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태감三寶太監 서양기西洋記 통속연의通俗演義 제9회

제9회 장천사가 궁궐에서 황제를 뵙고
모진군은 옥새를 조정에 바치다
張天師金階面主 茅眞君玉璽進朝

孤雲無定鶴辭巢 뜬 구름 정처 없어 학도 둥지를 떠나는데
自負焦桐不說勞 홀로 탄 오동나무 짊어지고 힘들다고 하지 않네.
服藥幾年期碧落 몇 년 동안 단약을 먹어야 신선 세계 갈 수 있을까?
驗符何處呪丹毫 영험한 부적 어디 있어 주문을 외랴?
子陵山曉紅雲密 자릉탄(子陵灘)에 새벽 오니 붉은 구름 자욱하고
靑草湖平雪浪高 푸른 풀밭 같은 호수에 눈 더미 같은 파도 높구나.
從此人稀見踪迹 이로부터 그의 종적 본 사람 드물었으니
還因選地種仙桃 좋은 땅 골라 신선의 복숭아를 심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문무백관들이 황은에 감사하고 물러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는데, 유독 늙은 신하 한 명만이 “만세!”를 외치며 계단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에 황제가 물었다.

“거기 무릎을 꿇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저는 용호산(龍虎山) 정일사교도합무위천조광범진인(正一嗣敎道合無爲闡祖光範眞人)으로서 도교의 일을 영도하고 있는 장(張) 아무개이옵니다.”

“알고 보니 장천사셨구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고 있는 거요?”

“제가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터운 성은을 입었사오니, 일이 생겨서 아뢸 수밖에 없사옵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시구려.”

“어제 여러 이웃나라에서 보물을 진상했사온데, 사실 그것들은 모두 별게 아니옵니다.”

“아니 어디 대단한 것이 또 있다는 말씀이오?”

“예.”

“짐은 천지를 부모로 삼고 천하 백성이 모두 자식으로 삼고 있으니 천하의 재물이며 보물이 모두 내 것인 셈인데, 어찌 그보다 더 대단한 보물이 있을 수 있겠소?”

“이 보물은 천하의 보물이 아니라 제왕의 가문에서 쓰는 보물이옵니다.”

“생애의 부귀를 추구하려면 제왕의 가문 외에 어디서 구하겠소? 짐이 부왕의 기업을 이어받아 서화문(西華門)에 진상 받은 날짐승과 생선이 머리를 왼쪽으로 한 채 놓여 있고, 지금 광혜고(廣惠庫)와 광적고(廣積庫), 승운고(承運庫), 갑자고(甲字庫), 을자고(乙字庫), 병자고(丙字庫), 무자고(戊字庫), 그리고 두 개의 정자고(丁字庫)까지 아홉 개의 창고가 있소. 또 내전에 별도로 장보고(寶藏庫)가 있어서 진주며 호박, 차거, 마노, 산호, 대모, 아청(鴉靑), 대록(大綠), 묘정(猫睛), 조모(祖母) 등등 훌륭한 것들이 아주 많은데 어떻게 또 제왕의 가문에서 쓸 만한 대단한 보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폐하, 황공하오나 소인의 불경을 용서해 주신다면 감히 말씀드리겠사옵니다.”

“괜찮으니 말씀해 보시구려.”

“폐하의 조정에 있는 보물들이 몇 수레나 되더라도, 심지어 산처럼 쌓여 있다 하더라도 이 보물 하나와 대적할 수 없사옵니다.”

“여룡(驪龍)의 목에 걸린 야명주(夜明珠)라도 되는 것이오?”

“야명주 따위는 더욱 얘기할 만한 게 아니옵니다.”

“그 희귀한 보물에도 이름은 있겠지요?”

“예, 있사옵니다.”

“무엇이오?”

“바로 ‘전국보(傳國寶)’라고 하옵니다.”

“혹시 그에 대한 기록이 있소?”

“예, 바로 《지치통감(資治通鑒)》에 기록되어 있사옵니다.”

“짐이 유가와 불가, 도가 삼교(三敎)와 구류(九流), 성현의 경전,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 가운데 보지 않은 게 없거늘, 어찌 그 ‘전국보’라는 것을 보지 못했을꼬?”

