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 서발문中國古代小說序跋文 《이견을지夷堅乙志》서序

《이견을지夷堅乙志》서序

훙마이洪邁[1]

【原文】

《夷堅初志》成,士大夫或傳之。今鏤板於閩於蜀於婺於臨安[2],蓋家有其書。人以予好奇尙異也,每得一說或千里寄聲,於是五年間又得卷帙多寡與前篇等,乃以《乙志》名之。凡甲乙二書,合爲六百事,天下之怪怪奇奇盡萃於是矣。夫齊諧之志怪[3],莊周之談天[4],虛無幻茫,不可致詰;逮干寶之《搜神》[5],奇章公之《玄怪》[6],谷神子之《博異》[7],《河東之記》、《宣室之志》、《稽神之錄》[8],皆不能無寓言於其間。若予是書,遠不過一甲子[9],耳目相接,皆表表有据依者。謂予不信,其往見鳥有先生而問之[10]

乾道二年十二月十八日番陽洪邁景盧叙[11]

【우리말 옮김】

  《이견초지夷堅初志》가 완성되자 사대부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이것을 전하였다. 현재 민난閩南 지방、수蜀 지방、우저우婺州 지방과 린안臨安에서 간행되었는데, 아마도 집집마다 이 책을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기이한 것을 좋아하고 이상한 것을 숭상한다고 생각하여, 한 가지 이야기를 얻게 되면 먼 곳에서도 보내주었으니, 그렇게 5년 동안 권질을 얻어 그 분량이 전편과 같아졌으므로, 이에 《을지乙志》라 이름하였다. 무릇 갑을 두 책은 모두 합하면 600가지 정도가 되는데, 천하의 괴기한 일들이 모두 여기에 모아져 있다. 대저 치셰齊諧의 《지괴志怪》와 좡저우莊周의 《장자》에 실린 괴이한 이야기들이 허황되고 환상적이긴 하지만 힐난 받을 만한 것은 아니며, 간바오干寶의 《수신搜神》이나 뉴썽루牛僧孺의 《현괴玄怪》、곡신자谷神子의 《박이博異》、《하동지기河東之記》、《선실지지宣室之志》、《계신지록稽神之錄》과 같은 책들 역시 그 안에 기탁된 말寓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나의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작해야 60년도 지나지 않았기에 눈과 귀로 직접 들은 것이라 모두 분명하게 의거하는 바가 있다. 나를 믿지 못하겠거든 오유선생을 찾아가 물어보라.

  건도乾道 2년 10월 18일 포양鄱陽 땅의 훙마이洪邁 징루景盧가 쓰다.

【해설】

  훙마이洪邁는 《이견지夷堅志》 한 집을 낼 때마다 서문을 썼다. 자오위스趙與時는 《빈퇴록賓退錄》 8권에서 그의 서문이 “각각 새로운 뜻을 드러내고 있으면서 서로 중복되지 않는다各出新意, 不相復重”라고 칭찬하면서, “그 경지에 미칠 수 없음不可及”을 한탄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각 서문의 원문 및 《빈퇴록賓退錄》에서 (원서로부터) 뽑아 실은 각 서문의 대의에 의거하면, 대부분이 책의 집필 과정을 기술하고 있으며, 소설 이론 비평 방면에 대한 새로운 의견은 적은 편이다.

  다만 《이견을지서夷堅乙志序》에서의 “괴기한怪怪奇奇” 소설의 특징에 대한 논술은 그런대로 볼 만하다. 그것은 첫째 지괴서는 “그 안에 기탁된 말이 있는데寓言於其間”, 그 기탁한 바는 단순히 기이한 견문과 괴이한 사건異聞怪事의 기록만이 아니다. 둘째, 지괴의 “진실實”과 “허구虛”의 문제에 대해 훙마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의 내원來源이 비록 “눈과 귀로 직접 들은 것耳目相接”으로 “모두 분명하게 의거한 바가 있는 것皆表表有依據”같지만, 실제로는 허구로서 다만 오유선생에게나 이것을 물을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훙마이가 지괴의 특징에 대해 일정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석]

 [1] 훙마이洪邁(1123-1202년)의 자는 징루景盧이고, 별호는 예추野處로서, 포양鄱陽(지금의 쟝시 성江西省 보양波陽) 사람이다. 소흥紹興(남송 고종의 년호) 연간에 진사가 되어 관직이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에 이르렀고, 《용재수필容齋隨筆》、《이견지夷堅志》 등을 저술하였다. 《이견지》는 필기소설집으로, 《열자列子》의 “이졘이 (괴이한 일을) 듣고서 이것을 기록하였다.夷堅聞(怪異)而志之”라는 말에서 취하여 책이름으로 삼았다. 그 내용은 괴이한 일을 많이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의 시민 생활 및 육조六朝 이래의 지괴 작품인 《태평광기太平廣記》 중의 이야기들을 잡다하게 싣고 있기도 하다. 10여 년 동안 계속해서 책을 집필하였으며, 갑甲에서 계癸까지 2백 권, 지갑支甲에서 지계支癸、삼갑三甲에서 삼계三癸까지 각각 백 권씩이고, 사갑四甲에서 사을四乙이 각각 열  권씩으로 모두 420권이며, 지금은 불완전하게 남아있는데, 함분루涵芬樓에서 조판·인쇄한 206권 본은 비교적 제대로 펴낸 것이다.

