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법弄引法
【정의】
‘농인법’ 역시 진성탄金聖嘆의 「독제오재자서법讀第五才子書法」 가운데 하나이다.
농인법弄引法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중요한 대목을 갑자기 제기하는 것이 좀 뭣해서 먼저 비교적 사소한 대목을 앞세워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양즈楊志가] 쒀차오索超와 싸우기 전에 먼저 저우진周謹과 싸우는 것을 앞세우고, 그리고 [왕 씨 노파가 판진롄潘金蓮을 유혹하기 위해 제시한] 열 단계의 계획을 내놓기에 앞서, 먼저 [바람둥이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요건을 말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장자莊子》에 “바람은 땅에서 생겨 푸른 개구리밥에서 일어나 계곡으로 차츰차츰 배어 들어가 동굴의 입구에서 울부짖네始于靑萍之末, 盛于土壤之口”라고 하였고, 《예기》에서는 노나라 사람들은 타이산泰山에 제사지낼 때 반드시 먼저 페이린配林에서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였다.
有弄引法, 謂有一段大文字, 不好突然便起, 且先作一段小文字在前引之。如索超前, 先寫周謹, 十分光前, 先說五事等是也。 《莊子》云: “始于靑萍之末, 盛于土壤之口。” 《禮》云: “魯人有事于泰山, 必先有事于配林。”
소설 작품에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러한 인물과 사건에는 각각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의 구별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경우 작자는 주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묘사하기에 앞서 먼저 부차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관해 서술함으로써 주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이끌어 낸다. 바로 이와 같이 ‘부차적인 것을 통해 주된 것을 끌어내는 것以次引主’을 ‘농인법’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농인’이란 말에는 전조前兆나 복선伏線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이끄는 작용을 하는 것引’과 ‘이끌어지는 것被引’ 사이에 ‘내용상 가치의 경중主次之分’이나 주객의 구분이 있어 부차적인 인물이나 사건은 주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두드러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이렇게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어떤 사건의 출현이 너무 갑작스러워 당혹감을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실례】
《수호전》 제 13회는 양즈楊志가 두 번의 싸움 끝에 관직을 받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주요한 싸움은 쒀차오索超와 벌이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작자는 양즈와 저우진周謹의 싸움을 묘사하고 있다. 양즈가 저우진에게 이기고 저우진이 맡고 있던 직책을 인계 받으려 할 때 이에 불만을 품은 쒀차오가 나서 다시 싸움을 건다. 두 사람의 무술 시합은 오십여 합을 겨루고도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다. 싸움을 주선한 량 중서梁中書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는 가운데 결국 두 사람은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나란히 관군管軍 제할사提轄使로 추천된다.
작자의 의도는 양즈와 쒀차오의 무예가 출중하다는 것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양즈가 저우진과 싸우는 것이 뒤에 쒀차오와 본격적으로 무술 시합을 벌이는 것을 ‘이끌어내는弄引’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자는 제 12회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결국 양즈와 저우진의 무예 시합이 어떤 사람을 이끌어 낼 것인지는 다음 회를 보라.畢竟楊志與周謹比武引出甚麽人來, 且聽下回分解.” 곧 양즈와 쒀차오의 무술 시합을 단도직입적으로 서술하는 것보다 이에 앞서 부차적인 인물인 저우진을 앞세움으로써 스토리의 전개를 더욱 곡절 있고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었다.
【예문】
이때에 저우진周謹과 양즈楊志는 문기門旗 아래서 말을 채어 교전하려는 판인데……저우진이 창을 들고 말을 몰아 양즈에게 달려드니 양즈 역시 창을 비껴 들고 말을 채어 저우진을 맞아 싸우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은 진 앞에서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한데 어울리기도 하고 한 덩어리로 뭉치기도 하였다. 안장 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안장 밑에서는 말과 말이 싸웠다. 두 사람은 4, 50합을 싸웠다.