“제왕의 학문은 평민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옵니다.”

“아니 왜 다르다는 말씀이오? 설명 좀 해 보시구려.”

“제왕의 학문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는 위대한 도리와 고금의 역사에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흥성하거나 어지럽고 쇠퇴한 이유만을 탐구하옵니다. 이에 비해 평민의 학문은 뜻도 모른 채 그저 문장 구절만 암기하고, 자잘한 구절과 글자 하나하나만 추구하여 화려한 묘사나 박식함을 자랑하는 데에 치우쳐 있사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이 ‘전국보’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시지 못한 것이옵니다.”

“그럼 그대가 좀 설명해 주시구려.”

“옛날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천하를 다스릴 때 요ㆍ순을 거쳐 하(夏), 상(商), 주(周) 삼대(三代)로, 다시 주나라 말엽으로 이어졌사옵니다. 이때 진(秦), 초(楚), 연(燕), 위(魏), 조(趙), 한(韓), 제(齊)의 열국(列國)이 분열하여 서로 다투었사옵니다.

그런데 초나라 여왕(厲王) 때에 그 백성 가운데 변화(卞和)라는 이가 형산(荊山) 아래에 나들이를 갔다가 어느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봉황 한 쌍을 발견했사옵니다. 그는 돌 속에 있는 박옥(璞玉)도 있으니까 이 돌에도 분명히 보배로운 옥이 들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걸 가져와서 여왕에게 바쳤사옵니다. 그래서 여왕이 옥을 감정하는 이에게 살펴보라고 했는데, 그냥 돌이라고 했사옵니다. 여왕은 변화가 군주를 속였다고 여기고 그 오른발 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을 내렸사옵니다. 여왕의 뒤를 이어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변화는 다시 그것을 무왕에게 바쳤사옵니다. 무왕도 옥을 감정하는 이에게 살펴보라고 했는데, 또 평범한 돌이라고 했사옵니다. 이에 무왕도 그가 군주를 속였다고 여기고 그 왼발에 월형을 내렸사옵니다. 변화는 이 돌을 끌어안고 밤낮으로 통곡했는데, 눈물이 말라 피가 흘러내리는지라 그 소리를 듣는 이들조차 가슴이 아팠다고 하옵니다. 나중에 그 뒤를 이은 문왕(文王)이 그의 사정을 듣고 그 돌을 쪼개 보니, 과연 그 안에 티끌 하나 없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옥이 하나 있었다고 하옵니다.

훗날 진시황이 나머지 여섯 나라를 병탄했을 때 이 옥을 얻었고, 그로부터 이십육 년 뒤에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장인을 뽑아 이 옥을 셋으로 쪼개게 했사옵니다. 그 가운데 부분을 갈아서 천자가 나라를 물려주는 데에 쓰는 전국새(傳國璽)를 만들었는데, 폭은 네 치쯤 되고 손잡이 꼭대기에 다섯 마리 용이 뒤얽혀 있는 모습을 조각했으며, 도장이 찍히는 면에는 이사(李斯)가 여덟 글자의 소전체(小篆體) 글자를 새겼사온데 바로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부귀와 장수를 누리며 영원히 번창하리라[受命於天, 富壽永昌].’라는 글이옵니다. 또 왼쪽 부분도 갈아서 도장 모양을 만들었는데, 반듯하게 곧추선 도장 끈 위에는 사람의 눈동자처럼 형형하게 빛나는 두 개의 점이 장식되어 있었사옵니다. 그리고 오른쪽 부분도 갈아서 도장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가로로 비껴 채운 그 도장 끈에서는 찬란한 노을빛이 피어났다 하옵니다. 이 두 개의 도장에는 글자를 새기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다가 이 년 뒤에 진시황이 동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동정호(洞庭湖)에서 큰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히려 하니, 진시황이 두려워서 끈이 가로로 비껴 채워진 도장을 물에 던지라고 명령했고, 그 도장을 던지자 풍랑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옵니다. 이에 다시 끈이 반듯하게 곧추선 도장을 물에 던지게 하니, 풍랑이 더욱 누그러졌다 하옵니다. 결국 전국새까지 물에 던지고 나서야 풍랑이 완전히 가라앉아 배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하옵니다.

