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우란분회에서 부처님은 진리를 드러내고
보타산의 보살께서 신들을 모으다
盂蘭盆佛爺揭諦 補陀山菩薩會神
春到人間景異常 인간 세상에 봄이 오니 풍경도 특별하여
無邊花柳競芬芳 끝없는 꽃과 버들 향기를 다투네.
香車寶馬閑來往 명마가 끄는 향기로운 수레 한가로이 오가며
引却東風入醉鄕 봄바람 끌어들여 몽롱하게 취하게 하네.
釃剩酒, 臥斜陽 남은 술 따라 들고 석양 아래 누워
滿拚三萬六千場 인생 백년을 모두 버린다네.
而今白髮三千丈 지금은 흰머리 길게 자랐건만
還記得年來三寶太監下西洋 아직도 기억하네, 근년에 삼보태감 서양에 다녀온 일이.
자회(子會)에 하늘이 열리고부터 곧 금양(金羊)과 옥마(玉馬), 금사(金蛇), 옥룡(玉龍), 금호(金虎), 옥호(玉虎), 금아(金鴉), 철기(鐵騎), 창구(蒼狗), 염리(鹽螭), 용전(龍纏), 상위(象緯), 양각(羊角), 순정(鶉精)이 있어서 윤기를 내며 우렛소리를 준비하고, 장엄하게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무한한 경위(經緯)의 중간에 위대한 신통력을 지닌 두 존재가 있었으니 하나는 태양(太陽)의 진정한 정수를 지니고 하늘 365도를 하루에 한 바퀴 돌았고, 다른 하나는 태음(太陰)의 진정한 정수를 지니고 하늘 365도를 돌며 차고 기울기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태양이 남쪽 대륙을 지나니 따스한 기운 생겨나고, 달이 중천에 이르니 특별히 밝구나[日行南陸生微暖, 月到中天分外明.]”라는 상황이었다.
축회(丑會)에 땅이 열려서 부드러운 것과 굳센 것이 나뉘면서 곧 삼사(三社)와 삼내(三內), 삼계(三界), 사리(四履), 사예(四裔), 사표(四表), 오자(五字), 오복(五服), 오수(五遂), 육조(六詔), 육적(六狄), 육막(六幕), 칠선(七墠), 칠양(七壤), 칠형(七陘), 팔참(八塹), 팔굉(八紘), 팔연(八埏), 구경(九京), 구위(九圍), 구해(九垓), 십진(十鎭), 십망(十望), 십긴(十緊) 등의 온 세상 억만 중생과 웅장한 제도들이 우뚝 세워졌다. 비옥하고 무성한 장관을 이루는 그 무한한 터전 중간에 또 두 명의 큰 우두머리가 있었다. 하나는 기불구불 기괴한 생김새와 성대하고 노숙한 기품을 가지고 있으며 차분하고 법도에 맞는 품행을 갖춰서 어진 이와 함께 장수한 인물이다. 다른 하나는 그 명성이 대지와 통하고 성긴 물줄기도 은하수와 합쳐지듯이 행동에 구속이 없어서 지혜로운 이와 즐거움을 함께 한다. 그야말로 “산색은 해를 넘겨도 푸름이 편함 없고, 물은 하루 종일 흘러도 소리 들리지 않는[山色經年靑未改, 水流竟日聽無聲]” 격이었다.
천지가 있고 나서야 만물이 있는 법. 그러므로 인회(寅會)에 사람이 생겨나게 되자 곧 태생(胎生), 난생(卵生), 형생(形生), 기생(氣生), 신생(神生), 귀생(鬼生), 습생(濕生), 비생(飛生) 등의 방식으로 생명들이 태어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들이 쌓여서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웠다. 만물이 울창한 상태로 한없이 많은 세월이 흐르자 또 유가(儒家)와 불가(佛家), 도가(道家), 의가(醫家), 풍수가(風水家), 점술가[龜卜家], 화가[丹靑家], 관상쟁이[風鑒家], 금가(琴家), 기가(棋家)와 같은 아홉 부류[九流]가 생겨났다. 이 아홉 부류 가운데 또 세 개의 주요 부류가 있었으니 첫째는 유가요, 둘째는 불가, 셋째는 도가였다.