…… 말로 하면 느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빨랐다. 화살은 저우진의 왼쪽 어깨에 맞았다. 저우진은 손 쓸 사이도 없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
량 중서梁中書는 크게 기뻐하며 군정사에게 곧 사령장을 써서 양즈를 저우진의 자리에 앉히라고 했다. 양즈는 의기양양하게 말에서 내려 연무청 앞으로 가서 상공께 사례하고 그 직책에 오르려 했다. 이때 뜻밖에 계단 아래 왼쪽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오면서 외쳤다.
“아직 사은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번 겨뤄 보겠습니다.”
양즈가 그 사람을 보니 키는 7척이 넘고 둥근 얼굴에 두터운 입술에 입은 넓적하고 뺨에는 구레나룻이 쭉 가리워 위풍이 늠름하고 모습은 당당했다. 그 사람은 량 중서의 앞으로 나아가 읍을 하면서 아뢰었다. ……
량 중서가 바라본즉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다밍푸大名府 유수사정패군留守司正牌軍 쒀차오索超였다. 그는 성질이 마치 불에 던진 소금같이 급해서 언제나 나라를 위해 공을 다투면서 앞장서서 싸우기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지셴펑急先鋒이라 했다.
…… 량 중서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가 특히 양즈를 천거하려고 하나 여러 장수들이 불복하는 모양인데, 만약 양즈가 쒀차오마저 이긴다면 저 자들이 죽어도 원망이 없을 것이고 군소리도 없을 것이다.’ ……
왼쪽 진의 문기가 열리며 말방울 소리가 요란스러운 가운데 지셴펑 쒀차오가 말을 멈추고 병장기를 들고 진 앞에 섰다. ……
오른 쪽 진에서도 문기가 열리며 말방울 소리가 나더니 양즈가 손에 창을 들고 말을 달려 곧장 진 앞으로 나와 멈춰 섰다. …… 두 사람은 영을 받자 말을 놓아 출진하여 교련장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말 두 필이 서로 어울리고 병장기 두 개가 일시에 번뜩였다. 쒀차오가 노기등등하여 큰 도끼를 휘두르며 말을 박차 양즈에게 달려든즉 양즈는 위풍을 떨치며 신창을 비껴들고 쒀차오를 맞아 싸웠다. 두 사람은 교련장 중심에서, 혹은 장대 앞에서 평생의 재간을 다해 싸웠다. 일진일퇴, 일퇴일진하며 네 팔은 가로 세로 번뜩이고 여덟 말발굽은 서로 엉키었다.
군기는 해를 가리고 살기는 하늘을 덮네.
이쪽은 금잠부로 정수리를 노리고, 저쪽은 혼철창으로 염통을 겨누네.
이쪽은 사직을 받드는 비사문毗沙門 탁탑托塔 리톈왕李天王, 저쪽은 강산을 평정하고 금궐金闕을 지키는 천봉대원수天蓬大元帥.
저쪽의 창끝은 불길을 토하고, 이쪽의 도끼날엔 서릿발 비끼네.
저쪽은 칠국七國의 위안다袁達이 다시 살아왔는가, 이쪽은 삼국 때의 장페이張飛가 되살아났는가.
이쪽은 거령신巨靈神인 양 노하여 큰 도끼 휘둘러 서쪽 화산華山을 때려부수는 듯, 저쪽은 화광장華光藏인 듯 성나서 금창을 손에 들고 지옥을 무찌르는 듯.
이쪽은 두 눈 부릅뜨고 도끼 날려 머리를 찍자 하고, 저쪽은 이를 갈며 번쩍번쩍 창자루 끊을 듯 하네.
두 적수가 빈 구석을 노리며 한눈 팔 새도 없구나.
두 사람은 50여 합을 싸웠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월대 위에 앉아 있는 량 중서는 정신없이 바라보았고, 양편의 여러 군관들은 끊임없이 갈채를 보냈다. 진중의 군사들은 서로 쳐다보며 감탄하였다.
“우리가 오랫동안 군사 노릇을 하면서 전장에도 여러 번 나가보았지만 한 쌍의 호한이 이처럼 용맹스럽게 싸우는 걸 보기는 처음일세!”( 《수호전》 제1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