마지막으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지 삼십육 년째 되던 해에 사냥을 나갔다가 화음(華陰) 땅에 이르렀는데, 어떤 사람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길을 막았다 하옵니다. 호위병들이 누구냐고 물으니까 그 사람이 ‘이걸 조룡(祖龍, 진시황의 별명)께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하더랍니다. 진시황이 시종에게서 그걸 건네받아 살펴보니 바로 전국새인지라, 황급히 ‘이거 말고도 두 개의 옥도장이 더 있는데 함께 가져왔느냐?’ 하고 물었는데, 시종이 그 말을 전하러 가서 보니 그 사람은 벌써 종적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하옵니다. 그래서 결국 전국새만 진시황에게 돌아간 것인데, 진시황이 붕어하고 나자 자영(子嬰)이 그것을 한나라 고조(高祖)께 바쳤사옵니다.

그런데 왕망(王莽)이 황위를 찬탈하자 원우황태후(元佑皇太后)께서 전국새로 왕심(王尋)과 소헌(蘇獻)을 때리시는 바람에 한쪽 귀퉁이가 깨져서, 그 자리에 황금을 박아 수리했다고 하옵니다. 동한의 광무제(光武帝)께서는 의양(宜陽) 땅에서 이 옥새를 얻었고, 손책(孫策)은 새로 지은 궁전 남쪽의 우물에서 발견된 어느 아낙의 시신이 목에 걸고 있는 것을 얻었으며, 조조(曹操)는 허창(許昌)에서, 당나라 고조(高祖)께서는 진양(晉陽)에서, 송나라 태조(太祖)께서는 ‘진교(陳橋)의 병변(兵變)’ 때에, 원나라 때의 어떤 사람은 어느 산벼랑 아래에서 이 옥새를 얻었다고 하옵니다.”

“그래, 지금은 어디에 있소?”

“원나라 순제(順帝)가 관리하고 있었사옵니다. 이에 우리 태조께서 서국공(徐國公)과 상국공(常國公)으로 하여금 순제를 추격하여 붙잡게 하셨사옵니다. 순제는 계속 패하며 쫓기다가 서쪽 끝의 홍라산(紅羅山)에 이르렀는데, 그 앞은 망망한 서양의 큰 바다였사옵니다. 순제에게는 겨우 일흔일곱 명의 기병(騎兵)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서국공과 상국공은 이번 기회에 삭초제근(削草除根)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고, 순제 또한 배수진을 치고 최후의 일전을 벌일 각오를 하고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하늘은 또 다른 안배를 해 놓고 있었사옵니다. 갑자기 서양의 바다 위에 벌건 구리로 된 다리가 나타나서 순제는 황급히 하얀 코끼리를 타고 전국새를 실은 채 다리를 건너 서쪽의 외국으로 떠나 버렸사옵니다. 두 분 개국공신들이 쫓아가 보니 그 다리는 벌써 없어져 버린 뒤였습니다. 두 분이 홍라산으로 돌아오자 하늘에서 각단(角端)이 내려와 사람의 말을 했다고 하옵니다. 두 분은 그제야 군사를 물려 돌아왔사옵니다. 그래서 대대로 전해오던 그 전국새는 서쪽의 외국으로 가 버렸던 것입니다. 어제 여러 외국 사신들이 바친 보물들 가운데는 그것이 들어 있지 않았으니, 죄다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두 번째 옥도장은 지금 어디 있소?”

“지금 삼모산(三茅山) 원부궁(元符宮) 화양동(華陽洞)의 정령관(正靈官)이 보관하고 있사옵니다.”

“그건 어떻게 해서 삼모산에 있게 되었소이까?”

