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이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정치 얘기를 잘 안 하시나요?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고 작정하신 모양입니다.”
팔보가 말했다. “어떻게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겠느냐? 우리 사는 것이 정치와 관련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토록 관련이 깊은데 왜 말씀을 잘 안 하시나요?”
“네 말의 의미는 내가 ‘이런 당은 이렇고 저런 당은 저렇고, 이 국회의원은 소새끼이고 저 국회의원은 개새끼’라는 류의 말을 잘 안한다는 것이냐?”
“그것도 포함됩니다.”
“그밖에 또 어떤 말이 정치 얘기라고 할 수 있겠느냐?”
“정책을 비판하거나 사회를 진단하거나 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정책 비판? 사회 진단? 나는 그런 거 못한다, 모른다. 여론을 형성한다느니 주도한다느니 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게서 그런 말을 끌어내려고 하지 마라. 나는 정말 머리가 아프다. 생각도 하기 싫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보수 성향이십니까? 진보 성향이십니까? 보수파를 지지하십니까? 진보파를 지지하십니까?”
“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으냐?”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습니다. 정치 관련 언급을 통 안하시니 말입니다.”
“네가 잘 모르겠다면 나는 성공한 것이다. 나는 남들이 함부로 나를 보수니 진보니 규정하고 이러쿵저러쿵 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기회주의적 회색주의적 처신 아닙니까?”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짐작했다. 나는 내가 기회주의적 회색주의적이란 평을 듣더라도 보수나 진보 중 어느 한가지로 규정되어 저들 입맛대로 농락당하는 게 싫다. 사람을 어떻게 둘 중 하나로 갈라놓을 수 있느냐? 이처럼 몰상식하고 몰개성하고 비민주적이고 비양심적인 게 또 있단 말이냐?”
“그래도 사람이 성향이라는 건 있지 않습니까?”
“있지. 그래 있다. 그걸 둘 중 하나로 무 짜르듯 가르면 안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보수’와 ‘진보’는 제대로 된 짝도 아니다. ‘보수’와 상대되는 건 ‘개혁’이다. ‘진보’와 대비되는 건 ‘퇴보’이다. 각각 다른 층위의 개념을 갖다놓고 구분하려고 하는 것이다.”
“알 듯 모를 듯 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 하긴 나도 그러니 말이다. 하여튼 사람의 성향을 둘 중 하나로 억지로 갈라놓고 저들 맘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것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방금 말씀 중에서 ‘저들’은 누구를 말씀하신 것입니까?”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선생님도 포함되시는 것 아닙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너는 왜 내가 기득권층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느냐?”
“한국사회에서 ‘교수’라고 하면 그래도 기득권층 아닙니까?”
“간단히 말하기 힘들지만, 우선 한 가지만 말해두자. ‘직업’이란 관점에서 보면, ‘교수’라는 직업, 솔직히 나쁘지 않다. 하지만 기득권층이라고 규정한다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오늘은 간단히 얘기가 끝날 줄 알았었는데, 얘가 기죽지 않고 끝까지 파고드네. 오늘은 일단 여기서 끊고 다음에 연장전을 벌여야겠다.) 우리 어디 가서 밥 좀 먹고 오자. 오늘 내가 지금까지는 전국 최고로 인정하는 도고 돼지고기 김치찌개 살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