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동광(東光) 사람 이우담(李又耼) 선생이 한번은 완평(宛平) 재상의 폐허가 된 정원에 갔다가 회랑에서 시 두수를 발견했다. 그 중 한 수는 다음과 같다.
쏴쏴 서풍은 깨진 격자창 두드리고,
우수수 가을 풀은 텅 빈 뜰에 가득하네.
처마 끝에 걸린 달빛,
떨어져 나간 담벼락 위의 이끼 비추니 더욱 푸르게 빛나네.
나머지 한 수는 다음과 같다.
하늘에는 성긴 별 깜박 깜박거리고,
은하수 사이로 조각구름 지나가네.
난간에 기대어 앉아 초루의 북소리 듣자하니,
잇달아 다섯 번 울려 퍼지네.
얼룩얼룩한 먹 흔적이 아무래도 사람이 쓴 것 같지 않다.
東光李又聃先生, 嘗至宛平相國廢園中, 見廊下有詩二首. 其一曰: “颯颯西風吹破欞, 蕭蕭秋草滿空庭. 月光穿漏飛簷角, 照見莓苔半壁靑.” 其二曰: “耿耿疏星幾點明, 銀河時有片雲行. 憑闌坐聽譙樓鼓, 數到連敲第五聲.” 墨痕慘淡, 殆不類人書.
5.
동곡강(董曲江) 선생은 이름이 원도(元度)이고 평원 사람이다. 그는 건륭 17년(1752) 임진년의 진사(進士)로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 서길사(庶吉士)로 있다가 외지로 나가 지현(知縣)이 되었다. 후에 다시 부학교수(府學敎授)에 제수 되었다가 얼마 지니자 않아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젊은 시절 꿈에서 부채 하나를 선물 받았는데, 그 위에 절구 세 수가 적혀 있었다.
조공은 선계의 연못에서 말에게 물 먹이던 날,
아름다운 서원에서 옛 친구를 그리워하네.
지극한 마음은 끝내 바뀌지 않고,
달 밝은 날 꽃 그림자위의 깃발에 걸려있네.
아름다운 명승지 지척에 있어 함께 말달려 가보니,
쭉 늘어서 있는 수양버들에 물고기가 모여 뛰어 노네.
황금고리 줄 열매 수놓인 비단,
진왕 조식의 여덟 말의 재주를 믿지 않았네.
불 켜진 누각에 퉁소와 피리소리 둥둥,
누가 친히 「소양주(小凉州)」를 연주하고 있는가?
봄바람에 떨어진 두구 꽃은 얼마나 되는지,
함께 추강(秋江)의 비애를 한 소절 지어볼 까나.
그 말이 대부분 이해하기 어렵고, 그 후로 어떤 징험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董曲江先生, 名元度, 平原人. 乾隆壬申進士, 入翰林, 散館改知縣. 又改敎授, 移疾歸. 少年夢人贈一扇, 上有三絶句曰: “曹公飮馬天池日, 文采西園感故知. 至竟心情終不改, 月明花影上旌旗.” “尺五城南並馬來, 垂楊一例赤鱗開. 黃金屈戍雕胡錦, 不信陳王八斗才.” “簫鼓冬冬畵燭樓, 是誰親按小凉州? 春風豆蔲知多少, 倂作秋江一段愁.” 語多難解, 後亦卒無徵驗, 莫明其故.
6.
산서(山西) 평정현(平定縣) 사람 효렴 왕집신(王執信)은 일찍이 유림(楡林)에서 벼슬살이하던 부친을 따라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유림으로 가던 도중 밤에 교외에 있는 한 사원의 경각(經閣) 아래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경각에서 누군가 쉬지 않고 재잘대는 소리가 들렸는데, 시에 대해 논하는 것 같았다. 왕집신은 속으로 이곳은 문사가 드문 곳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자세히 들어보았으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잠시 뒤에 말소리가 점점 누각의 처마 아래에서 새어나오더니, 말소리가 다소 뚜렷하게 들렸다. 한 사람이 말했다.
“당언겸(唐彦謙)의 시는 격조(詩格)는 높지 않지만, 그의 ‘바짝 마른 벼 황폐한 땅에 나 뒹구니 스산한 기운 생겨나고, 꽃샘추위에 떨고 있는 초목에 전운이 감도네.’라는 구절만은 정말 훌륭합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는 일찍이 ‘북쪽 사막에 햇빛은 눈처럼 이어져 있고, 바람에 날리는 모래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구름이 누렇게 변했네.’라는 구절을 쓴 적이 있는데, 직접 변방에 가보지 않고는 이런 광경은 볼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던] 사람이 다시 말했다.
“나도 한 구절이 있습니다.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산 무심히 푸르고, 강가에 이는 찬 바람소리에도 가을은 여전하네.’ 변방의 해 저무는 모습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은 지 한참이 지났을 때 갑자기 절에서 종소리가 나자, 말소리가 뚝 그치더니 조용해졌다.
날이 밝은 뒤 일어나서 가 보았더니, 창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고 자물쇠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후에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산 무심히 푸르고”란 시구를 임총진(任總鎭)의 유고에서 봤다. 임총진은 이름이 거(擧)로, [건륭 12년(1747)에] 군대를 거느리고 김천(金川)으로 출정해 누차 싸우다가 적진에서 죽었다.
“북쪽 사막에 햇빛은 눈처럼 이어져 있고”라는 시구는 끝내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시인의 혼이 오래도록 남아 임총진과 함께 노닐게 되었다면 역시 결코 평범한 귀신은 아닌 것 같다.
平定王孝廉執信, 嘗隨父宦楡林. 夜宿野寺經閣下. 聞閣上有人絮語, 似是論詩. 竊訝此間少文士, 那得有此? 因諦聽之, 終不甚了了. 後語聲漸出閣廊下, 乃稍分明. 其一曰: “唐彦謙詩格不高, 然‘禾麻地廢生邊氣, 草木春寒起戰聲’, 故是佳句.” 其一曰: “僕嘗有句云: ‘陰磧日光連雪白, 風天沙氣入雲黃’. 非親至關外, 不睹此景.” 其一又曰: “僕亦有一聯云: ‘山沈邊氣無情碧, 河帶寒聲亙古秋.’” 自謂頗肖邊城日暮之狀. 相與吟賞者久之, 寺鍾忽動, 乃寂無聲. 天曉起視, 則扃鑰塵封. “山沈邊氣”一聯, 後於任總鎭遺稿見之. 總鎭名擧, 出師金川時, 百戰陣歿者也. “陰磧”一聯, 終不知爲誰語. 卽其精靈長在, 得與任公同游, 亦決非常鬼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