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견1)에게與楊定見
이건 절대 안 된다. 세간에는 항상 시비를 따지는 소란이 어지러이 일어나니, 사람이 시비를 따지는 일에서 어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시비를 따질 때에 어떻게든 잘 보여서 원망을 사는 일을 멀리 하려고 하는 등의 일들은 또한 소인배들이 자주 보이는 작태여서 괴이하게 여길 것도 없다. 그렇지만 옛날 사람 중에서도 진실한 마음으로 남과 어울리다가 마침내 스스로 함정에 빠진 사람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저 한 번 웃어버리고 없었던 일로 하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저들이 시비를 따지는데, 나 또한 함께 시비를 따진다면, 따지는 것이 그치지 않아 논쟁을 하기에 이른다. 듣는 사람들은 처음에 시비를 따졌던 사람을 싫어하지 않고, 반대로 나중에 시비에 끼어들어 논쟁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이것은 분명한 것인데, 다만 논쟁의 와중에 정신없이 휘말려 있어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남들이 시비를 따지는 것을 싫어하면서, 자기는 또 시비를 따진다. 따지다가 그치지 않으면 논쟁을 하기에 이르고, 논쟁이 그치지 않으면 목소리가 도를 지나치기에 이르고, 목소리가 도를 지나치는 것이 그치지 않으면 원수가 되기에 이른다. 목소리가 도를 지나치면 기(氣)에 손상이 가고, 많이 따지면 몸에 손상이 가고, 원수가 되면 친분을 잃게 되니, 당연히 그 불편함이 심해진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의 편함도 찾을 줄 모르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는가?
또한 나는 신의(信義)로 남들과 어울리는데, 이것은 이미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게다가 남들이 신의를 등진 것을 탓한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에 지혜롭지 못한 것을 더하는 것이요, 어리석음 위에 어리석음을 더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으리니,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조금이라도 편함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비웃을 것이니, 앉아서 남이 나를 비웃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처세를 나는 평소에 어길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반성하여 이겨낼 수 있어서, 남에게 편함을 넘겨주려고 하지 않았다. 만일 남이 나를 비웃는다고 해도, 기를 가라앉히고 편안하게 있으면, 정신이 다시 온전해지고 가슴이 다시 예전처럼 탁 트이고 상쾌해진다. 또한 책을 읽거나,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던 중에라도, 그저 편안하게 한바탕 잠을 자며, 스스로에게 받아들이게 한다.
시비를 따지는 일은 대단히 한탄스럽거나 수치스런 일인데, 저 다투고 속이는 것을 일삼는 사람들은 도리어 한탄스럽거나 수치스런 것을 깨닫지 못한다.(권1)
1) 양정견(楊定見)은 마성(麻城) 사람이다. 이지에게 매우 심취해 있는 인물이었다. 이지가 75세 때 죽기 전 지불원이 당국의 박해를 받았을 때 부축하여 마경륜에게 황얼산으로 피신하도록 도와주었다. 이지도 양정견이 끝까지 자신을 이해하고 좋아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준기>(三蠢記)․<팔물>(八物)등 참조.
卷一 書答 與楊定見
此事大不可。世間是非紛然,人在是非場中,安能免也。于是非上加起買好遠怨等事,此亦細人常態,不足怪也。古人以真情與人,卒至自陷者,不知多少,祗有一笑為無事耳。
今彼講是非,而我又與之講是非,講之不已,至于爭辯。人之聽者,反不以其初之講是非者為可厭,而反厭彼爭辯是非者矣。此事昭然,但迷在其中而不覺耳。既惡人講是非矣,吾又自講是非。講之不已,至于爭,爭不已,至于失聲,失聲不已,至于為仇。失聲則損氣、多講則損身,為仇則失親,其不便宜甚矣。人生世間,一點便宜亦自不知求,豈得為智乎?
且我以信義與人交,已是不智矣,而又責人之背信背義,是不智上更加不智,愚上加愚,雖稍知愛身者不為,而我可為之乎?雖稍知便宜者必笑,而可坐令人笑我乎?此等去處,我素犯之,但能時時自反而克之,不肯讓便宜以與人也。千萬一笑,則當下安妥,精神複完,胸次複舊開爽。且不論讀書作舉業事,只一場安穩睡覺,便屬自己受用矣。此大可歎事,大可恥事,彼所爭與誣者,反不見可歎可恥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