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2 한문제漢文帝 5

한문제漢文帝

16. 가의가 양나라와 회남국의 봉지를 늘려 주자고 건의했는데, 그 말은 자체로 어긋난다

가의는 제후의 재앙을 두려워하여 양(梁)나라와 회남국의 봉지를 늘려서 장강과 황하의 경계까지 넓힘으로써 동방을 견제하자고 했는데, 그 말은 얼마나 자체적으로 어긋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밤낮으로 고심하고 노력하여 여섯 나라를 없앴는데, 이제 두 손을 공손하게 맞잡고 여섯 나라의 형세를 이루게 해 주었다.”

그러니 그가 진나라의 지혜를 본받아 천하를 통일하려 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양나라와 회남국의 봉지를 키워서 장강과 황하 사이로 확장하려 했다. 오늘날의 양나라와 회남국은 바로 미래의 오나라와 초나라에 해당한다. 그런데 오나라와 초나라를 제압하면 양나라와 회남국은 더욱 교만해질 텐데, 그 봉지를 장강과 황하 사이로 확장하여 한나라가 동쪽 지역과 소통할 문호를 막아 버린다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황제 자신의 형제는 가까이하고 믿어야 하는데, 천리를 거스르면 그 보복이 신속하게 돌아올 것이다. 내 자손이 양나라와 회남국을 독충으로 여겨 원수처럼 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봉건제도를 회복할 수 없는 것은 대세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익숙해 있던 것을 변화시키려면 반드시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진나라는 포악하게 하루아침에 여섯 나라의 경계를 찢어 버렸기 때문에 온 천하에 원한이 쌓였다. 한나라가 대략적이나마 삼대를 모범으로 삼아 제후왕을 봉했지만 그런 추세는 반드시 오래 유지할 수 없었으며, 없애더라도 하늘의 뜻을 돌이킬 수 없고 사람들이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고 나서 그 추세에 따라야 했다. 일곱 나라의 변란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들을 없애 버린다면 그 역시 진나라와 같은 처사이다. 한나라 초기의 봉건제도는 꺼져 가는 횃불과 같아서 그저 잠시 그 불꽃이 환히 타오를 뿐이었다. 지혜로운 이는 하늘의 뜻에 따르고, 어진 이는 자신의 봉지에서 편히 지내면서 그저 때를 기다릴 따름이다. 그런데 가의가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그가 도모한 것은 스러져 가는 봉건제도의 마지막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그 형적을 조금 바꾸어 눈앞의 국면이 변하는 것을 조금 늦추었을 따름이다. 이렇게 보면 가의도 상황이 백 년 안에 바뀔 수 없음을 알고 잠시 그 염려를 자손에게 물려준 셈이다. 봉건제도를 모두 없애는 것은 천지간의 크나큰 변혁이니,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이 일에 관여하기에 부족하다. 그런데 가의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17. 백성을 변경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은 시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백성을 변경으로 이주시키자고 한 조조(晁錯)의 정책은 너무나 훌륭했다! 농민 사이에 병사를 두는 것이 후세에는 중원 한복판에서 쓸 수 없는 방법이지만, 변경에서 가능했다. 기후가 다르면 생물의 질도 달라지고, 땅의 기운이 다르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습관과 유행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운남(雲南)과 귀주(貴州), 광서(廣西)의 백성은 자연히 만족(蠻族)과 묘족(苗族)을 막기에 충분하여, 그들이 오령(五嶺)을 넘어 내지(內地)를 엿볼 염려가 없었다. 이는 만족과 묘족이 약하고 북적(北狄)이 강해서가 아니라, 토착민들이 길목을 제압하고 있으니 내지로 깊이 들어오면 변방의 백성이 허를 찔러 그들의 소굴을 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면도 있다. 변경의 토지는 비옥하고 척박한 정도가 고르지 않은데, 백성을 이주시켜서 척박한 땅을 주면 대부분 도망쳐 버리거나 죽고 말 것이다. 그리고 관리를 잘못 임명하면 천천히 위무(慰撫)할 방법을 모를 테니, 틀림없이 백성들이 반발하여 북적에게 이용당하게 될 것이다. 경솔하게 이주 정책을 얘기하면 반드시 이 두 가지 폐단에 부딪힐 테니, 백성을 변방으로 이주시키자는 것은 오랫동안 논의에 부치기 조심스러운 문제였다. 이에 대해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그 지역의 음양의 조화를 살피고 그곳 하천과 샘의 물맛을 봐야 한다.”

