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해넌Patrick Hanan 교수와의 대담

송진영(宋眞榮 水原大 中文系) 정리

해넌 교수와 대담을 진행한 송진영 교수, 사진 ⓒ 송진영, 2005

송진영 :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의 중국문학 연구자에게 교수님의 이름은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저도 중국소설을 공부하면서 교수님의 논문을 일찍이 접했었기에 늘 한 번 뵙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일찍 그 기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니 상당히 기쁩니다. 또한 한국의 중국소설연구자들을 대표해서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선생님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선생님을 한국학계에 소개하는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됨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 사소한 질문부터 먼저 드리겠습니다. 너무 상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되지만, 한국의 연구자들을 위해서 선생님의 고향과 학력, 그리고 어떻게 중국문학을 선택하게 되셨는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해 넌 : 저는 1927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B.A.와 M.A.를 모두 영문학으로 획득했고, 1949년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영어선생님을 하다가 전공을 바꾸어 런던대학에서 중국문학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뉴질랜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때도 중국문학에 대한 흥미가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공부할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런던대학의 동양학부에는 중국문학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서넛 있었고 훌륭한 동양학도서관을 가지고 있었지요. 또한 다행히도 학교에서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에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당시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중국문학을 공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영국정부에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송진영 : 그럼 중국문학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모두 영국에서 공부하셨나요?

해 넌 : 당시 나는 중국문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에 학부에서부터 중국문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B.A.가 두 개이지요, 하나는 영국문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문학으로 말입니다. 영국의 학위제도는 미국과 조금 달라서, 학문을 계속할 의향이 있는 우수한 학부생은 바로 박사학위과정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부과정을 졸업한 뒤 나는 런던대학에서 박사과정으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송진영 : 중국문학연구자가 지금은 서구에도 상당수 있지만, 교수님이 전공으로 중국문학을 선택할 당시에는 상황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고 짐작되는데 어떠셨습니까?

해 넌 : 그렇습니다. 당시에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적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직업을 갖기도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1950년 내가 런던대학 동양학부에 입학한 첫 해에는 당시 아마 15명 내지 2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문학을 하는 학생 중 한 사람은 홍콩에서 온 외교관이었고,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너 댓 명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일학년을 마치고 다시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계속 공부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고,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장학금에서 저금한 것으로 또 강사를 하면서 계속 공부할 수가 있었지요. 당시 학교 측에서는 중국학을 하려는 학생은 아예 홍콩으로 보내 중국어를 배우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때 홍콩에 가서 얼마간 공부했습니다.

송진영 : 런던대학 동양학부는 지금까지 동양학연구자들을 상당수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어떤 선생님들에게서 배우셨는지요?

해 넌 : 런던대학의 프로그램은 비교적 자유스러운 편이어서 특별히 지도교수라는 제도는 없었지만, 월터 사이먼(Walter Simon)과 아서 웨일리(Arthur Waley)를 저의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공부할 당시, 저와 나이는 비슷하지만 공부를 일찍 시작해서 이미 젊은 교수였던 씨릴 버취(Cyril Birch)가 런던대학에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사이먼(Simon)교수는 전공은 문학이 아니었지만 문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금병매(金甁梅)』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는데, 제가 박사논문으로 당시에는 거의 연구되고 있지 않았던 『금병매』를 선택하게끔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웨일리(Waley) 교수는 유명한 번역가로 알려진 분이지요.

송진영 : 당시 런던대학의 도서관에 상당히 좋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영국이 동아시아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사실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와 비교하여 당시 미국 도서관의 상황은 어떠했는지요?

해 넌 : 아마도 그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런던대학의 선본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당시 미국의 일부대학도 동양학 관련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었지요. 하바드 대학, 시카고 대학, 콜럼비아 대학, 그리고 버클리 대학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바드 대학 같은 경우, 훌륭한 도서관 사서로 꼽히는 츄카이밍(裘開明)씨가 이미 30년대부터 전문적으로 책을 사 모으고 있었지요.

송진영 :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 역시 훌륭한 동양학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해 넌 : 그러나 프린스턴 대학은 출발이 다른 학교보다 좀 늦었습니다. 1960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도서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들은 주로 캐나다의 개인 소장가들에게서 선본들을 사들였죠.

송진영 : 미국에는 언제 오셨나요?

해 넌 : 1963년 스탠포드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와 68년까지 스탠포드에서 중국어와 문학을 가르쳤습니다.