“구용현(句容縣) 동남쪽에 ‘구(句)’자 모양으로 생긴 산이 하나 있으니 바로 구곡산(句曲山)이옵니다. 도교 서적에서는 이곳이 ‘제팔동천(第八洞天) 제일복지(第一福地)’라고 되어 있사옵니다. 한나라 때에 모(茅)씨 삼형제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몽진인(茅蒙眞人)의 현손(玄孫)이었사옵니다. 개중에 맏이 모영(茅盈)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천하의 명산들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왕진군(王眞君)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도록(道籙)과 부수(符水)를 전수받았사옵니다. 그 후 한나라 원제(元帝) 초원(初元: 기원전 48~기원전 44) 연간에 그 분은 구곡산에 들러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그 산의 특이한 형상과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곧 그곳 화양동에서 연단술(煉丹術)을 수련했사옵니다. 그리하여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어느 백발노인이 찾아와 전해줄 물건이 있다고 해서 받아보니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였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어보려 하는데 이미 그 노인의 모습은 사라져 버린 뒤였사옵니다. 그래서 주머니를 열어 보니 붉은색의 자그마한 상자가 들어 있었사옵니다. 황금 자물쇠를 열고 보니 그 안에 옥도장이 하나 들어 있는데, 넓이는 네 치이고 도장 끈이 반듯하게 곧추서 있고, 그 위에 사람의 눈동자처럼 빛나는 두 개의 점이 박혀 있었다 하옵니다. 도장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았고요. 그래서 그는 산신령이 자신에게 인장을 주었나보다 생각했다고 하옵니다. 나중에 솜씨 좋은 장인을 불러 거기에 ‘구로선도지인(九老仙都之印)’이라고 새기고 곧 구곡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거처를 마련해 지내면서 도호(道號)를 태원진군(太元眞君)이라 하였사옵니다. 그 분이 모씨였기 때문에 구곡산의 이름 역시 모산으로 바뀌게 되었사옵니다.”

“그런데 왜 ‘삼모산’이라고도 부르는 것이오?”

“모영에게는 두 명의 아우가 있었는데 둘째는 무위태수(武威太守)로 있던 모고(茅固)이고, 셋째는 상군태수(上郡太守)로 있던 모충(茅衷)이었사옵니다. 이들은 모영이 도를 깨달아 신선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벼슬을 버리고 모산으로 찾아가 형과 함께 밤낮으로 수련하여 모두 지선(地仙)이 되었사옵니다. 모고는 도호를 정록진군(定籙眞君)이라 하고 둘째 봉우리에 거처를 마련했고, 모충은 도호를 보명선군(保命仙君)이라 하고 셋째 봉우리에 거처를 마련했사옵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면서 ‘삼모산’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이옵니다.”

“그 도장은 나중에 누가 관리했소?”

“삼모진군이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뒤로 천하의 도사들을 두루 초빙하여 사당을 세우고 제를 모셨는데, 도관을 위아래 둘로 나누었사옵니다. 이곳은 역대로 황궁에서 하사하신 전답이 만여 마지기나 되는데 모두 아래 도관에서 관리하고 있고, 위쪽 도관도 대대로 물려받고 있사옵니다. 그 도량 역시 대대로 직위를 물려받은 이가 관리하고 있사옵니다.”

“세 번째 옥도장은 지금 어디에 있소?”

“제 도관에 있사옵니다.”

“그건 어떻게 해서 그대의 도관에 들어오게 되었소?”