유가는 누구인가? 바로 오늘날 온 천하의 문묘(文廟)에서 모시는 공자(孔子)이다. 이 공자의 출신은 어떠한가? 그는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곡부(曲阜) 창평향(昌平鄕) 궐리(闕里)에서 태어났는데 신장은 아홉 자[尺] 두 치[寸]이요 허리둘레는 열 아름[圍]에 마흔아홉 개의 표정을 갖고 있었으며, 눈썹은 열두 가지 색을 띠고 있고 눈동자에는 예순네 개의 결[理]이 있었다. 머리는 요(堯) 임금을 닮았고 이마는 순(舜) 임금을 닮았으며 목은 고요(臯陶)를, 어깨는 자산(子産)을 닮았다. 그의 학문은 하늘과 인간 세계를 관통했고, 도(道)는 세상의 오묘한 신비에 모두 통달했다. 신령한 거북이나 용이 전한 책들과 칠정(七政), 육위(六緯)에 관한 일을 잘 알고 복희(包羲)와 황제(黃帝)의 능력을 갖췄으며, 요 임금과 순 임금, 주공(周公)의 미덕을 어느 하나 뛰어나지 않은 것이 없이 두루 갖추었다. 그리하여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손질하여 완성시키고 예악(禮樂)을 정했으며, 《주역(周易)》의 내용을 해설하고 《춘추(春秋)》를 저술했다. 그리고 수수(洙水) 남쪽과 사수(泗水) 북쪽의 제자 삼천 명에게 학문을 전수했는데, 그 아래에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제자들이 육만 명이었으며, 개중에 어느 한 분야에 통달한 제자가 일흔두 명이었다. 역대 왕조에서는 그를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에 봉했으며, 명(明)나라 가정제(嘉靖帝)가 등극한 뒤로 지성선사공자(至聖先師孔子)로 칭했다. 이 공자님은 예사로운 분이 아니어서 문장으로는 후세의 영원한 스승이셨고, 역대 제왕들의 스승이셨으니, 바로 이 분이 유가이다. 이를 증명하는 평[贊]이 있다.
공자의 선조는 상(商)나라 왕족의 후손이니, 불보하(弗父何)는 제후 자리를 양보할 수 있었고 정고보(正考父)는 〈상송(商頌)〉을 정리했네. 공방숙(孔防叔)이 노(魯)나라로 피신하니 추읍(鄒邑) 백성들이 그에게 의지했네. 성스러운 공자가 태어나니 궐리(闕里)에는 덕이 생겨났네. 일흔 살에 학문의 지고한 경지에 이르니 천하 사방에서 본받았네. 소정묘(少正卯)를 양관(兩觀)에서 처형하고, 협곡(夾谷)에서 재상을 대신하여 제(齊)나라 제후를 상대했네. 봉황이 이르지 않으나 어느새 늙어 감을 탄식했고, 죽은 기린을 보고 눈물 흘릴 때는 얼마나 촉급했던가! 모든 학자들이 우러러 존경하고 만고(萬古) 후세 사람들 삼가 본받는다네.
孔子之先, 冑於商國. 弗父能讓, 正考銘勒. 防叔來奔, 鄒人倚立. 尼父誕聖, 闕里生德. 七十升堂, 四方取則. 卯誅兩觀, 攝相夾谷. 歎鳳遽衰, 泣麟何促, 九流仰敬, 萬古欽躅.
당(唐)나라의 예종(睿宗) 황제는 몸소 다음과 같은 평을 썼다.
아름다워라, 선생이시여! 정말 성스러운 덕을 지니셨도다. 그 도는 배울 만하고 그 의례는 어긋나지 않았도다. 《시경》을 산정(刪定)하시고 예악을 정하시니 모든 왕들이 본받는다네. “내 어찌 쓸모없는 표주박 같은 사람이랴!” 단언하시고 사방을 돌며 유세하셨네.
猗歟夫子, 實有聖德. 其道可學, 其儀不忒. 删詩定樂, 百王取則. 吾豈匏瓜, 東南西北.
송(宋)나라 태종(太宗) 황제도 몸소 다음과 같은 평을 썼다.
제왕의 은택은 아래로 갈수록 쇠약해지고 문무(文武)가 쇠퇴하려 할 때 공자께서 태어나셔서 천하에 우뚝 서셨네. 요ㆍ순을 본받으시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법도로 삼으셨으나, 덕을 지니고도 마땅한 자리에 오르지 못하셨네. 철인(哲人)이 돌아가심은 봉황이 이르지 않았기 때문!
王澤下衰, 文武將墜, 尼父挺生, 海嶽標異. 祖述憲章, 有德無位. 哲人其萎, 鳳鳥不至.
