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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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현(天津縣)에 사는 한 효렴이 청명절에 친구 몇 명과 봄놀이를 나갔는데, 하나같이 젊고 경박한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수양버들 사이로 혼자서 나귀를 타고 지나가는 젊은 여자를 발견했다. 동행이 없는 것을 업신여겨 무리지어 그 뒤를 따라가면서 여자를 희롱하며 집적댔다. 그러나 여자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채찍질을 하며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두세 명이 앞서 나아가 여자를 따라잡자 여자가 갑자기 나귀에서 내려 상냥하게 말을 걸었는데, [그 모습이] 내심 좋아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효렴이 나머지 친구들과 쫓아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바로 자기 아내였다. 하지만 아내는 말을 탈 줄 몰랐고, 그날 교외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효렴은 의아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꾸짖었다. 아내가 여전히 낄낄대며 웃자 효렴은 분노가 치밀어 주먹을 날려 아내의 빰을 후려갈기려 했다. 그러자 아내가 갑자기 몸을 날려 나귀에 올라타더니 다른 사람으로 둔갑해 채찍으로 효렴을 가리키며 꾸짖었다.

“남의 부인을 보면 갖은 추태를 다 부리더니, 자기 아내를 보면 이렇게 화를 내는구나. 너는 성현의 책을 읽고도 ‘서(恕)’ 자(字)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하니, 어떻게 계적(桂籍)에 이름을 올리겠느냐!”

여자는 그렇게 몇 차례 효렴을 꾸짖고는 쏜살같이 떠나갔다. 효렴은 얼굴이 사그라진 잿빛이 되어, 길옆에서 굳은 자세로 선 채 떠날 줄을 몰랐다. [나귀를 탄 젊은 여자가] 어떤 요괴였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天津某孝廉, 與數友郊外踏靑, 皆少年輕薄. 見柳陰中少婦騎驢過. 欺其無伴, 邀衆逐其後, 嫚語調謔. 少婦殊不答, 鞭驢疾行. 有兩三人先追及, 少婦忽下驢軟語, 意似相悅. 俄某與三四人追及, 審視正其妻也. 但妻不解騎, 是日亦無由至郊外. 且疑且怒, 近前訶之. 妻嬉笑如故, 某憤氣潮涌, 奮掌欲摑其面. 妻忽飛跨驢背, 別換一形, 以鞭指某, 數曰: “見他人之婦, 則狎褻百端, 見是己婦, 則恚恨如是. 爾讀聖賢書, 一‘恕’字尙不能解, 何以挂名桂籍耶!” 數訖徑行. 某色如死灰, 殆僵立道左, 不能去. 竟不知是何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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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德州) 사람 전백암(田白巖)이 해준 이야기이다.

액도통(額都統)이란 사람이 진(滇)땅과 검(黔)땅 사이의 산 속을 지나다가 한 도사가 아름다운 여자를 돌 위에 올려놓고 그 심장을 가르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액도통은 여자가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을 보고는 급히 말을 몰아 그 앞으로 달려가서 도사의 손을 저지했다. 그 순간 여자가 펑! 하고 소리를 내더니 불꽃으로 변해 날아갔다. 이를 본 도사가 발을 구르며 말했다.

“공께서 내 일을 망쳤소! 저 여자는 요괴인데, 미색을 이용해 백 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기에 내가 요괴를 잡아 죽여 화근을 없애려 한 것이오. 저 요괴는 사람의 정기를 너무 많이 빨아먹었고, 시간도 꽤 흘러 영성(靈性)에도 통달했소. 머리를 잘라 낸다 해도 혼은 살아남아 도망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심장을 도려내야만 죽소. 그런데 공께서 지금 그 요괴를 놓아주었으니, 이제 그 화가 끝이 없을 것이오! 맹호 한 마리를 풀어 산으로 돌려보냈으니, 얼마나 많은 산의 사슴과 고라니가 그 날카로운 이빨에 목숨을 잃을지 모르겠소!”

도사는 비수(匕首)를 상자 안에 넣고 분해하더니 계곡을 건너갔다.

이것은 전백암이 만들어낸 우언(寓言)으로, 바로 [범문정(范文正)이 말한] “한 집안의 슬픔이 어찌 한 성(省)의 백성의 슬픔과 같을 수가 있겠는가!”이다. [액도통과 같은 관리는] 잠시 탐관에게 관용을 베풀고 스스로는 음덕을 쌓았다고 생각하고 사람들도 그가 충후(忠厚)하다고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백성들은 자식을 팔고 아내를 저당 잡히면서 모두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또한 이런 관리를 등용해서 무엇 하겠는가?

德州田白巖曰: 有額都統者, 在滇黔間山行, 見道士按一麗女於石, 欲剖其心. 女哀呼乞救, 額急揮騎馳及, 遽格道士手. 女噭然一聲, 化火光飛去. 道士頓足曰: “公敗吾事! 此魅已媚殺百餘人, 故捕誅之, 以除害. 但取精已多, 歲久通靈. 斬其首則神遁去, 故必剖其心乃死. 公今縱之, 又胎患無窮矣! 惜一猛虎之命, 放置深山, 不知澤糜林鹿, 劘其牙者幾許命也!” 匣其匕首, 恨恨渡溪去.

此殆白巖之寓言, 卽所謂“一家哭, 何如一路哭也”! 姑容墨吏, 自以爲陰功, 人亦多稱爲忠厚. 而窮民之賣兒貼婦, 皆未一思, 亦安用此長者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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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현의 왕(王) 아무개는 공소장 작성에 뛰어난 관리로 교묘하게 다른 사람의 재산을 잘 가로챘다. 그러나 매번 재산이 모일 때마다 뜻밖의 일로 재산이 나가곤 했다.

성황묘(城隍廟)의 한 꼬마 도사가 밤에 행랑 처마를 지나는데, 관리 두 명이 장부를 들고 정산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 놈이 올해 모은 돈만 해도 꽤 될 터이니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그 돈을 다 쓰게 해야 하네.”

그렇게 말하고는 한참동안 궁리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말했다.

“취운(翠雲)이 한 사람이면 족하네.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고 생각할 필요 없네.”

이 성황당에서는 자주 귀신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꼬마 도사는 귀신을 보아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취운이 누구인지, 누구 때문에 셈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헌현에 취운이라는 젊은 기생이 나타났는데, 왕 아무개는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재산의 팔구십을 그녀에게 쏟아 부었다. 또한 악창에 감염되어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의사를 불려 들였기 때문에 병이 나을 무렵에는 이미 그의 재산도 동이 나 있는 상태였다. 어떤 사람이 그가 평생 동안 모은 돈을 계산해봤는데, 손꼽아도 3~4만 냥은 되었다. 훗날 그는 광질(狂疾)에 걸려 급사했는데, 관을 사서 염할 돈도 없었다.

獻縣吏王某, 工刀筆, 善巧取人財. 然每有所積, 必有一意外事耗去. 有城隍廟道童, 夜行廊廡間, 有二吏持簿對算. 其一曰: “渠今歲所蓄較多, 當何法以銷之.” 方沉思間, 其一曰: “一翠雲足矣, 無煩迂折也.” 是廟往往遇鬼, 道童習見, 亦不怖. 但不知翠雲爲誰, 亦不知爲誰銷算.

俄有小妓翠雲至, 王某大嬖之, 耗所蓄八九. 又染惡瘡, 醫藥備至, 比愈, 則已蕩然矣. 人計其平生所取, 可屈指數者, 約三四萬金. 後發狂疾暴卒, 竟無棺以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