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법反常法
【정의】
‘반상법’은 일반적인 상황에 위배되는 표현을 말한다. 이를테면, 극도로 비통한 순간 오히려 웃는다든지 반대로 극도로 즐거운 순간 눈물을 떨구는 것 등이 그러하다. 소설을 창작할 때는 고의로 한 인물이 특정한 환경에서 상궤에서 벗어난 심리상태를 보이거나 행동하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그 인물의 심리 세계를 투시하고 인물의 성격 특징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반상법’은 인물의 극단적인 정서와 행위를 표현해 내기 때문에 정면으로 직서直敍하는 것보다 인물의 성격 특징을 한층 더 심각하게 드러내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의 심미적인 정취를 훨씬 더 북돋아 준다.
【실례】
《삼국지연의》에서 츠비赤壁에서의 싸움에서 대패한 차오차오曹操는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 통곡을 하고 눈물을 흘려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차오차오는 오히려 우린烏林과 후루커우葫蘆口, 화룽다오華容道 등지에서 세 차례나 “앙면대소仰面大笑”한다. 또 난쥔南郡에 도착해 위기에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크게 운다.” 이것은 마오쭝강毛宗崗이 제50회 협비에서, “마땅히 울어야 할 때 오히려 웃고, 마땅히 웃어야 할 때 오히려 우는 것이야말로 간웅의 울음과 웃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바이다宜哭反笑, 宜笑反哭, 奸雄哭笑與衆不同”라고 말한 것과 같다.
《홍루몽》에서 린다이위林黛玉는 총명하고 다정다감한 아가씨로, 작중에서 그녀는 늘상 눈물로 자신의 우수憂愁와 한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사랑하는 쟈바오위賈寶玉가 쉐바오차이薛寶釵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오히려 울지 않고 웃는다. 이것 역시 ‘반상법’을 운용한 것이다. 다이위는 실성한 듯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쯔쥐안紫鵑을 보고 웃는다. 심지어 쟈바오위를 만난 자리에서도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그러나 자신의 거처에 돌아와서는 결국 “‘웩!’하고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그녀가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피를 토해낼 정도로 큰 것이었기에, 평소와 같이 울지 않고 오히려 실성한 듯 웃었던 것이다. 곧 그녀의 ‘웃음’은 그녀의 슬픔이 극에 달해 평소의 ‘울음’으로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정도였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다.
하지만 ‘반상법’은 인물의 심리적 근거를 묘사한 뒤에 운용해야 한다. 곧 인물의 성격적 특징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신기함만을 추구해 ‘반상법’을 남용하는 경우에는, 인물의 복잡한 성격을 차근차근 드러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억지스럽고, 사실에 어긋나며, 전체 예술 작품의 심미적 가치를 손상시킨다는 느낌이 들게 할 따름이다.
【예문】
태부인의 방 입구에 이르렀을 때 다이위黛玉는 조금 정신이 돌아와서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쯔쥐안紫鵑을 돌아보더니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언니는 뭐 하러 왔어?”
“호호, 손수건을 찾아왔잖아요. 아까 아가씨께서 다리 근처에 계실 때 제가 달려가서 어디 가시냐고 여쭈었더니 그때는 못 들은 체하시고는요.”
“호호, 난 또 언니가 바오위寶玉 도련님을 만나러 온 줄 알았지. 그렇지 않으면 여긴 왜 왔겠어?”
쯔쥐안은 그녀의 정신이 흐릿한 걸 알아채고, 분명 아까 그 하녀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나 보다 짐작하고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바오위를 만나게 되면 곤란할 것 같았다. 바오위도 이미 멍한 상태인데 다이위까지 이렇게 정신이 몽롱하니 혹시 순간적으로 체통 없는 말이라도 나오게 되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감히 대옥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그대로 부축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다이위는 조금 전처럼 그렇게 맥이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쯔쥐안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직접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태부인이 방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하녀들은 몰래 빠져나가 노는 이들도 있었고, 졸고 있는 이, 태부인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시런襲人이 주렴 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나와보았다. 그리고 다이위를 보자 안으로 청했다.
“아가씨, 안으로 들어가 앉으셔요.”
“호호, 오빠는 집에 있어요?”
내막을 모르는 시런이 막 대답을 하려는데, 다이위의 뒤쪽에 있던 쯔쥐안이 다이위를 향해 입을 삐죽이며 손을 내젓는 것이었다. 시런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이위는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바오위는 방안에 앉아 있었지만 자리를 권하지도 않고 그저 그녀를 쳐다보며 바보처럼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다이위도 자리에 앉아 바오위를 바라보며 웃었다. 두 사람은 인사도 나누지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은 채 서로 마주보며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시런은 그 모습을 보고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다이위의 말소리가 들렸다.
“오빠, 왜 병을 앓게 되었어요?”
“하하, 너 때문이야.”
시런과 쯔쥐안은 그 말에 놀라서 안색이 변한 채 황급히 다른 말로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둘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본 시런은 지금 다이위의 정신 상태도 바오위 못지 않다는 걸 알아채고 쯔쥐안에게 소곤소곤 말했다.
“아가씨께선 병석에서 일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츄원秋紋이랑 함께 모시고 돌아가서 좀 쉬게 해드려.”
그러면서 츄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쯔쥐안 언니와 함께 다이위 아가씨를 거처로 모셔다 드려라. 쓸데없는 말은 하지말고.”
츄원은 말없이 웃으며 쯔쥐안과 함께 다이위를 부축했다.
다이위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바오위를 바라보며 계속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쯔쥐안이 다시 재촉했다.
“아가씨, 방에 돌아가서 좀 쉬셔요.”
“그래야지.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어.”
그러면서 곧 돌아서더니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여전히 하녀들의 부축을 마다하고 혼자서 나는 듯 재빨리 걸었다. 쯔쥐안과 츄원이 황급히 쫓아갔고, 태부인의 거처에서 나온 다이위가 계속 걷기만 하자 쯔쥐안이 얼른 붙들며 말했다.
“아가씨, 이쪽으로 가셔요.”
다이위는 여전히 웃으면서 쯔쥐안을 따라 샤오샹관瀟湘館으로 갔다. 대문에 가까워지자 쯔쥐안이 말했다.
“아미타불! 간신히 집에 도착했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이위가 앞으로 푹 쓰러지면서 “웩!”하고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 《홍루몽》 제96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