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2 한문제漢文帝 6

漢文帝

19. 육체적 형벌을 회복해서는 안 된다

육체적 형벌을 회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반드시 선왕의 위대한 법을 계승하여 천하의 악을 제지해야 하니 육체적 형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가 정말 지극히 어질고 관리가 정말 지극히 도량이 넓어서 정전제(井田制)가 회복되고, 봉건제가 정립되고, 학교가 흥성하여 삼대의 예법이 시행되고 육대(六代)의 음악이 갖춰지고 난 뒤에 육체적 형벌을 회복해도 늦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어리석고 비천한 백성들에 대해서만 뼈를 부러뜨리고 살을 잘라내 육신을 훼손하면서 옛날 성왕(聖王)의 위대한 법을 따랐다고 변명하는 것은 사실상 제왕이 자신을 속여 천하를 업신여기는 셈이니, 이보다 참혹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설사 교양(敎養)의 도리가 모두 갖춰지고 예악이 부흥하여 옛날 성왕의 시대와 완전히 같아졌다 할지라도 육체적 형벌을 회복해서는 안 된다. 왜냐? 백성의 어짊은 백 년 동안 여러 세대가 지나도록 노력해도 그저 삼대가 남긴 풍속이 아직 단절되지 않은 상태로 회복할 수 있을 따름이다. 풍속이 아직 바뀌지 않고 금기를 어기는 이는 많다면 사지와 몸뚱이가 부러지고 훼손되는 이들이 쌓일 것이니, 이는 하늘도 보우해 주지 못한다. 게다가 옛날에는 태장(笞杖)의 형버이 없어서 육체적 형벌이 그다지 무겁게 여겨지지 않았는데, 오늘날은 태장이 행해짐으로써 육체적 형벌이 두려운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므로 조조(曹操)와 같이 잔인한 이도 감히 시험해 보지 못했는데, 하물며 그와 다른 이들이야 어떠하겠는가! 장창(張蒼)은 《한률(漢律)》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참수형에 처할 죄인은 형벌의 등급을 내리는 논의에 따라 처리하는데, 그런 뒤에 또 태장으로 다스려야 할 죄를 범한다면 모두 기시형(棄市刑)에 처해야 한다.大辟論減等, 已論而復有笞罪, 皆棄市.

참으로 엄격한 법률이라 하겠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이 또한 《상서(尙書)》에서 “뉘우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怙終賊刑]”라고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형사사건을 심판하는 이는 문제의 조서(詔書)와 장창의 율령을 본받아도 괜찮다.

20. 살인죄를 자수하면 형량을 감면할 수 있다

한나라 대에는 살인죄를 자수하면 형벌을 감면하는 법률이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백성들이 속이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닌가! 속이는 행위를 미워하는 이유는 끝내 죄행이 발각되지 않고 숨겨지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을 저질렀을 때 피해자의 부모, 형제, 자제가 소송을 걸고 담당 관리가 범인을 체포하면 그 죄악이 반드시 드러나게 되므로 영원히 숨길 수는 없는데, 왜 자수하면 형벌을 감면하는 제도를 쓰는가? 소인이 죄악을 저지르고 군자의 눈에서 가리는 것은 외조(外朝)에서 거침없이 말도 안 되는 큰소리를 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와 비교했을 때 누가 더 부끄러움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법률에서 감면을 허용하니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관청에서 그의 뜻대로 감면해 준다면 이는 살인의 저지르는 그의 담력을 대놓고 칭찬하는 셈이니, 죄악이 하늘까지 넘치게 될 것이다. 죄악을 은닉하고 고발하지 않는 자는 쥐새끼와 같고, 거리낌 없이 고발하는 자는 호랑이와 같다. 쥐새끼를 가르쳐 호랑이로 만들어 천하에 속임이 없도록 하려다가 오히려 죄악을 저지르는 이들이 거리낌 없는 마음을 갖게 한다면, 그들을 어떻게 징계하겠는가? 그러므로 자수를 허용하는 것은 개과천선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함이지, 흉악한 살인범을 우대해 주기 위함이 아니다. 흉악한 살인범이 스스로 숨으면 인륜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상태이니 상대적으로 낫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