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균수법補錦勻綉法
【정의】
‘보금균수법補錦勻綉法’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천을 덧대 비단을 깁고 바늘을 놀려 자수를 가지런히 하는 것’을 말한다. 마오쭝강毛宗崗은 《삼국지독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서사 기법은 이 편에서 모자라는 것은 저 편에서 채우고, 상권에서 남은 것은 하권에 나누어 고르게 하는 법이다.此篇所闕者補之於彼篇, 上卷所多者勻之於下卷.” 이러한 ‘보금균수법’의 효과는 “앞의 글이 늘어지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뒤의 글 또한 적막하게 되도록 놔두지 않고, 앞의 사건에서 빠지는 것이 없게 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사건 역시 지나치지 않게 하는不但使得前文不拖沓, 而亦使后文不寂寞, 不但使前事不遺漏, 且又使后事增渲染” 데 있다.
이 때 전제가 되는 것은 ‘작자의 마음속에 미리 전체적인 틀에 대한 구상이 있어야 한다胸中成竹’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상이 없이 되는 대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다가는 앞뒤의 대칭이 맞지 않고 균형도 맞지 않게 된다. 곧 ‘보금균수법’은 결코 “마음속에 바닥이 없는 것(心中無底)”이 아니다. 마오쭝강은 이렇게 함으로써, “앞에서는 발자국을 남겨 뒤와 호응하고, 뒤에서는 앞과 호응하여 돌이켜 비춰보게 한다. 사람들에게 이를 읽어보게 한다면 진정 [이렇게 긴] 한 편의 소설이 [짧은 글] 한 구절과 같이 긴밀하게 얽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前能留步以應後, 後能回照以應前, 令人讀之, 眞一篇如一句”이라 말했다.
【실례】
마오쭝강은 《삼국지연의》에서 ‘보금균수법’을 활용한 예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었다.
이를테면, 뤼부呂布가 차오뱌오曹彪(?~196년)의 딸을 취한 일은 본디 쉬저우徐州를 빼앗기 전의 일인데, 도리어 그가 샤피下邳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에야 이 일을 서술했다.
차오차오曹操가 병사들로 하여금 매실을 떠올리게 하여 목마름을 멎게 한 일은 본디 장슈張繡를 공격하던 무렵의 일인데, 오히려 푸른 매실을 따고 술을 데워 류베이와 마시던 때에 이 일을 서술했다.
관닝管寧이 화신華歆(157~231년)의 속됨을 싫어하여 자리를 따로 앉은 일은 본디 화신이 벼슬을 하기 전의 일인데, 도리어 차오차오의 명을 받고 화신이 벽을 부수고 숨어있던 푸 황후伏皇后를 끌어냈을 때에 그 일을 서술했다.
우 부인吳夫人이 품에 달이 들어오는 꿈을 꾸었던 것은 본디 쑨처孫策를 낳으려 할 때 있었던 일인데, 오히려 임종시 유언을 남길 때에야 이 일을 서술했다.
주거량이 황 씨黃氏를 배우자로 삼았던 것은 본디 삼고초려 이전의 일인데, 도리어 그의 아들 주거잔諸葛瞻이 재난을 만나 죽을 때에 이르러서야 이 일을 서술했다.
이와 같은 예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如呂布取曹豹之女, 本在未奪徐州之前, 却于困下邳時敍之; 曹操望梅止渴, 本在擊張繡之日, 却于靑梅煮酒時敍之; 管寧割席分坐, 本在華歆未仕之前, 却于破壁取后時敍之; 吳夫人夢月, 本在將生孫策之前, 却于臨終遺命時敍之; 武侯求黃氏爲配, 本在未出草廬之前, 却于諸葛瞻死難時敍之。
이 가운데 제16회에서 차오차오曹操가 장슈張綉를 공격하던 일과 제21회에서 푸른 매실을 따고 술을 데워 류베이를 초청해 술을 마신 일을 예로 들겠다. 차오차오가 장슈를 친 제16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차오차오는 병사 15만을 일으켜, 세 길로 나누고 자신이 직접 장슈를 정벌한다. 장슈의 참모 쟈쉬賈詡는 차오차오 군의 기세가 강하니 항복할 것을 권고하고, 장슈는 그의 말을 따른다. 장슈가 차오차오에게 잘 보이려고 매일 연회를 베풀어 차오차오를 초청했으나, 차오차오는 도리어 장슈의 숙모인 쩌우 씨鄒氏를 진영으로 불러들여 향락을 추구하며 즐겨 놀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장슈는 그 모욕을 참지 못하고 쟈쉬와 몰래 모의하여, 차오차오가 즐기며 놀고 있을 때를 틈타 사방에 불을 지르고 군사를 동원해 차오차오를 죽이려 했다. 이에 앞서 차오차오의 측근인 용맹한 장수 뎬웨이典韋를 술에 취하게 만들고 그의 쌍철극을 몰래 훔쳐 숨겨두었다. 결국 뎬웨이는 혼자 장슈의 군사들과 맞서 싸우다 죽고, 차오차오는 그 사이 말을 타고 탈출한다. 그러나 도망가던 중 조카인 차오안민曹安民이 척살 당하고 차오차오가 타고 가던 말도 화살을 맞고 죽는다. 위기에 빠진 차오차오를 구하기 위해 장남인 차오양曹昻이 아비를 위해 자신의 말을 양보하고 그 자신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는다. 겨우 사지를 벗어난 차오차오는 위진于禁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장슈의 군사를 물리친다.