그러면 불가는 누구인가? 지금 천하의 절에서 모시는 부처이다. 부처의 출신은 어떠한가? 원래 부처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라고 불렸다. 그는 애초에 서천(西天) 사바스티(舍衛國, Śrāvastī) 왕국의 챠드리야(剎帝利, kṣatriya) 왕족으로 이 땅에 태어나 위대한 지혜의 빛을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비추니 땅에서 황금 연꽃이 솟아나 그의 두 발을 떠받쳤다. 이에 그는 하늘과 땅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그으며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렸다. 어른이 되어서는 단다카 산(檀特山, daṇḍaka)에서 수도하여 법(法)을 구해 마음을 단련하고 음식을 구해 몸을 유지하다가 아람가람(阿藍迦藍)과 울두람불(鬱頭藍佛)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조금씩 성취를 이루어 모든 외도(外道)를 굴복시키고 정과(正果)를 이루었다. 부처가 되는 날에는 천인사(天人師)라는 호(號)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사체(四諦)의 법륜(法輪)을 돌리며 인과(因果)의 법을 설명하고 중생을 널리 제도(濟度)했다. 먼저 흔진여(忻陳如) 등 다섯 명을 제도했고, 다음으로 가섭(迦葉) 삼형제와 천 명의 제자를 제도했으며, 이어서 사리불(舍利弗, śāriputra)과 백 명의 제자, 목건련(目乾連)과 백 명의 제자, 야사장자(耶舍長者)와 쉰 명의 제자들을 차례로 제도하여 지금도 아라세존보살(阿羅世尊菩薩)로 불리고 있다. 부처의 키는 한 길[丈] 여섯 자[尺]이며 얼굴은 황금색이고 정수리에 해와 달의 빛을 장식하고 있으며, 변화에 능하고, 커짐도 커지지 않음도 없고 통함도 통하지 않음도 없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로부터 1217년 뒤에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왔으니 바로 한(漢)나라 명제(明帝) 때이다. 한 나라 명제가 밤에 꿈속에서 황금색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키는 한 길이 넘어 보이고 머리 위에 해와 달과 모양의 빛이 났다. 이튿날 조회에서 여러 벼슬아치들에게 그 꿈에 대해 물었는데, 개중에 부의(傅毅)가 서천의 부처가 중국 땅에 강림할 징조임을 알아채고 그날 황제에게 아뢰었다. 이에 한나라 명제는 곧 낭중(郎中) 채음(蔡愔)에게 조서(詔書)를 가지고 속히 천축국(天竺國)으로 찾아가 부처의 도를 알아보고, 불경을 구하고, 또 많은 승려 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그것이 나날이 새롭게 번성하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져서 불가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國開兜率在西方 한나라 초기에 보살의 정토(淨土)가 서방에 있었으니
號作中天淨梵王 중천정범왕(中天淨梵王)이라 불렸다네.
妙相端居金色界 장엄한 형상[妙相]으로 금색계(金色界)에 단정히 거하시며
神通大放玉毫光 신령과 통하여 옥호(玉毫)의 빛을 크게 발산하셨네.
閻浮檀水心無染 염부단수(閻浮檀水)에서 마음에 때가 묻지 않으셨으니
優鉢曇花體自香 우담발라 꽃처럼 몸에서 저절로 향기를 풍기셨지.
率土蒼生皈仰久 온 세상 중생들이 오래 전부터 귀의하여 앙모하였으니
茫茫苦海泛慈航 아득한 고해(苦海)에 자비의 배를 띄우셨네.
또 어느 불가의 시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浮杯萬里達滄溟 술잔 띄워 타고 만 리를 떠돌아 대해(大海)에 이르렀나니
遍禮名山適性靈 명산을 두루 찾아다니는 건 성령(性靈)에 맞기 때문이지.
深夜降龍潭水黑 깊은 밤 불법(佛法)으로 용을 굴복시키니 연못물은 어둑하고
新秋放鶴野田靑 초가을 학을 놓아 키우니 들판은 푸르구나.
身無彼此那懷土 이 몸에게는 여기도 저기도 없거늘 어찌 고향을 그리워할까?
心會眞如不讀經 마음으로 영원한 진리를 깨달았으니 불경을 읽을 필요도 없다네.
爲問中華披剃者 물어보자, 중국에서 머리 깎고 수행하는 이들 가운데
幾人雄猛得寧馨 이처럼 굳세고 용맹한 이가 몇이나 되는가?
또 도가는 누구인가? 지금 온 천하의 도관(道觀)에서 모시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이다. 그의 출신은 어떠한가? 원래 그는 태청도경(太淸道境)에 살고 있던 원기(元氣)의 조종(祖宗)이자 천지의 근본이었는데, 인간의 몸으로 화신(化身)하여 속세를 두루 경험한 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반고(盤古)가 혼돈(混沌)을 나누어 천지를 만든 이후 그는 또 은(殷)나라 탕왕(湯王) 48년에 세상에 나왔을 때는 태양의 정기를 타고 오색의 빛으로 변했는데, 그 크기가 탄환만 했다고 한다. 당시 어느 미녀가 낮잠을 자고 있어서 살그머니 그 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는데, 미녀가 엉겁결에 삼켜 버리는 바람에 곧 태기(胎氣)가 있었다. 그렇게 여든한 해 동안 임신하고 있다가 무정(武丁) 9년 경진년(庚辰年)에 그가 미녀의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카락이 이미 새하얀 노인 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노자(老子)’라고 불렀다. 그는 살구나무 아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나무를 따라서 성을 이(李)씨로 삼았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字)는 백양(伯陽)이다. 진(秦)나라 소왕(昭王) 9년(기원전 298)에 이르러 그는 구백아흔여섯 살이 되었고 백서른여섯 명의 아내와 결혼하여 삼백예순한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배불리 밥을 먹고 의관을 가지런히 차려입더니 희지도 검지도 않고 붉은색도 노란색도 아닌, 푸르뎅뎅하고 두 개의 뿔이 난 소를 한 마리 끌고 와서 그 등에 타고 홀연히 함곡관(函谷關) 밖으로 나가버렸다. 당시 관문을 지키던 벼슬아치가 그래도 조금 식견이 있어서 한 손으로 관문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소를 붙든 채 놓아주려 하지 않자 노자가 물었다.