“제 고향인 귀계현(貴溪縣)에서 서남쪽으로 팔십 리쯤 떨어진 곳에 높다란 용이 하늘을 우러르고 호랑이가 쪼그려 앉은 듯한 두 개의 봉우리가 대치하고 있어서 용호산(龍虎山)이라고 부르는데, 도교 서적에 따르면 서른두 번째 복지라고 하옵니다. 제 조상은 장도릉(張道陵)이라는 분이온데, 바로 한나라 때 유후(留侯)에 봉해진 장량(張良)의 팔대 후손이옵니다. 그 분은 절강의 천목산(天目山) 근처에서 태어나 자라셨는데, 어린 시절 장생술(長生術)을 익히시고 천하의 명산을 두루 돌아보시다가 동쪽으로 안흥(安興) 운금계(雲錦溪) 선암동(仙巖洞)에 이르셔서 삼년 동안 연단술을 수련하시니, 청룡과 백호가 그 위를 둘러싸고 보호해 주었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수련을 완성하여 진인(眞人)이 되셨을 때에는 연세가 예순이셨는데도 용모가 갈수록 젊어지셨다고 하옵니다. 또 신선의 비결이 담긴 책을 얻으셔서 신통력과 변신술을 익히시고 요괴와 귀신을 쫓아 없애셨사옵니다. 또 촉(蜀) 땅의 운대봉(雲臺峰)에서 귀신 우두머리를 하나 잡았는데, 그놈이 목숨을 구걸하면서 물건을 하나 바쳤사옵니다. 제 조상께서 받아 보니 옥으로 만든 도장이었는데, 옆으로 비스듬히 매어진 끈에서 자주색 노을빛이 찬란하게 빛났다고 하옵니다. 제 조상께서 이 도장을 얻은 후로 거기에 글자를 새기지는 않았지만 술법이 더욱 고명해지셔서, 한나라 효장황제(孝章皇帝)께서 천사(天師)에 봉해 주셨사옵니다. 이에 그 옥도장을 씻고 ‘한천사장진인지인(漢天師張眞人之印)’이라는 글자를 새겼사옵니다. 그 분께서는 훗날 용호산에서 신선 세계로 승천하셨는데, 지금도 비승대(飛升臺) 유적이 남아 있사옵니다. 그 분께서 남기신 경전과 부록(符籙), 부장(符章), 도장과 검(劍)은 자손에게 전해지고 있사옵니다. 용호산 아래에는 그 분께서 도에 대해 설명하셨던 연법관(演法觀)이 있사온데, 그곳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무성하옵니다. 나중에 이곳에 천사부(天師府)를 세웠사온데, 저희 집안에서 천사의 직위를 세습하며 이곳에 살고 있사옵니다. 송나라 때 강만리(江萬里)라는 분이 이를 증명하는 시를 지었사옵니다.”

鑿開風月長生地 경치 좋고 장생할 땅을 개간하여
占却烟霞不老身 신선으로 늙지 않는 몸이 되었다네.
虛靜當年仙去後 허정한 경지에 이르러 신선 세계로 떠난 뒤에
不知丹訣付何人 수련의 비결은 누구에게 주었을까?

“그 도장이 그대의 도관에 있다는 거요?”

“예,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왜 짐에게 바치지 않고 있는 것이오?”

“도장이 저희 도관에 있사오나 저희는 그저 그것을 쓸 수만 있을 뿐 관리할 수는 없사옵니다.”

“아니, 왜 그런 것이오?”

“이 도장은 하늘나라에 계신 장도릉 천사의 거처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 분은 하늘나라 어디에 계시오?”

“도솔천(兜率天) 청허부(淸虛府)에 계시옵니다.”

“그렇다면 그 도장은 어떻게 쓰는 것이오?”

“저희 도관이 있는 산 아래에 작은 오솔길이 하나 있는데, 그대로 비승대로 통하게 되어 있사옵니다. 이전의 진인들께서는 모두 그곳에서 하늘로 날아 올라가 도장을 가져와서 썼사옵니다.”

“지금은 어떻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틀어졌사옵니다. 당나라 말엽에 어느 풍수지리가의 조언에 따라 그 길을 중간에서 끊어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없게 되었사옵니다.”

“그렇다면 그 도장을 어떻게 쓴단 말씀이오?”

“저희 조상께서 손톱을 하나 남겨놓으셨는데, 저희들이 급히 도장을 쓸 때 소난향(燒難香)이라는 향을 사르고 그 손톱에 향 연기를 쬐게 하옵니다. 그러면 저희 조상께서 즉시 허공중에 모습을 드러내시고, 아무리 많은 소원이 담긴 문서라 할지라도 단번에 도장을 찍어서 처리해 주시옵니다. 지금 저희는 이런 식으로 그 도장을 쓰고 있사옵니다.”

“짐이 그 전국새를 쓰고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오.”

“그건 이미 서쪽으로 가 버렸는데 어떻게 구할 수 있겠사옵니까?”

“서양인이 간 길을 우리 중국인이 가지 못할 까닭이 있겠소? 즉시 남북의 인마(人馬)를 동원하고 오부(五府)의 후백(侯伯)들과 마흔여덟 곳 지휘(指揮)들, 천호장과 백호장들로 하여금 서양으로 정벌을 나가게 하면 되지 않겠소?”

