다가 졸고 있고 소는 한동안 배가 고팠던지 싱싱한 풀을 만나 한창 식사를 하는 중이다. 계곡에 물이 가득하고 방죽에 풀이 잔뜩 돋아나려면 아마 며칠 비가 내렸음직하다.
바람도 좋고 햇살도 좋은 화창한 날 심심할 정도로 한가로운 산골의 풍경을 보며 지나가는 시인의 마음은 어떠할지? 시인 자체가 산수화의 한 소품은 아닐는지? 절로 만사를 팽개치고 강호를 종횡하며 수묵이나 담채의 한 산수화 소품이 되고 싶다.
(사진출처 naic.org.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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