“뭘 그리 따지시오?”
“그게 아닙니다.”
“그럼 여기가 통행이 금지된 관문이오?”
“그것도 아닙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설마 통행세를 내라는 거요?”
“글을 좀 써 달라는 건 모르지만, 돈을 뜯어내는 건 제 전공이 아닙니다.”
“뭘 바라는 거요?”
“어르신 소매 안에 들어 있는 것입지요.”
“소매 안에 있는 거라곤 책 한 권밖에 없소.”
“바로 그겁니다.”
노자는 거절하려 했지만 그 벼슬아치가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관문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 노자는 소매 안의 책을 그 벼슬아치에게 주고 떠났다. 이 책이 바로 《도덕경(道德經)》으로서, 상편(上篇) 37장(章)과 하편 80장으로 되어 있다. 도교는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여 유교, 불교와 함께 ‘삼교(三敎)’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玉女度塵嘩 현묘옥녀(玄妙玉女)가 번잡한 속세를 제도(濟度)하려고
和丸咽紫霞 탄환 같은 빛에 감응하여 신령한 운하(雲霞)를 삼켰네.
時憑白頭老 당시 흰머리 노인의 몸을 빌려
去問赤松家 선인(仙人)을 찾아가 물었지.
瑤砌交芝草 옥 계단에는 영지(靈芝)가 얽혀 있고
星壇繞杏花 성단(星壇) 주위에는 살구꽃이 둘러 피었네.
靑牛函谷外 푸른 소 타고 함곡관 밖으로 나가니
玄鬢幾生華 검은 머리에 몇 번이나 꽃이 피었던가?
도가의 시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占盡乾坤第一山 천지간에서 제일가는 산의 자리를 차지하고
功名長揖謝人間 공명을 이룬 후 인간 세계와 영원히 작별했지.
晝眠松壑雲瑛暖 소나무 골짝에서 낮잠 자니 운영(雲英)도 따뜻하고
夜漱芝泉石髓寒 밤이면 영지 핀 샘물에 양치질하니 석수(石髓)가 차갑구나.
曲按宮商吹玉笛 음조(音調)에 맞춰 옥피리 불고
火分文武煉金丹 문무(文武)의 불을 나누어 금단(金丹)을 단련하지.
榮華未必仙翁意 부귀영화는 반드시 신선의 뜻이 아니었으리니
自是黃冠直好閑 당연히 도사로 지내며 정말 느긋했지.
이 ‘삼교’ 가운데 유독 석가여래만이 서천의 빼어난 영산(靈山)의 바사(婆娑) 쌍림(雙林) 아래에 있는 뇌음사(雷音寺)에서 삼천 명의 옛 부처[古佛]들과 오백 명의 나한(阿羅), 팔대금강(八大金剛), 그리고 여러 보살(菩薩) 들과 함께 깃발과 화려한 덮개[寶蓋] 아래에서 진귀한 음식들과 신령한 꽃들에 둘러싸인 채 앉아 있었다. 이 얼마나 느긋하고 즐거운 모습이며, 얼마나 훌륭하게 인과(因果)를 깨달은 모습인가! 그야말로 이런 모습이었다.
無情亦無識 감정도 인식함도 없고
無滅亦無生 소멸함도 생겨남도 없다네.
一任閻浮外 오로지 염부주(閻浮洲) 바깥에 계시는 동안
桑田幾變更 인간 세계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몇 번이나 있었던가!
때는 7월 15일 초가을의 보름이라 해마다 행해지던 관례에 따라 우란분회(盂蘭盆會)가 열리고 있었다. 그릇에는 온갖 기이한 꽃들과 신기한 과일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석가여래께서는 가장 높은 보련대(寶蓮臺)에 단정한 자세로 우뚝 앉아 계셨고, 여러 부처들과 아라한(阿羅漢), 게체(揭諦) 등도 반열을 나누어 석가여래께 절을 올렸다. 이것이 끝나자 아난(阿儺)이 보배로운 그릇을 받쳐 들고, 가섭(迦葉)이 보배로운 꽃을 뿌렸다. 그러자 석가여래께서 살며시 미소를 지으시며 위대한 불법(佛法)을 설명하시고 정과(正果)를 이룰 것을 강조하시며 저 삼승(三乘)의 오묘한 법전(法典)과 오온(五蘊)의 가르침이 담긴 《능엄경(楞嚴經, Śūraṅgama Sūtra)》 등을 분석하여 설명하시니, 여러 제자들이 귀를 기울여 듣고 귀의(歸依)했다. 강설이 끝나자 석가여래께서 나직이 물으셨다.
