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경정산에 앉아獨坐敬亭山/ [唐] 이백
새들은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구름 홀로
한가롭게 떠가네
서로 바라보며
싫증내지 않는 건
오로지
경정산 뿐이네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경정산(敬亭山: 安徽省 宣城市 소재)은 흔히 강남시산(江南詩山)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명산이라고 하면 높이가 꽤 높을 걸로 생각하지만 해발 317미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동서 10여 리로 이어진 60여 봉우리가 강남 특유의 운무 및 호수와 어우러져 가히 선경을 방불하게 한다.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 제(齊)나라 시인 사조(謝脁)가 「경정산에서 놀며(遊敬亭山)」 등 오언고시 4수를 남긴 이후 수많은 시인묵객이 유람하며 시와 그림을 남겼다. 그 중 유명 시인만 들어봐도 이 시를 쓴 이백을 비롯하여 왕유, 맹호연, 백거이, 한유, 유우석, 위응물, 매요신, 소식 등이 있다. 모두 중국문학사를 찬란하게 장식한 대가들이다. 또 청나라 유명한 화승(畵僧) 석도(石濤)는 경정산 기슭 광교사(廣敎寺)에서 그곳 풍경을 배경으로 「석도나한백개책엽(石濤羅漢百開冊頁)」이라는 연작 그림을 남겼다. 백 명의 나한이 경정산 선경과 어울린 수묵화는 석도 회화(繪畵)의 진수를 보여준다. 경정산은 가히 시화(詩畵) 일체의 명승지라 할 만하다.
자연이 나와 하나 되는 경지를 ‘물아일체(物我一體)’라 부른다. 이 시도 그렇다. 뭇새들조차 흔적 없이 사라진 허공에는 고독한 구름만 한산하게 떠간다. 고독한 구름에는 시인 이백의 심경이 투영되어 있다. 인간 세상에는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지만, 고독한 구름 아래 묵중하게 앉아 있는 저 경정산만이 싫어하는 표정 없이 시인을 유정(有情)하게 건너다본다. 불우한 삶에 지친 시인도 그런 산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다. 서로 싫어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자연과 마음이 하나로 통한다. 그것은 현실의 분망함에 끄달리지 않는 깨끗하고 깊은 본심(本心)이다. 따라서 셋째 구 ‘불염(不厭)’이야말로 질리지 않고 싫어함 없는, 자연과 나의 깊고 영원한 사랑이다. 이백은 똑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시에서 “중간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하늘 이야기 받는 듯하네(中間最高頂,髣髴接天語)”라고 했다. 산과 나가 하나 되자 마침내 천상의 신탁 언어까지 들을 수 있는 접신 사제의 경지에 도달했다. 과연 이적선(李謫仙)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흔히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자기 본연의 마음자리조차 돌아보지 못한다. 하물며 불운과 불행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이런 때 침묵 속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자연은 내 지친 심신이 찾아갈 수 있는 마지막 의지처다. 저 경정산은 하늘의 언어를 듣는다. 물아일체의 경지 속에서 나와 경정산은 엔드리스 러브로 그 하늘의 언어를 주고받는다. 그것은 침묵으로 통하는 마음 깊은 언어다.(사진출처: 安徽財經網)
한시, 계절의 노래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