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화의-왕유王維 배적에게 주노라贈裴十迪

배적에게 주노라贈裴十迪/왕유王維

風景日夕佳, 해 저문 저녁 풍경 아름다워
與君賦新詩. 그대에게 새로운 시 지어주노라.
澹然望遠空, 고요히 먼 창공 바라보며
如意方支頤. 여의로 내 턱을 받친다.
春風動百草, 봄바람은 온갖 풀을 흔들고
蘭蕙生我籬. 난초와 혜란은 우리 울밑에 돋았다.
暧暧日暖閨, 어둑어둑 해는 안방을 따뜻하게 하고
田家來致詞. 농부가 찾아와 이야기 나눈다.
欣欣春還皐, 푸릇푸릇 봄은 물가 들녘으로 찾아와
澹澹水生陂. 출렁출렁 물결이 연못에 인다.
桃李雖未開, 복숭아·자두나무 꽃은 피지 않았지만
荑萼滿其枝. 새순과 꽃 봉우리가 온 가지에 가득하다.
請君理還策, 청컨대, 그대 돌아갈 지팡이 준비하게
敢告將農時. 감히 알리노니 곧 농사철이라오.

[해제]

이 시는 왕유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이자 시우(詩友) 배적(裴迪)에게 준 성당 시기의 전원산수시다. 그는 젊은 시절 왕유, 최흥종(崔興宗)과 같이 종남산(終南山)에 머물며 화창했다. 개원 말기에는 장구령(張九齡)의 형주막부(荆州幕府)에서 근무했으며 숙종 때는 촉주자사(蜀州刺史)를 지냈는데, 이때 두보와 교유했다. ≪전당시≫에 그의 시 29수가 수록되어 있다.

왕유가 망천장에서 은거하며 지낼 때 봄풀이 돋고 새순과 꽃 봉우리가 가지에 매달린 모습을 보면서 망천장의 봄소식을 마치 화폭에 담듯 쓴 시이다. 왕유는 <우연히 짓노라(偶然作)>(6)에서 “당대에 잘못하여 시인이 되었지만, 전생엔 분명 화가였으리라.(當代謬詞客, 前身應畵師.)”라고 말했듯이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시에는 시각적 이미지 표현이 두드러진다.

오언고시 상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