“그것은 길이 너무 멀고 험준해서 남방의 인마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사옵니다.”

“오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산 아래의 길을 찾으면 되지 않소? 천사, 아무래도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구려. 그대도 서양에 다녀온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길을 가기가 그리 어렵다는 걸 아시는 거요?”

“저는 천문과 지리를 살펴 아는 것이온데, 폐하께서 하문하시니 길이 어렵다고 아뢸 수밖에 없었옵니다.”

“대체 얼마나 가기 어려운지 좀 들어보십시다.”

“그야 아뢰옵기 어렵지 않지만, 폐하께서 들으시고 놀라실까 염려스럽사옵니다.”

“허허, 짐이 북평(北平)에 주둔하고 있을 때는 만리장서 너머로 나가 오랑캐들을 무찔러 시산혈해를 이루었지만, 기껏 병아리 몇 마리 쓸어 버린 것쯤으로 치부했소. 백만 대군의 적군들 속에서 대장의 목을 베는 일도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이 태연하게 해치웠소. 설령 하늘 문을 뒤흔들고 지옥을 무너뜨리는 일도 애들 놀이쯤으로 여기는데, 놀랄 일이 어디 있겠소?”

“그렇다면 제 죄를 논하지 않으신다는 분부를 내려 주시옵소서.”

“너무 겸손하지 마시고, 어서 말씀해 보시구려.”

“부(府)와 주(州), 현(縣), 도(道), 마을, 나루터 같은 것들은 모두 자세히 아뢰지 않겠사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조금 간단하게 하려는 게로구려. 그저 험한 관문이나 나루터, 협곡 등에 대해서만 말씀해 보시구려.”

“하늘과 땅이 생겨나고 해와 달이 운행하게 되면서 천하에는 네 개의 큰 대륙이 생겨났으니 동승신주와 서우하주, 남선부주, 북구로주가 그것이옵니다. 폐하께서 다스리고 계신 산하는 바로 남선부주에 속한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병사를 출정시키시려면 뱃길로 가셔야 하는데, 우선 장강을 따라 나가서 맹하(孟河) 입구에 이른 다음 일본 부상(扶桑)과 유구(琉球), 교지를 거치게 되는데, 그 앞쪽에 오백 리에 이르는 흡철령(吸鐵嶺)이 있사옵니다. 흡철령을 지나면 앞쪽에 또 천리에 이르는 홍강(紅江) 입구가 나타납니다. 그곳을 지나면 삼백 리에 이르는 백룡강(白龍江)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면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사옵니다.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씀이옵니다!”

“아니, 왜요?”

“그 앞은 바로 팔백 리에 이르는 연양탄(軟洋灘)이온데 어떻게 지날 수 있겠사옵니까?”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오?”

“모든 강물이며 호수, 사해의 바다에 있는 물은 모두 단단하여 배가 안전하게 떠서 순풍에 돛을 달고 갈 수 있사옵니다. 하지만 이 팔백 리의 물은 연약하여 거위 깃털도 그대로 바닥에 가라앉아버리고 부평초 하나도 떠 있을 수 없사온데 어떻게 지나갈 수 있겠사옵니까?”

“어쨌든 거길 지나면 뭐가 나타나오?”

“그 바다의 이쪽이 남선부주이고, 거길 지나면 서우하주가 나타나옵니다.”

“거긴 어떤 곳이오?”

“거기 도착하면 말할 수 없이 곤혹스러운 일들과 헤아릴 수 없이 괴상망측한 상황에 처하게 되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시구려.”