일을 시작할 때 치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땅이 정말 척박하다면 험한 산과 계곡이 있고 군대를 주둔시켜 지켜주더라도 변방의 요새 안으로 이주시켜야 걱정이 없다. 우리가 살 수 없는 곳은 저들도 차지할 수 없다. 관리의 잘잘못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법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법이 잘 갖춰져서 사람을 대하면 사람의 잘못도 드물어진다. 후세에 변방에서 벼슬살이하는 이들은 빈약하고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을과(乙科) 급제자가 아니라 잘못을 저질러 강등되었거나 후보(候補) 자리에 있던 무능한 관리들이었다. 그러니 이들 가운데는 조정에 들어가 대간(臺諫)이나 낭관(郞官)이 되거나, 어떤 부서를 책임지는 감사(監司)나 군수(郡守)로 발탁될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이들은 날은 저물고 길도 끝나 가는 인생 말년의 심정으로 구차하게 부귀영화를 이어 가려고 할 뿐이니, 나라와 백성을 염려하고 변경의 방비를 튼튼히 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갑과(甲科) 급제자를 파견하면서 치적이 뛰어난 군수나 현령(縣令)을 변경으로 옮겨 다스리게 하면서 법과 제도를 관대하게 풀어 주어 자신의 재능을 다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백성을 위무하고 격려하고, 요역(徭役)과 부세(賦稅)를 가볍게 하여 평안하게 살도록 해 주고, 상인을 통행시키고 농업과 목축업을 발전시켜 부유하게 해 주고, 향시(鄕試) 급제자의 수를 늘려 영예롭게 해 주고, 지혜와 능력을 갖춘 호걸들을 아끼고 격려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주민들이 분명히 중국의 틈을 노리는 북적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그런 형세를 백 년 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변경이 나날이 강해지면 중국은 가만히 앉아서 북적이 자멸하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조의 말이 대단히 훌륭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쉽게 해서는 안 되었다.

“흉노와 관계를 끊어 화친하지 말고, 저들이 겨울에 남하할 때 대대적으로 정벌하면 평생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수십 년 동안 경영하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다. 화친 정책으로 미리 묶어 놓고 백성을 변경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천천히 추진하면, 굳이 대대적으로 정벌하지 않더라도 그들 스스로 감히 남침을 결행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이 재앙을 뉘우치지 않고 무모하게 야욕을 드러낼 때 대대적으로 정벌한다면 되니, 이기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8. 납속(納粟)으로 벼슬을 주고 죄를 면제하는 계책도 잘못이 아니다

납속으로 벼슬을 주고 죄를 면제해 주자는 조조(晁錯)의 계책도 잘못이 아니다. 물론 이것이 벼슬을 가볍게 팔고 죄를 재물로 무마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며, 이를 통해 금전(金錢)의 지위를 낮추고 곡식의 지위를 그만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납부한 식량의 값어치에 비해 깎아서 현금으로 징수하면 ‘세 가지 편리함[三易]’이 있다. 즉 관청에서 징수하기 편하고, 관리가 지키기 편하며, 백성이 수송하기에 편하다. 이 세 가지 편리함으로 간략함을 추구하면 금전이 식량의 높은 지위를 빼앗기 때문에, 차라리 백성이 수송하고 관청에서 징수하고 관리가 간수하기에 수고로울지라도 그 편리함을 따라서는 안 된다. 이것을 수십 세대에 걸쳐 시행하면 순수한 이로움이 있겠지만, 속된 관리는 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곡식 600석을 바치면 상조(上造)의 작위를 준다고 했을 때, 한 집의 가장과 큰아들, 다른 형제들 가운데 애써 농사지어서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것을 빼고 600석의 여분이 남도록 수확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부유하고 권세 높은 호족들이 많은 토지를 점유하고 소작을 주고 절반을 구실[田租]로 거둬들이거나, 부유한 상인이 금전으로 사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업을 중시하려 해도 농업은 갈수록 경시되고, 곡식을 귀하게 여기려 해도 금전의 지위만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삼대 이후로 강력한 호족과 부유한 상인을 억제하기는 어려웠으며 토지 점유를 제한하는 것도 갑자기 시행할 수 없었으니, 차라리 자영농과 소작농을 구별하여 부역(賦役)을 차등(差等)하여 부과하는 제도를 제정하는 편이 낫다. 자기 전답을 가지고 직접 농사짓는 백성은 크다고 해야 300무(畝)를 넘지 못하게 하고, 그 자제들 가운데 장정[丁夫]의 수를 자세히 조사하여 토지 면적을 실제에 맞게 조정하며, 이 기준을 넘어가는 토지는 모두 소작농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자영농에게 부과되는 부세(賦稅)를 경감하고 소작농의 부세를 그보다 두 배로 늘리는 증감의 방식으로 전체 소득의 1할을 부과하는 세율에 맞추어야 한다. 수재나 가뭄이 들면 자영농의 부세를 전부 면제하고, 소작농은 특별히 큰 흉년이 들지 않는 한 함부로 감면해 주지 말아야 한다. 만약 몸소 힘을 다해 농사를 지으면서 건장한 장정에게 나누어 맡겨 많이 개간하여 풍족하게 수확함으로써 잉여 곡식이 많다면, 그것을 임의로 변경에 수송하게 하고 그 대가로 작위를 주거나 죄를 면제해 준다. 그런데 금전으로 곡식을 수매한 부유한 상인이나 함부로 토지를 점유하고 소작농에게 많은 구실을 거둬드려 곡식을 축적한 호족은 납속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금전의 높은 지위를 빼앗아 곡식에게 돌려주는 일이 십 년 안에 실현될 것이다. 조조의 이론을 충실히 행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여 훌륭한 관리에게 백성을 다스리도록 맡겨서 작위를 주고 죄를 면제하는 일을 획일적으로 엄격히 시행하면 막힘 없이 오래도록 유지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곡식을 수송하여 작위를 주고 죄를 면제하라는 명령이 변질되어 편리하게 현금으로 징수함으로써 천하 사람들이 갈수록 금전을 모으기에 급급할 테니, 부질없이 형벌과 포상의 중요한 법을 어지럽힌 패망의 정책이 되어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