차오차오는 이로부터 5회가 지난 제21회에서 이 때의 일을 다시 거론하며, 흔히 ‘망매지갈望梅止渴’이라 알려진 고사를 이야기한다. 차오차오는 큰 뜻을 감추고 자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류베이를 찾아가 함께 술을 마시며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보충 설명했던 것이다. 이렇게 앞서 일어났던 사건의 한 대목을 뒤에 다시 서술함으로써 “비단을 깁고, 자수를 가지런히 하는”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보금균수법’이다.
【예문】
차오차오는 그의 말을 좇아 마침내 봉군도위 왕쩌王則에게 관직을 내리는 한편 15만 대군을 일으켜 친히 장슈를 토벌하러 나섰는데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나가게 하고 샤허우둔夏侯惇을 선봉으로 삼았다. 전군은 위수이淯水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
쟈쉬가 장슈에게 권했다.
“차오차오의 세력이 너무 커서 대적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성을 들어 항복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장슈는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쟈쉬를 차오차오의 영채로 보내 항복할 뜻을 전하게 했다. 무엇을 물어도 흐르는 물같이 거침없이 대답하는 쟈쉬를 보고 차오차오는 매우 탐이 나서 그를 모사로 쓰고 싶었다. 그러나 쟈쉬는 사절했다.
“저는 지난날 리줴李傕를 따르면서 천하에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은 장슈를 따르는데 저의 말이라면 다 들어 주고 제가 내는 계책이면 다 써 주니 차마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에 하직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쟈쉬가 장슈를 데리고 와서 차오차오에게 알현시켰다. 차오차오는 장슈를 매우 후하게 대접했다. 차오차오는 군사를 일부만 거느리고 완청宛城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군사들은 성밖에 나누어 주둔시켰는데, 그 영채와 목책이 10여 리나 이어졌다. 성안에 머무는 며칠 동안 장슈는 매일같이 차오차오를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하루는 술에 취한 차오차오가 침소로 돌아와 곁에서 모시는 자들에게 가만히 물었다.
“이 성 안에 기녀가 있느냐?”
차오차오 형의 아들인 차오안민이 차오차오의 속뜻을 알아차리고 은밀히 대답했다.
“지난밤 제가 관사 곁을 엿보다 한 부인을 발견했는데, 엄청난 미인이었습니다. 물어 보니 장슈의 숙부인 장지張濟의 처라고 하더이다.”
차오차오는 듣고 나서 즉시 차오안민에게 무장한 군사 50명을 거느리고 가서 그 여인을 잡아 오게 했다. 잠시 후 군중으로 잡아왔는데 차오차오가 보니 과연 아름다웠다. 성을 묻자 부인이 대답했다.
“소첩은 장지의 처 쩌우 씨입니다.”
……
“내가 장슈의 항복을 받아 준 것은 부인 때문이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멸족시켰을 것이오.”
이 말에 쩌우 씨는 절을 올리며 사례했다.
“살려주신 은혜 정말 감사하나이다.”
……
이날 밤 두 사람은 휘장 안에서 함께 잤다.
……
차오차오는 매일 쩌우 씨와 즐기면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때 장슈의 집 하인이 이 사실을 장슈에게 은밀히 알렸다. 장슈는 크게 노했다.
“차오차오 도적놈이 나를 너무도 심하게 모욕하는구나!”
즉시 쟈쉬를 불러 대책을 의논하니 쟈쉬가 말했다.
