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증계천에게與曾繼泉

증계천1)에게與曾繼泉

듣자하니 자네가 삭발을 하려고 한다는데, 이는 절대 안될 일일세. 자네는 처첩과 전답과 집이 있고, 더욱이 아직 자식이 없지 않은가. 자식이 없으면 처첩이나 전답이나 집을 어디에 맡기려는가? 처첩과 전답, 집이 있으면서 아무 까닭없이 버린다면, 이는 어질지 않은 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아주 의롭지 못한 일일세. 생사를 초월하고 불도를 추구하는 마음이 정말 그렇게 절실하다면, 집에서 수행하는 것이 출가하는 것보다 천배 만배 낫다네. 한 번 묻겠네만, 자네가 과연 바리를 들고 이집 저집 다니며 걸식할 수 있겠는가? 과연 며칠 동안 굶주려도 남에게 밥 한 그릇 구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자기 밭 갈아 살아가면서 집에서 수행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내가 처음 도를 배울 무렵에는 아내가 있었을 뿐 아니라 관리 생활도 하고 있어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면 수만 리 먼 길을 왕래하곤 했었지만, 그래도 학문은 나날이 발전한다고 느꼈네. 나중에 초(楚) 지방2)에 머물게 되었을 때 좋은 스승과 친구를 찾아 함께 있고 싶었는데, 가족들은 힘들다며 남아 있으려고 하지 않았지. 그래서 작은 사위와 작은 딸에게 식구를 데리고 돌아가라고 했네. 그래도 친딸이나 처가 형제 등이 있어 아침 저녁으로 시중들고, 관직 생활 당시 받았던 봉록에서 남았던 것도 가족에게 모두 주어버리고 단지 나 홀로 외지에 남아 있었으니, 비록 나의 처는 돌아갔지만, 사실 나는 염려할 필요가 없었네. 이런 까닭에 내가 안심하고 여기서 살면서 친구와 노닐 수 있었다네.

내가 삭발한 이유는 다음과 같네. 집에서 온 식구들이 항상 내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고, 또 때로는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찾아와 내게 졸라대며, 속세의 일 때문에 돌아가자고 내게 강요하니, 그 때문에 나는 삭발을 함으로써,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과 또한 속세의 일은 절대로 상관하지 않으리라는 의지를 보여준 것일 뿐이라네. 또한 이곳의 식견이 없는 사람 중에 나를 이단으로 지목하는 사람이 많아서, 나도 결국 이단인 것처럼 행세하여 그 풋나기들의 명분에 맞춰주려고 했지.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유로 갑자기 삭발을 하기는 했지만, 원래 내 마음은 아니었네. 사실 이제 나이도 많이 들어서, 이 세상에 있을 날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일 뿐이네.

자네같은 한창 나이에는 자식도 낳아야 하고, 사람 노릇도 해야 하겠고, 한창 진보하고 향상해야 될 것이네. 또한 자네는 전답도 그렇게 많지 않고, 집안의 사업도 그리 크지 않으니, 시간을 내면서 살아가기에 아주 좋다네. 어마어마하게 부귀한 집안 사람들처럼 처리할 집안 일이 너무 많아서 눈꼽 만큼도 시간을 낼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왜 꼭 삭발하고 출가한 연후에 도를 배워야 한단 말인가? 나는 삭발하고 출가하고 나서야 비로소 도를 배운 것이 아닐세. 절대 내 말을 잘 들어주게! (권2)

1) <예약>(豫約)에 나오는 증승암(曾承庵)이 아닌가 한다.
2) 경(耿)씨 형제의 거주지로, 호북(湖北) 황안(黃安)을 말한다. 이지가 관직에서 물러나서 만년을 보낸 지역이 바로 이 지역이다.

卷二 書答 與曾繼泉

聞公欲薙發,此甚不可。公有妻妾田宅,且未有子,未有子,則妻妾田宅何所寄托;有妻妾田宅,則無故割棄,非但不仁,亦甚不義也。果生死道念真切,在家方便,尤勝出家萬倍。今試問公果能持缽沿門丐食乎?果能窮餓數日,不求一餐于人乎?若皆不能,而猶靠田作過活,則在家修行,不更方便乎?

我當初學道,非但有妻室,亦且為宰官,奔走四方,往來數萬里,但覺學問日日得力耳。

後因寓楚,欲親就良師友,而賤眷苦不肯留,故令小婿小女送之歸。然有親女外甥等朝夕伏侍,居官俸余又以盡數交與,只留我一身在外,則我黃宜人雖然回歸,我實不用且,以故我得安心寓此,與朋友嬉游也。其所以落發者,則因家中閑雜人等時時望我歸去,又時時不遠千里來迫我,以俗事強我,故我剃發以示不歸,俗事亦決然不肯與理也。又此間無見識人多以異端目我,故我遂為異端以成彼豎子之名。兼此數者,陡然去發,非其心也。實則以年紀老大,不多時居人世故耳。

如公壯年,正好生子,正好做人,正好向上。且田地不多,家業不大,又正好過日子,不似大富貴人,家計滿目,無半點閑空也。何必落發出家,然後學道乎?我非落發出家始學道也。千萬記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