“순찰관(巡察官)은 어디 있느냐?”
원래 석가여래께서는 비록 서천(西天)에 계시지만 한 가지 급한 율령(律令)을 내리셔서, 사대부주(四大部洲)의 순찰관들로 하여금 매년 그곳 중생들의 선악을 탐방하여 우란분회가 열릴 때 담당 부서에 보고하여 문서로 작성해서 영소보전(靈霄寶殿)의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알려 시행하도록 하셨다. 그래서 순찰관을 찾으셨던 것이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존자(尊者) 하나가 나섰다.
長身闊臂, 靑臉獠牙 큰 키와 긴 팔, 푸른 얼굴에 사나운 어금니
手掄月斧, 脚踏風車 손에는 달 모양 도끼 들고, 바람 수레를 탔구나.
停一停, 抹過了天堂地府 멈칫 하면 천당과 지옥을 한 바퀴 돌고
霎一霎, 轉遍了海角天涯 삽시간에 바다 모퉁이와 하늘 끝을 전부 돈다네.
그는 원래 저승 관청에서 아주 급한 율령을 전하던 이로써, 지금 석가여래의 보련대 아래서 사대부주의 순찰관 직책을 맡고 있는 이였다. 그는 석가여래의 자비로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나아가 공손히 예를 올리며 대답했다.
“예, 대령했사옵니다!”
“사대부주의 일체 중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더냐? 얘기해 봐라.”
“동승신주(東勝神洲)는 여전히 하늘을 공경하고 땅에 예절을 지킵니다. 북구로주(北俱蘆洲)도 여전히 성품들이 졸렬하고 감정이 메말라 있습니다. 우리 서우하주(西牛賀洲)는 원기를 기르고 영험함을 쌓아 깨달은 진인(眞人)들이 예전처럼 대대로 계승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남선부주(南膳部洲)는 석가여래님의 진정한 삼장(三藏)의 경전들이 전해진 뒤로 불문(佛門)의 중요한 뜻이 크게 번창하고 방편(方便)의 정종(正宗)이 널리 열렸습니다. 이를 위해 더없이 지고하고 키가 아홉 자[尺]에 얼굴은 보름달처럼 둥글며, 봉황의 눈에 용의 눈썹을 하고, 아름다운 수염과 검푸른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구기옥관(九氣玉冠)을 쓰고 검붉은 송라조복(松羅皂服)을 입은 이가 자소봉(紫霄峰)을 떠나 속세에 내려가 다스리고 있습니다.”
석가여래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지고한 분이 속세에 강림하셨구나.”
그 자리에 있던 여러 보살들이 일제히 여쭈었다.
“어느 분이신지요?”
“옥허사상현천상제(玉虛師相玄天上帝)이시지.”
“그 분께서 무슨 일로 인간 세계에 강림하셨는지요?”
“옛날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죄악을 저질러 악독한 일을 자행하는지라 여섯 마왕(魔王)들이 그에 이끌려 못된 귀신들을 이끌고 인간 세계에 내려가 중생을 해쳤었지. 그러자 원시천존(元始天尊)이 옥황상제(玉皇上帝)로 하여금 자미궁(紫微宮)에서 조서(詔書)를 내려서 인간 세계에서는 무왕(武王)으로 하여금 주왕을 정벌하게 하고, 저승에서는 현천대제로 하여금 마귀들을 잡아들이라고 하셨지. 당시 현천대제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맨발에 황금 갑옷과 검은 전포(戰袍)를 입은 채 검은 깃발을 앞세우고 육정육갑(六丁六甲)을 통솔하여 인간 세계로 내려가 동음(洞陰)의 벌판에서 여섯 마왕들과 전투들 벌이셨지. 마왕들이 감기(坎氣)와 이기(離氣)를 이용해 거대한 거북과 뱀으로 변신했는데, 그들이 막 변신하자 현천대제께서 신통력을 발휘하여 발로 밟아 제압해 버리셨어. 그리고 아가귀(阿呵鬼)들을 풍도(酆都)의 큰 동굴에 가두셨지. 그제야 비로소 우주가 깨끗하게 청소된 셈이지. 그런데 지금 남선부주는 북방 오랑캐가 다스리고 있어서 기성(箕星)과 미성(尾星) 아래 세상에 피비린내와 독한 기운이 아직 깨끗하게 씻기지 않았으니, 현천상제께서 또 마왕을 제압하신 수단을 베푸실 수밖에 없게 되었지. 다만 오십 년 뒤에 마하승기(摩訶僧祗)가 그곳에 액운을 가져다 줄 터인데, 그건 벗어날 길이 없겠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원래부터 부처들과 보살들은 자비를 바탕으로 사람의 성정에 따라 가르침을 내리는 방편을 찾는 이들인지라, 석가여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자 부처 한 분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부처는 예사로운 분이 아니라 과거와 중간, 미래의 각기 천년 동안 삼천 명의 옛 부처들 가운데 으뜸이었고 만 년, 십만 년, 백만 년, 천만 년, 일억 년 동안 수많은 보살들을 이끌던 분이었다. 그 분이 그런 분이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그러니까 옛날 열여섯 명의 왕자들이 하나씩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여래의 모든 지혜를 얻었다. 개중에 가장 나중의 인물이 바로 석가모니부처이다. 그 전에 여덟 명의 왕자가 출가하여 모두 묘광보살(妙光菩薩)의 제자가 되어 성불(成佛)했는데, 개중에 가장 나중에 성불한 이가 바로 연등고불(燃燈古佛)이다. 석가여래는 모든 부처 가운데 법왕(法王)이시고, 연등고불은 석가여래에게 불법(佛法)을 강설해준 수기(授記)의 사부이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嘗聞釋迦佛 듣자하니 석가모니부처께서는
先授燃燈記 예전에 연등고불에게 설법을 들으셨다지.