“이 일이 새어나가면 안 됩니다. 내일 차오차오가 군막으로 나와서 업무 보기를 기다려 이러저러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그러나 뎬웨이의 용맹이 두려워서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
“뎬웨이가 두려운 것은 쌍철극을 쓰기 때문입니다. 주공께서 내일 그를 초대해 술을 잔뜩 먹여서 돌려보내십시오. 그때 제가 그를 따라온 군사들 틈에 섞여 몰래 군막으로 들어가 우선 쌍철극부터 훔쳐내겠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이 날 밤 차오차오가 군막 안에서 쩌우 씨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군막 밖에서 사람 소리와 함께 말울음 소리가 들렸다. 사람을 내보내 알아보게 했더니 장슈의 군사가 야간 순찰을 돌고 있다고 했다. 차오차오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2경이 가까워졌을 무렵 문득 영채 안에서 고함 소리가 일어나더니 말에게 줄 꼴을 실은 수레에서 불이 났다고 했다. 차오차오가 지시했다.
“군사들이 실수로 불을 낸 것 같으니 놀라지들 말라.”
조금 지나자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차오차오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허둥거리며 다급하게 뎬웨이를 불렀다. 뎬웨이는 한창 술에 골아 떨어져 자고 있는 판인데 꿈결에 징소리, 북소리, 고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지라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쌍철극이 보이지 않았다. 적병은 이미 원문까지 들이닥쳤다. 뎬웨이는 급히 보졸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원문 앞을 보니 무수한 군마가 저마다 긴 창을 꼬나들고 큰 영채 안으로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뎬웨이는 힘을 떨쳐 앞으로 나아가며 연거푸 20여 명을 찍어 넘어뜨렸다. 기병이 겨우 물러나자 보병이 또 들이닥쳤다. 양편에 벌여 선 창들이 갈대숲 같았다.
갑옷 한 조각 걸치지 못한 뎬웨이는 아래위로 온몸에 수십 군데나 창에 찔렸지만 여전히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칼날이 이가 다 빠져 쓸 수 없게 되자 칼을 내동댕이치고 한 손에 하나씩 군사 둘을 움켜쥐고 적을 맞받았다. 순식간에 8,9명을 쳐 죽이자 적군의 무리가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만 멀리서 활만 쏘아댔다. 화살이 소낙비처럼 쏟아졌지만 그래도 뎬웨이는 결사적으로 영채 문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적군은 이미 영채 뒤쪽으로 들어와서 뎬웨이의 등에 창을 꽂았다. 등에 창을 맞은 뎬웨이는 마침내 큰소리로 몇 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땅바닥에 흥건하게 피를 흘리며 죽었다. 하지만 죽은 지 한참이 지나도록 누구도 감히 앞문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한편 차오차오는 뎬웨이가 영채 문을 막고 있는 사이 영채 뒤로 빠져나와 말을 타고 달아났다. 오직 차오안민 만이 두 발로 뛰며 뒤를 따를 뿐이었다. 차오차오는 오른팔에 화살 한 대를 맞았고 타고 있던 말도 세 군데나 화살을 맞았다. 다행히도 그 말은 대완大宛(페르샤)에서 난 명마였기에 고통을 참고 빨리 달렸다. 위수이淯水 강변에 거의 이르렀을 때였다. 추격병이 쫓아와서 차오안민을 찍어 넘겨 짓이겨 버렸다. 차오차오는 급히 말을 몰아 물결을 헤치고 강을 건넜다. 간신히 건너편 기슭에 오르자 적병이 쏜 화살이 정통으로 말의 눈알에 맞았다. 말은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차오차오의 맏아들 차오양이 즉시 자기가 타고 있던 말을 차오차오에게 바쳤다. 차오차오는 급히 말에 올라 달아났지만 차오양은 어지러이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 죽었다. 마침내 적의 추격권에서 벗어난 차오차오는 길에서 장수들을 만나 남은 군사들을 수습했다.( 《삼국지연의》 제 16회)
……
차오차오가 말했다.
“마침 가지 위의 매실이 파랗게 달린 것을 보니 문득 지난해에 장슈를 치러 가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길에서 물이 떨어져 장졸들이 모두 갈증을 이기지 못하더이다. 그래서 내가 문득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내고선 채찍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며 ‘저 앞에 매화숲이 있다’고 했지요. 그 말을 들은 군사들은 모두 새콤한 매실 맛을 떠올리곤 입안에 군침이 돌아 갈증을 면했다오. 오늘 이 매실을 보니 그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구려. 마침 술도 따끈하게 데워졌기에 사군과 정자에서 한 잔 하려고 청했소.”( 《삼국지연의》 제 2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