“가령 금련보상국(金蓮寶象國)과 자바 왕국[爪哇國], 서양여인국[西洋女兒國], 수마트라 왕국[蘇門答剌國], 살발국(撒髮國), 유산국(溜山國), 대갈란 왕국(大葛蘭國), 가지 왕국(柯枝國), 소갈란 왕국(小葛蘭國), 고리 왕국[古俚國], 금안국(金眼國), 시그라 왕국[吸葛剌國], 모가디슈 왕국[木骨都國], 호르무즈 왕국[忽魯謨斯國], 은안국(銀眼國), 아덴 왕국[阿丹國], 천방국(天方國), 풍도귀국(酆都鬼國)이 있사옵니다. 이 열여덟 나라에는 각기 모사(謀士)와 군사(軍師), 일만 명의 장부도 이겨내지 못할 용력(勇力)을 지닌 장군과 하늘을 가리고 해를 덮을 만한 능력을 지닌 병사들이 있사옵니다. 그리고 병사를 부리고 계책을 세울 능력을 지닌 뛰어난 부녀자들과 창과 봉을 휘두르며 춤을 출 수 있는 뛰어난 하녀들과 하인들도 있사옵니다. 또 아주 뛰어난 초선(草仙)과 귀선(鬼仙), 인선(人仙), 신선(神仙), 지선(地仙), 조사(祖師), 진군(眞君), 중품(中品), 천존(天尊) 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번개와 우레를 부리는 능력이 있사옵니다. 또한 호승(胡僧)과 성승(聖僧), 선승(禪僧), 행각승, 라마승, 고불승(靠佛僧) 같은 뛰어난 승려들이 있는데, 모두들 귀신을 부리고 강과 바다를 뒤엎고 천지를 진통시킬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사옵니다. 이야말로 힘 센 용도 땅 위의 뱀하고는 싸우지 않는 격이오니, 우리 남조(南朝)의 인마가 어찌 거기에 갈 수 있겠사옵니까?”

“전쟁 얘기는 그만합시다. 다만 이 돌덩이 때문에 멀리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안 되겠구려.”

“전국옥새는 결국 돌아오지 못할 것이옵니다.”

“전국옥새도 구할 수 없고, 그대의 도관에 있는 옥도장도 도솔천 청허부에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모산에 있는 도장을 짐이 쓸 수는 없겠소?”

“무릇 수련하여 신선의 지위까지 오르려면 세 왕조에 걸쳐 천자가 누리는 복과 일곱 세대에 걸쳐 장원급제할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합니다. 천자와 신선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니, 삼모조사의 도장을 폐하께서 쓰지 못하실 이유가 있겠사옵니까?”

“명을 내리겠소. 금패를 하나 발부하여 삼모산으로 유능한 관리를 한 명 파견해서 그 도장을 짐에게 가져오도록 하시오.”

그러면서 연신 세 번이나 물었다.

“누가 다녀올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계단 아래에서는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용상의 왼쪽에 시립해 있던 요태사(姚太師)가 아뢰었다.

“시비는 그걸 제기한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법이오니, 얘기를 꺼낸 장진인을 보내시옵소서.”

황제는 그게 좋겠다고 어명을 내리고 대전을 나갔다. 장천사는 어명을 받자 금패를 수령하고 나서 교위(校尉)들을 거느린 채 즉시 밤길을 달려 출발하여, 통제문(通濟門)을 나와 고교문(高橋門)을 지나서 구용현까지 구십 리 길을 달려갔다.

‘요태사는 분명 출가한 승려라서 이런 수작을 부린 게야. 오늘 우리 유가와 불가, 도가가 본래 여러 세대 동안 서로 왕래하며 친하게 지내는 걸 알았는데, 그 자는 아무 이유 없이 나한테 이 일을 시켜 모함하려 하는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구용현에 도착하니, 그곳 관리가 마중을 나왔다. 장천사가 말했다.

“성지를 받들고 왔으니, 인사를 나눌 겨를이 없소.”

그리하여 곧장 삼모산으로 갔다.

한편 삼모산 정령관(正靈官) 역시 종팔품(從八品)의 벼슬아치였고, 부령관(副靈官)은 종구품의 벼슬아치였다. 이날은 바로 대전을 청소하는 3월 18일이어서 두 영관은 당직하는 도사들을 이끌고 대전을 청소하고 문에 자물쇠를 잠근 다음 각자 하산하여 거처로 돌아가 쉬고 있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갑자기 바깥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산꼭대기에 불이 났어!”

이에 모든 도사들과 영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산꼭대기로 달려갔지만, 그곳에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다시 거처로 돌아오니 다시 산꼭대기에 불꽃이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자 도사들이 웅성거렸다.

“이런! 분명 무슨 재앙이 닥칠 징조인 게야!”

이에 영관이 말했다.