燃燈與釋迦 연등고불과 석가모니부처는
只論前後智 그저 전후의 지혜만 논하셨다네.
前後體非殊 전후의 실체는 다른 게 아니니
異中無一理 다름 속에서도 무(無)는 하나의 이치라네.
一佛一切佛 하나의 부처는 일체의 부처이니
心是如來地 마음이 여래의 경지에 있기 때문일세.
당시 깜짝 놀란 부처는 바로 연등고불 또는 정광불(定光佛, Dīpaṃkara)이라고도 하는 분이었다. 보라. 그는 무아상(我相)도 인상(人相)도 중생상(衆生相)도 수자상(壽者相)도 없이 머리 위로 수만 길[丈]의 광명을 내비치며 무상(無上)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오십 년 뒤에 마하승기가 그곳에 액운을 가져다 줄 터인데, 그건 벗어날 길이 없겠다.”라는 석가여래의 말씀을 듣자 그의 자비심이 취한 듯 몽롱하게 발휘되어 미간에서 장엄한 지혜의 빛을 발산하며, 순식간에 자리에서 새처럼 날아 내렸다. 그리고 석가여래를 뵙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동녘 땅이 재난을 겪게 된다면 마땅히 제가 내려가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해주겠습니다.”
석가여래가 공손히 합장하며 대답했다.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이에 여러 부처들과 아라한, 보살들이 일제히 외쳤다.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功德)을 쌓으실 것입니다.”
연등고불은 즉시 마하살(摩訶薩) 존자와 가마아(迦摩阿) 존자를 불러 따라오게 했다. 그리고 금빛 광채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뇌음사를 떠나 영산의 도량 밖으로 나가니, 향기로운 바람이 아득히 불어오고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 피어났다. 연등고불과 두 존자는 느긋하게 구름을 타고 안개를 밟으며 한담을 나누었다. 마하살이 물었다.
“사부님, 이번에는 본래 모습으로 강림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속세의 사람 모습으로 강림하는 것입니까?”
“동녘 땅의 재난을 없애러 가는 길이니 당연히 속세 사람의 모습으로 강림해야지.”
“그럼 좋은 어머니를 찾아야 되겠군요?”
“그래야지.”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괜찮은 부모뿐만 아니라 좋은 지역도 골라야지요?”
“그래야지.”
그러자 가마아 존자가 말했다.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 좋은 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조(師祖)님, 그리고 사부님, 잠시만요. 제가 먼저 남선부주에 가서 한 번 둘러보고 괜찮은 곳을 골라놓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남해에 보살 한 분이 계시는데, 원래 영산의 모임에서 나하고 오랜 친구 사이니라. 대단히 자비롭고 중생의 고난을 구제해주기 때문에 남선부주의 모든 이들이 향을 피우고 그에게 공양을 올리고, 지극히 공경하며 그에게 귀의하고 있지. 잠시 그에게 가서 우리가 인간 세계에 머물 만한 괜찮은 지역과 선남선녀에 대해 물어보기로 하자꾸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름을 타고 내려가 어느 산 위에 이르렀다. 이 산은 동쪽 큰 바다 위에 있었는데, 동쪽으로는 고려와 일본, 유구(琉球), 신라 등이 손바닥에 놓인 것처럼 환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천하를 통일하여 북경(北京)과 남경(南京), 열세 개의 성(省)으로 나누어 통치하고 있는 명(明)나라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예로부터 이곳은 매잠산(梅岑山)이라고 불렸는데, 홍무제(洪武帝)가 등극한 후 보타낙가산(補陀落迦山)으로 개명했다. 산에는 관음봉(觀音峰), 영취봉(靈鷲峰), 괘천봉(掛天峰), 구로봉(九老峰), 필가봉(筆架峰), 향로봉(香爐峰) 등의 봉우리와 삼마암(三摩巖), 대사암(大士巖), 해월암(海月巖), 완월암(玩月巖), 진게암(眞歇巖), 농주암(弄珠巖) 등의 바위, 그리고 조음동(潮音洞), 선재동(善才洞), 삭타동(槊陀洞), 현룡동(懸龍洞), 화양동(華陽洞) 등의 동굴, 백장천(百丈泉), 소음천(嘯吟泉), 희객천(喜客泉), 팔공천(八公泉), 온천(溫泉), 농환천(弄丸泉), 괘주천(掛珠泉) 등의 샘들이 있다. 산 뒤쪽은 기암괴석이 높고 가파르게 솟아 구름과 안개를 삼키고 있다. 산 앞은 평탄한 지형인데, 그 중간에 오래된 절이 하나 있다. 앞에는 괘석탁봉(掛錫卓峰)이 솟아 있고, 왼쪽에는 일종봉(日鐘峰)이, 오른쪽으로는 월고봉(月鼓峰)이, 뒤쪽에는 관성용벽(觀星聳壁)이 있으니, 예로부터 보타사(普陀寺)라고 부르던 곳이다. 홍무제가 등극한 뒤에 보원사(補院寺)로 개명했다. 명산과 오래된 절이 있으니 동해에서 일대 장관을 이루는 곳이라 하겠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古寺玲瓏海澨中 바닷가에 오래된 절 영롱하니
海風淨掃白雲踪 바닷바람이 흰 구름 자취 깨끗이 쓸었네.
