容(얼굴 용)은 모양보다 훨씬 복잡한 구성과 일반적으로 알려진 뜻과 다른 의미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글자여서 매우 흥미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우리나라 자전에는 이것의 맨 앞에 나와 있는 訓과 音이 얼굴용으로 되어 있고, 일반적으로도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글자가 없을 때 본래 뜻과 상관없는 다른 한자를 빌려 쓰는 것인 가차(假借)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容은 현재의 모양으로 보아서는 집을 나타내는 宀(집 면)과 골짜기를 나타내는 谷(골짜기 곡)이 결합한 글자로 인식된다.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렇게 말하고 있으나 초기의 모양에서는 약간 다르게 설명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초기 글자에 대한 설명에서는 宀과 公이 결합한 방식으로 되어 있는 글자라고 하면서 宀이 뜻을 담당하고(刑旁), 公이 소리를 담당하는(聲旁) 방식으로 이루어진 글자라는 것이다. 容이 가진 본래 뜻으로 볼 때는 두 번째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容은 갑골문에는 동굴이나 움막을 나타내는 글자인 穴(구명 혈) 아래에 물건을 나타내는 口가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동굴 안에 일정한 형태를 가진 물건이 놓여 있는 것을 나타내어서 ‘받아 들이다’. ‘수용하다’, ‘용납하다’ 등의 뜻을 기본으로 가지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글자는 형성자가 아니라 회의자(會意字)가 된다. 그러다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면 윗부분의 穴이 변해서 宀 으로 바뀌고, 아랫부분의 口는 八과 厶가 결합한 모습인 公으로 바뀌게 된다.
穴과 宀은 글자의 유래에서는 구별이 되는 것이지만,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穴 에서 宀으로 바뀐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동굴이나 움막과 같은 구멍에 살던 거주 형태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지붕과 벽이 있는 집으로 바뀌게 되면서 지붕의 모양을 본뜬 宀이 집을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公은 私(사사로울 사)와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글자로 물건을 정확하고, 공평하게 둘로 나눈 것을 의미하는 八과 팔이 안으로 굽은 모양을 나타내면서 개인적으로 스스로의 이익을 취한다는 뜻을 가진 厶(나, 사사로움)가 결합한 것으로 사사로움을 취하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이 글자의 초기 모양을 보면 아래에 있는 것은 厶가 아닌 口(입 구)였다. 여기에서 口는 입이 아니라 일정한 형태를 지닌 물건이나 사물을 의미한다. 그렇던 것이 후대로 오면서 口가 厶로 변한 모양이 되어 공평하다. 치우치지 않다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公은 어떤 물건이 일정한 장소에 용납되어서 잘 놓여 있는 것을 나타내는 글자라는 사실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容의 뜻에 그대로 살아남게 되었다.
이러한 뜻을 기본으로 가지는 글자인 容이 얼굴을 나타내는 글자로 가차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얼굴이나 용모 등의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는 頌이었다. 頁(머리 혈)은 뜻을 담당하여서 사람의 머리를 나타내고, 公은 소리를 담당해서 글자의 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글자는 용모, 의용(儀容) 등의 뜻을 기본으로 했다. 그러다가 사람이나 사물현상 등을 찬양하거나 칭송하거나 권장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면서 그것이 주를 이루게 되면서 얼굴을 나타내는 글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여기에 부응한 것이 바로 발음이 비슷한 容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容은 가차 되어 얼굴, 용모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