송진영 : 당시 미국에서의 중국문학연구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미국에서의 중국문학연구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해 넌 : 50년대에는 미국 내 몇 개 극소수 대학에서 중국문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대부분 중국인 학자들이었는데, 매우 훌륭한 학자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연구는 중국문학이 아니라 한학(漢學, Sinology)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분야에 대한 연구였죠. 중국문학에 대한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50년대 말에 미국정부가 중국어를 비롯한 동구권 및 러시아 등, 불어와 스페인어를 비롯한 주요 유럽언어를 제외한 지역언어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60년대부터는 대학에서의 중국학연구를 장려하고 재정적으로도 지원하면서 많은 대학에서 중국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이러한 지원은 대학에서의 중국학연구에 상당한 격려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중국문학연구도 이때부터 세분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죠. 저도 만약 50년대였다면 공부를 했어도 직장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송진영 : 60년대 미국정부에서 중국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미국정부의 당시 대외외교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되는군요. 그렇다면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개선이 이루어지는 70년대에는 정부가 중국학연구를 보다 더 강조하고 지원했겠는데요.

해 넌 : 물론입니다. 72년 닉슨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한 이후 중국학연구는 좀 더 활발해졌습니다.

송진영 : 그렇다면 당시 이러한 정치적인 배경으로 인해서 정부의 지원이 정치, 경제 등 보다 정부의 정책결정과 관련된 분야에 집중되지는 않았나요?

해 넌 : 그렇지는 않습니다. 중국학에 대한 지원은 특정분야에 국한되지 않았고 정치, 경제학적 연구와 함께 역사, 문학, 문화 등 다양하게 그리고 골고루 이루어졌습니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대학의 연구를 모두 지원한 것은 아니고 부분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상당한 격려작용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송진영 : 하바드에는 언제부터 재직하고 계신지요?

해 넌 : 68년부터 지금까지 하바드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28년이 되는군요.

송진영 : 하바드대학에만 계신지 거의 30여년이 되는군요. 그렇다면 최근 30년의 하바드 대학의 동아시아학 연구를 이끌어오셨다고 할 수 있는데, 하바드 대학의 중국문학 연구의 특성, 혹은 학풍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 넌 : 글쎄요. 학풍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비록 하바드 대학에 오랫동안 있었다고는 하지만, 중국에서와 같이 특정대학의 특정한 학풍이 하바드 대학에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한국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미국의 대학은 좀 자유스럽고 열려있다고 할까요. 하바드 대학의 졸업생들은 졸업 후 각기 여러 곳으로 흩어집니다. 베이징대학의 교수가 거의 베이징대 출신으로 이루어져, 고유의 학풍을 이루는 것과 달리, 우리는 학생들이 모두 미국 내 여러 대학으로 흩어지도록 권장합니다. 물론 존 페어뱅크(John K. Fairbank)처럼 하바드 출신으로서 하바드 대학에 남아 오랫동안 자신의 학생들을 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는 청대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하바드 대학에서 상당한 분량의 청대 연구성과를 내기도 했지요. 그러나 우리 과의 중국문학분야의 경우, 스티븐 오웬(Steven Owen) 교수는 예일에서 왔고, 리어우판(李歐梵) 교수는 하바드 출신이기는 하지만 오랜 기간 여러 다른 대학에서 가르쳤고, 또 상웨이(商偉) 교수는 베이징대 출신인 것처럼 아주 다양하지요. 특별히 학풍이라고 부를 만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송진영 : 미국 내에서의 중국소설연구가 중국인들의 소설연구와 다른 어떤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해 넌 : 20년 내지 15년 전까지만 해도 무척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80년대 초반에 위스콘신대학에서 홍루몽학회(紅樓夢學會)가 열렸습니다. 양자의 연구경향이 다름을 아주 분명히 보여주었죠. 그 당시 제출된 논문을 보면,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중국에서 온 학자들의 논문은 모두 고증과 판본에 관련된 논문이었고, 미국 내 학자들의 논문은 하나같이 모두 비평이론에 입각한 논문들이었지요. 양자가 아주 달랐어요. 서로 다른 연구경향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 이후로는 양자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그 연구경향이 서로 복합되어 간다고 보여 집니다. 특히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하는 젊은 학자들이 많아지면서, 또한 최근에는 중국에서 오는 방문학자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고 있는 셈이지요.

송진영 : 방금 미국에서의 중국소설연구가 비평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이것이 중국에서의 소설연구와 구별되는 미국에서의 연구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서구소설이론의 중국소설 적용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요?

해 넌 : 이러한 연구경향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비평이론의 중국소설에의 적용은 상당히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비평이론 자체가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지나면 부정되거나 바뀌기 때문에 무너질 가능성이 크지요. 시간이 흐른 뒤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작업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평이론에 대한 지식은 소설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본 작업입니다.

송진영 : 거기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는 있겠죠.

해 넌 : 물론입니다. 이론을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사용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요.