“불꽃이 피어났다는 건 혹시 아주 지체 높은 귀인(貴人)이 오신다는 징조가 아닐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희미하게 여명이 밝아오는 가운데, 전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명이오! 어서 탁자에 향을 피우고 명을 받으시오!”

그 말에 놀란 도사들은 모두들 법의(法衣)를 찾으러 술집으로 달려갔고, 영관들도 허둥지둥 제자들의 침상으로 달려가 더듬더듬 모자를 찾았다. 장천사는 성지를 받들고 금패를 받든 교위와 함께 산꼭대기 대전으로 들어가 성지를 펼쳐 읽었다. 그런 다음 삼모조사에게 참배하고 황금 향로에서 향을 하나 집어 들었다. 장천사는 조사에게 참배할 때 무릎을 꿇어 절하지 않고 그저 두 손을 모아 세 번 들어 올리고, 이를 세 번 “딱! 딱! 딱!” 부딪치고 나서 바로 대전을 나와 앞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영관이 옥도장을 받들고 나와 용이 똬리를 튼 문양이 새겨진 상자에 담아서 장천사에게 건넸다. 장천사는 조급한 마음에 곧장 그곳을 나와 남경(南京)으로 향했다.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急遞思鄕馬 고향 그리며 황급히 말을 갈아타며 달리고
張帆下水船 돛을 펼치고 물길 따라 배를 모네.
流星不落地 유성처럼 땅에 떨어지지도 않고
弩箭乍離弦 쇠뇌의 화살처럼 순식간에 시위를 떠나네.

장천사는 이 상자를 받들고 서둘러 통진문을 들어가 회동관(會同館)에서 묵었다. 그리고 황제가 대전에 오르는 새벽인 오경 무렵에 문무백관들과 함께 조정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이런 모습이었다.

臨軒啓扇似雲收 황제께서 대전에 이르시니 구름 걷히듯 부채가 펼쳐지니
率土朝天劇水流 천하의 신하들 세찬 물길처럼 조정으로 향하네.
瑞色含春當正殿 봄빛 머금은 상서로운 새벽빛 대전을 비추나니
香烟捧日在髙樓 향 연기 속에 해를 받들고 높은 누대에 오르네.
三朝氣早迎恩澤 삼조(三朝)의 이른 아침 은택을 맞이하나니
萬嵗聲長繞冕旒 만세 소리 길게 이어져 면류관을 감싸네.
請問漢家功第一 물어보세, 한나라 왕실의 일등공신은 누구인가?
麒麟閣上識酇侯 기린각에 오르면 찬후(酇侯) 소하(蕭何)를 보리라.

황제가 대전에 오르자 문무백관들이 조정에 들어갔다. 이어서 어명을 전하는 이가 소리쳤다.

“문무 관원들이 모두 모였는가?”

그러자 문무 반원을 인솔하는 압반관(押班官)이 나아가 아뢰었다.

“문관도 빠진 사람이 없고 무장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미 서열에 따라 정렬해 있사옵니다.”

“보고할 일이 있는 관리는 나와 보고하고, 별일 없으면 물러가도록 하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문관(黃門官)이 아뢰었다.

“장천사가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사옵니다.”

“들라 하라!”

이윽고 장천사가 황궁에 들어와 다섯 번 절을 올리고 세 차례 머리를 조아린 후 만세삼창을 했다.

“그래 도장은 어디 있소?”

“함부로 들여오지 못하고 지금 오문에 놓아두었사옵니다.”

“옥새를 안으로 들여오도록 하시오.”

장천사는 황급히 오문으로 가서 용이 똬리를 튼 모습을 장식한 상자를 들어 예부상서에게 전하니, 예부상서가 다시 조정 일을 관장하는 원로대신에게 전했다. 원로대신이 이를 받아 사례감(司禮監)의 태감(太監)에게 전하니, 태감이 그것을 황제 앞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황제가 살펴보니 과연 그 옥새에서는 노을빛 서기가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황제는 무척 기뻐했으나, 거기에 새겨진 글자는 조정에서 쓰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거기에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기에 조정에서 쓰기 부적합했는지, 나중에 어떻게 글자를 바꿔 새겨서 조정에서 쓸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