古寺玲瓏海澨中 바닷가에 오래된 절 영롱하니
誰堪寫出天然景 천연의 이 경치를 누가 묘사해낼 수 있으랴?
十二欄杆十二峰 열두 난간과 열두 봉우리 어우러졌네.
어쨌든 연등고불은 구름을 내려 그 보타낙가산에 도착하자 마하살 존자와 가마아 존자를 데리고 보타사를 향해 곧장 달려갔다. 일천문(一天門)과 이천문(二天門)을 지나 다시 상방보전(上方寶殿)으로 들어가니 양쪽 회랑 아래에 온갖 기화이초들이 빼어난 모습을 자랑하고, 참새와 꿩들이 둥지에서 새끼를 먹여 키우고 있었다.
‘과연 산수가 어우러져 신선이 살 만한 곳이로구나!’
연등고불이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마하살이 나직하게 헛기침을 했다. 잠시 후 보련좌(寶蓮座) 아래쪽에서 어린 스님이 돌아 나왔다. 마하살이 그를 알아보고 큰소리로 인사했다.
“혜안(惠岸), 훌륭한 인과(因果)를 이루셨구먼!”
그 소리에 어린 스님이 깜짝 놀랐다.
‘얼굴도 낯설고 외지에서 온 스님이 나를 어떻게 알아보고 이름까지 아는 거지? 에그, 짜증나!’
하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얼른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스님, 저를 어떻게 알아보시고, 보잘것없는 이름까지 알고 계시는지요?”
“자네뿐만 아니라 자네 부친까지 잘 알고 있네.”
“그래요? 제 아버님이 누구이고 성함이 뭔데요?”
“탁탑이천왕(托塔李天王)이 아니신가? 원래 나하고 함께 도를 수련하던 벗이었는데 모를 리가 있는가? 당연히 자네도 잘 알지.”
어린 스님은 그의 말이 틀림없는 걸 알고 더욱 공경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알고 보니 아버님 친구 분이셨군요. 제가 눈앞의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큰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데 스님께서는 법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보잘것없는 이 몸의 법명은 마하살이라고 하네.”
“하하, 과연 천하에 모르는 일이 없다는 그 마하살이시군요! 그런데 저 스님의 법명은 어찌 되십니까?”
“저쪽은 내 제자인 가마아일세.”
“저 스님 또한 마하 어쩌고 하는 분이군요. 그런데 저 사부님은 법명이 어찌 되시는지요?”
“저 분은 우리 스승님이신 연등고불이시라네.”
그 말에 혜안이 깜짝 놀라 머리를 두어 번 내젓고 어깨를 서너 번 움찔거리더니 천천히 중얼거렸다.
“제자들은 모두 마하살인데, 사부님은 마하살이 아니구나.”
“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자네 사부님은 어디 계신가?”
“낙가산 자죽림(紫竹林)에 산책하러 가셨습니다.”
마하살이 혜안과 함께 돌아서서 산문(山門) 밖으로 서너 걸음 나가서 바라보니, 멀리 울창한 대나무 숲 아래 보살이 한 분 앉아 계셨다.
키는 여덟 자인데 열 손가락 가늘고 곱고
입술은 붉은 칠하고 얼굴엔 분을 바른 듯.
키는 여덟 자인데 열 손가락 가늘고 곱고
봉황 같은 두 눈과 아리따운 눈썹
맨발에 머리 틀어 올리고, 도관과 법복 입었네.
천만 겁 인간세상 모두 살피고 온갖 어려움 겪으며
스스로 갈고 닦아 홀로 정과(正果)를 이루었네.
오로지 고난을 구제할 생각뿐인 대자대비하신 분.