 [2] 루판鏤板 : 조판 간행한다는 뜻이다. 민閩(민난閩南 지방)은 지금의 푸졘 성福建省 일대를 가리키고, 수蜀는 지금의 쓰촨 성四川省 일대이다. 우婺는 저쟝 성浙江省 진화金華(우저우婺州 지방) 일대이며, 린안臨安은 지금의 항저우杭州를 가리킨다.

 [3] 제해齊諧 : 《장자莊子》<소요유逍遙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제해라는 것은 괴이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齊諧者, 志怪者也.” 청쉬안잉成玄英의 소疏는 다음과 같다. “성은 치이고 이름은 셰로, 사람의 이름이다. 또한 책이름을 말하기도 하는데, 제나라에는 이러한 재담서들이 있었다고 한다姓齊名諧, 人姓名也 ; 亦言書名也, 齊國有此俳諧之書也.”

 [4] 담천談天 : 《장자莊子》에서 하늘의 기이한 일을 이야기한 것이 많음을 가리킨다.

 [5] 간바오干寶의 《수신搜神》 : <《수신기》서搜神記序> 주 1)을 볼 것.

 [6] 기장공奇章公 : 당대唐代의 뉴썽루牛僧孺를 가리킨다. 썽루僧孺(779-847년)의 자는 쓰안思黯이고, 안딩安定 지방의 춘구鶉觚(지금의 간쑤 성甘肅省, 링타이靈台 지방) 사람이다. 당 경종敬宗 때에 기장군奇章郡의 공公으로 봉해졌고, 문종文宗 때에는 재상이 되었다. 당시 우이당쟁牛李黨爭에서 우파牛派의 영수였다. 무종武宗 때에는 당쟁에 연루되어 쉰저우循州 지방의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 그는 어려서 문명文名을 날렸으며, 전기傳奇 짓기를 좋아하였다. 《현괴록玄怪錄》(일명 《유괴록幽怪錄》이라고도 한다.) 10권은 이미 없어졌고, 현재는 《태평광기太平廣記》에 30여 편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내용은 지괴 류가 많고, 문사文辭가 정교하고 아름다워, 당시 사람들이 이를 중시하였다.

 [7] 곡신자谷神子는 만당 시인 정환구鄭還古를 가리키는 듯한데, 혹자는 펑쿼馮廓를 가리킨다고도 하며, 구체적인 것은 자세하지 않다. 《박이기博異記》는 1권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모두 신괴한 일神怪之事로서, 기록되어 있는 시가詩歌가 상당히 정교하고 섬세하다.

 [8] 《하동지기河東之記》 : 곧 《하동기河東記》이다. 당나라 쉐위쓰薛漁思가 지은 지괴 전집으로, 원래는 3권이었으나 이미 산일散佚되었고, 《설부說郛》에 1권이 집록되어 있다.

      《선실지지宣室之志》는 《선실지宣室志》로, 필기로 되어 있으며, 당唐의 장두張讀가 저술하였다. 한 문제漢文帝는 일찍이 선실宣室로 쟈이賈誼를 불러들여, 귀신의 일을 물었으니, 이로부터 책 이름을 취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역시 신괴神怪를 많이 기록하였다.

      《계신록稽神錄》은 송나라 쉬쉬안徐鉉이 저술한 필기로 원본은 이미 없어졌다. 이를 명대明代 마오진毛晉이 6권으로 편집하였고, 《습유拾遺》 1권은 모두 신괴한 일을 기록하였다.

 [9] 갑자甲子에서 갑甲은 십간十干의 처음에 해당되고, 자子는 12支의 맨 처음을 차지하는데, 간지干支는 순서에 따라 서로 짝을 이루어 갑자甲子에서 계해癸亥까지 그 수가 60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사용하여 년도를 기록하였다. 일갑자一甲子는 60년이다.

[10] 오유선생鳥有先生은 가상 인물을 말한다. 한대漢代의 쓰마샹루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자허子虛、오유선생鳥有先生、무시공亡是公 이라는 가공의 세 인물이 등장해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사기史記》<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유선생이라고 하는 것은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鳥有先生者, 鳥有此事也.”라는 뜻이다.

[11] 건도乾道, 일찍이 송 효종宋孝宗 자오선趙愼 신이 사용한 연호로, 건도乾道 2년은 곧 서기 1166년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