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제漢景帝
4. 한안국(韓安國)과 전숙(田叔)은 절조를 지켜 어진 인덕과 효도를 온전히 했다
나라에는 왕위를 물려줄 수 없는 사람이 없으니, 천지간의 중대한 인륜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한안국(韓安國)이 눈물로 양왕에게 간언하여 양승(羊勝)과 공손궤(公孫詭)가 법에 따라 처형되었고, 전숙(田叔)은 양왕이 자객을 보내 원앙(袁盎)을 죽인 사건과 관련된 서류를 불태워 양왕이 죄를 문책당하지 않도록 해 주었다. 성실과 믿음으로 나라와 혈육 사이에서 행동하여 천륜이 위태로웠던 상황을 안정시켰으니, 한나라의 인재가 후세보다 탁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추양(鄒陽)이 경사에서 황후의 오빠인 왕신(王信)을 만나 자신의 주장을 거래한 것은 책사(策士)의 자잘한 지혜일 뿐이다. 천성(天性)을 만나고 헤어지게 하는 권한을 궁중의 여인들에게 휘둘렀으니 그의 지혜는 양승이나 공손궤와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교묘한 말솜씨를 자랑했을 뿐, 그것이 분란을 조성하기에 적합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한안국과 전숙은 절조를 지켜서 어진 인덕과 효도를 온전하게 한 큰 지혜를 갖춘 이들이었으니, 교묘하게 기회를 이용해 큰 공을 세우려 하는 간사한 자들이 아니었다.
5. 관대한 법으로 모진 관리를 임용하는 것보다 엄한 법으로 관대한 관리를 임용하는 것이 더 낫다
법령이 엄격한데 관대하고 어진 관리를 임용하면 백성은 법을 어기는 것을 중대한 죄로 여기기 때문에 온전하게 법을 지키는 이들이 많다. 법령이 관대하고 포악한 관리를 임용하면 백성을 법을 어기는 것을 별것 아닌 일로 생각하여 결국 무고한 이들도 걸려들어 목숨을 살릴 수 없게 된다. 경제는 조서를 내려서 사법을 담당하는 관리가 판결할 수 없는 안건은 정위(廷尉)에게 넘기고, 심리한 후에 부당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심리한 사람의 과실로 여기지 말도록 했는데, 그런 법령은 너무 관대했다. 질도(郅都)와 영성(寧成)이 연이어 중위(中尉) 자리를 맡았으니 잔인한 소인배에게 법령을 빌려준 셈이었다. 잠시 그들을 위해 법령을 관대하게 하자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함정에 빠졌는데, 그들 자신은 벗어날 행운이 있다고 여겼으나 결국 죄를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부당한 판결을 내렸는데 죄를 묻지 않고, 무고한 이에게 누명을 씌운 참사를 추궁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과실을 저질러도 추궁하지 않으니, 이 역시 탐관오리가 뇌물을 받고 옥사(獄事)를 멋대로 처리하고 과도한 위세를 멋대로 드러내도록 방조한 셈이니, 억울한 백성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리하여 관대했던 고조의 뜻은 단절되고 엄하고 혹독했던 무제의 기풍이 일어났다. 법령에 엄격하고 변통이 없으면 백성은 형벌을 피할 방도를 배우게 되는데, 사람에 따라 관대해야 할 때 관대하게 처분하면서 사형을 숭상하지 않게 하면 억울하게 죽는 백성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선왕은 덕망 높은 어른에게 형옥(刑獄)을 즐겨 맡기고 획일적인 법령을 준수하게 함으로써, 위에서 번갯불이 밝게 비치면 아래로 넉넉하게 비가 내리는 것처럼 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고 천하를 포용해 보존할 수 있지 않겠는가!
6. 부자의 자제는 관리가 될 수 있다
예전에는 자산이 10만 냥이면 벼슬을 얻을 수 있었으나 경제가 4만 냥으로 경감했는데, 이렇게 액수만 놓고 다툰들 또 어찌 풍속을 개선하기에 충분하겠는가? 응소(應劭)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관리의 탐욕을 싫어했다. 의식(衣食)이 풍족한 뒤에야 영욕(榮辱)을 아는 법이니, 재산 10만 냥이 있으면 관리가 될 수 있었다.”
응소가 얘기한 옛날이란 언제인가? 아마 진나라 때의 제도였을 것이다. 부자의 자제를 관리로 임명하면서 집안이 부유하니까 탐욕을 부리지 않을 것이고, 형벌이 두려워 스스로 보호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술주정하는 것이 무서우니 아예 취한 사람을 잔칫상에 초대하자는 것인가? 부유해서 관리가 될 수 있다면 관리가 되어서 더욱 부유해지고, 부를 쌓으면 그 벼슬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다. 염치를 무너뜨리고, 분주히 뇌물을 챙기며, 친척을 박대하고, 가난하고 약한 백성을 착취하여 요행으로 많은 자본을 모으게 되면 곧 관리가 되어 윗자리에 앉게 되니, 백성들 가운데 앞다퉈 약탈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진시황이 군주가 되고 상앙이 정권을 잡지 않는다면 이런 것을 훌륭한 계책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아! 이 또한 유래가 있구나!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하나의 계책만 시행되더라도 경상(卿相)의 자리를 얻을 수 있고, 한 번의 전투만 승리하더라도 봉지(封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초야의 가난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위험한 칼날 사이를 뛰어다니며 작위와 봉지를 낚아챌 기회를 노린다. 그러니 굶주린 사람이 먹을 것을 얻으면 서둘러 삼키느라 목이 막힐 수도 있다는 것을 잊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그들을 미워하고 군주도 싫어하게 되어,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부자의 자제를 임용하면서 이쪽이 저쪽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반드시 천하 사람들의 염치를 기를 방법이 없어서 이런 방법을 썼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이의 잘못이 바로잡힘을 당하는 이보다 심하다면 천하의 잘못은 다시 바로잡아질 수 없다. 군자는 사물을 분명히 구별하고 교유를 신중하게 하며, 책략을 품은 채 시대의 조류를 뒤쫓은 천박한 인사들을 멀리하여 군주가 경중(輕重)을 알게 한다. 어떻게 하찮은 능력을 지닌 채 신분이 낮은 현자를 경시하는 마음으로 조정에서 부유한 상인만 천거하여 공손히 벼슬을 내리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