왼쪽에 선 제자는 온 몸에 화염을 두르고 있고
오른쪽에 서 있는 여제자는 연신 아미타불을 외네.
초록색 앵무새는 왔다 갔다 대숲 위를 날아돌고
팔딱팔딱 물고기가 대바구니 안에서 뛰고 있네.
원래 이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로서
인간 세상의 모든 이를 살피신다네.
體長八尺, 十指纖纖.
唇似抹朱, 面如傅粉.
雙鳳眼, 巧蛾眉.
跣足櫳頭, 道冠法服.
觀盡世人千萬劫, 苦熬苦煎.
自磨自折, 獨成正果.
一腔子救苦救難, 大慈大悲.
左傍立着一個小弟子, 火焰渾身.
右傍立着一個小女徒, 彌陀滿口.
綠鸚哥去去來來, 飛繞竹林之上.
生魚兒活活潑潑, 跳躍團籃之中.
原來是個觀世音, 我今觀盡世間人.
그는 바로 관음보살이었다. 이 보타낙가산은 바로 그가 성스러운 이적(異蹟)을 드러낸 성지이기 때문에 연등고불이 남해에 보살이 한 분 계시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에 영산의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그를 만나 동녘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던 것이다.
한편 관음보살은 높고 큰 지혜의 눈이 있어서 연등고불이 인간세계에 내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황급히 몸을 날려 보련대 위로 왔다.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주인과 손님으로 자리를 나누어 앉아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었다. 그 이야기에는 아욕회(阿耨會)와 다라회(多羅會), 반도회(蟠桃會), 도솔회(兜率會), 구로회(九老會), 수보회(須菩會) 등이 언급되었으며 각종 인과(因果)에 대한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당시 혜안이 옆자리에 서 있다가 나직이 여쭈었다.
“그러니까 ‘만나면 반드시 시름겨워 쓸쓸하지는 않고, 서로 원인을 제공한 것은 모두 모임에 있던 이들[相見未須愁落莫, 想因都是會中人]’이라고 하는군요?”
그러자 연등고불이 말했다.
“훌륭한 모임이 늘 있는 건 아니니 즐거움을 줄 만한 원인을 미리 심어놓아야지.”
그리고 곧 자리를 파하고 일어나서 산문을 걸어 나갔다. 연등고불과 관음보살은 보타낙가산을 천천히 거닐며 꼼꼼히 구경했다. 나들이가 끝나자 곧장 영취봉(靈鷲峰) 꼭대기의 설경대(說經臺)로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왼쪽에는 연등고불이, 오른쪽에는 관음보살이 앉아 불경과 불법에 대해 담론을 나누며 윤회에 오묘한 진리를 얘기했다. 혜안은 향로봉에 올라가 용뇌분천향(龍腦噴天香)을 살랐다. 마하살은 석종산(石鐘山)을 걸어 올라가 돌 종을 치기 시작했고, 가마아는 석고산(石鼓山)을 걸어 올라가 돌 북을 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하늘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 피어나면서 하늘 꽃잎[天花]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설경대 아래에서 강설을 듣고 있는 이들 가운데는 생김새가 특이한 네 명이 있었다. 머리에는 모두 두 개의 뿔이 있고, 목 아래쪽에는 모두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었지만, 얼굴 생김새는 확연히 달랐다. 첫 번째 인물은 검푸른 얼굴에 푸른 옷을 입고 갑을(甲乙)의 술수를 익히고 있었고, 두 번째 인물은 붉은 얼굴에 붉은 옷을 입고 병(丙)의 방위를 가리키며 정(丁)의 방위에 서 있었으며, 세 번째 인물은 하얀 얼굴에 하얀 옷을 입고 경신(庚辛)을 호흡하고 있었으며, 네 번째 인물은 검은 얼굴에 검은 옷을 입고 임(任)의 방위를 머리에 인 채 계(癸)의 방위를 향해 예를 올리고 있었다. 혜안이 다가가 보니 다름 아니라 사해(四海)의 용왕들이었다. 검푸른 얼굴을 한 이는 동해용왕 오광(敖廣)이었고, 붉은 얼굴을 한 이는 남해용왕 오흠(敖欽), 하얀 얼굴을 한 이는 서해용왕 오순(敖順), 검은 얼굴을 한 이는 북해용왕 오윤(敖潤)이었다. 그때 마하살과 가마아도 아래쪽에서 서서 강설을 들었는데, 강설이 끝나자 하늘 꽃잎이 어지러이 떨어지고 용왕들도 각자 듣고 있는 것을 보고 나직이 여쭈었다.
“연등고불과 관음보살께서 설법을 하시니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지고 용왕들도 귀 기울여 들으니, 이건 어떤 신통력인지요?”
관음보살이 대답했다.
“너희들이 종과 북을 쳐준 인연이지.”
마하살이 여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의 그 종과 북은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니라.”
그 종과 북이 왜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고 또 무슨 신통력이 있으며 무슨 요괴와 귀신이 있는지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