송진영 : 사람들은 곧잘 하바드와 프린스턴의 소설연구를 비교하기도 하는데요, 즉 하바드라면 선생님을 지칭하는 것이고 프린스턴이라면 플락스(A. Plaks) 교수를 지칭하는 셈인데,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해 넌 : 물론 우리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무척 다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서로 다른 두 학풍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연구경향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요, 사람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나의 학생들과 그의 학생까지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학생들이 모두 다 그의 연구경향을 쫒아가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삼국연의판본고증(三國演義版本考證)』을 쓴 앤드루 웨스트(Andrew West, 중국식 이름은 魏安)는 플락스 교수의 학생이지만 전혀 다르죠. 이 책은 아주 훌륭합니다.

송진영 : 선생님께서 중국문학 중에서도 소설을 주요 연구테마로 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요?

해 넌 : 중국소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광범위한 생활을 다루고 있기에 매우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본래 소설에 강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문학을 학부에서 전공할 때도 나는 소설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나중에 전공을 바꾸면서도 자연스럽게 소설을 전공분야로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송진영 : 1960년대 존 비숍(John Bishop)이 중국소설을 서구소설과 비교하여 비판한 견해가 서구인의 중국소설관인 것처럼 거론되기도 하지만, 많은 서구의 중국소설연구가들이 이미 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해 넌 : 저는 그와 견해를 같이 했다고 생각한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 중국소설은 서구소설과는 다르죠. 그러나 그것이 낙후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그는 아주 좋은 학자였고, 그 이후에 『중국백화소설사(中國白話小說史)』라는 책을 출판했고, 이미 번역도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그는 당시 그 글을 쓸 때, 너무 많은 중국소설을 읽어서 좀 지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웃음) 그래서 그렇게 쓴 것 같아요. 당시 그는 유명한 비평가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었고 또 그의 영향을 받았지요. 그는 사실 오랫동안 중국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의 그 논문이 그의 중국소설에 대한 견해를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송진영 : 그럼 선생님께서는 중국소설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 넌 : 그건 아주 어려운 질문인데요, 중국소설이 내 마음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한가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요. 중국소설에는 여러 서로 다른 유형이 존재하지요. 나는 여기서 중국소설의 전통을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부터 청말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유형과 전통이 풍부하게 존재하지요. 이 점은 일본의 소설이나 한국 소설, 프랑스 소설과 영국 소설, 독일 소설이 그러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점이 세계의 훌륭한 소설문학의 전통적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송진영 : 동의합니다. 그리고 중국문학의 특성 중의 하나가 매우 세밀한 디테일의 묘사라고 간주하기도 하는데요.

해 넌 : 그래요, 그건 사실이지요. 특히 『금병매』와 『홍루몽(紅樓夢)』에서 이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지요. 일상생활에 매우 접근한 세밀한 묘사가 이루어졌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소설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디테일은 19세기 영국의 소설에서도 발달했습니다. 중국소설은 좀더 빨리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중국소설, 다시 말하자면, 학자들에 의해 우수한 소설로 인정되는 소설들에서 발견되는 특성은 바로 윤리성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중국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평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금병매』,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 『유림외사(儒林外史)』, 『홍루몽』 등에서 보여 진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런 점은 다른 나라의 소설에서도 보여지지만 중국소설에서 좀더 그 특성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합니다.

송진영 : 지금 말씀하신 점, 사회에 대한 비평적 의식, 그리고 정통문학에 비교되는 비정통성이 소설이라는 장르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해 넌 : 그렇지요, 그러나 훌륭한, 우수한 소설에서 나타나는 특성이지요. 일반적인, 즉 평균적인 수준의 소설들, 예를 들자면 재자가인 소설 등에서는 이런 점을 발견하기는 어렵지요.

송진영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애착이 가는 중국소설을 꼽으라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해 넌 : 나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유형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때로는 이 유형의, 때로는 저 유형의 소설을 보기 좋아하죠. 그래서 특정한 한 유형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비평적인 소설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한 유형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로맨스, 즉 사정소설(寫情小說)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일반적으로 이 소설들이 중국인들에 의해, 또는 중국사회에서 상당히 홀시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이 소설들이 무엇이 무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가 실생활에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점들을 희곡과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국인들의 이에 대한 태도는 아주 재미있어요. 비평적인 학자들도 로맨스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두 단편소설을 번역했습니다. 모두 사정소설(寫情小說)에 속하는 것으로 청말에 나온 것이지요. 하나는 『금해석(禽海石)』이고, 다른 하나는 우졘런(吳趼人)의 『한해(恨海)』인데 『한해』는 이미 번역해서 출판했습니다. 이 두 소설은 1905년과 1906년에 씌어졌는데, 재미있는 것은 두 소설이 서로 관련이 되어 있으면서도 상반된다는 점입니다. 『한해』는 『금해석』에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금해석』은 자유결혼을 주장하는 리버럴한 소설인 반면에, 『한해』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소설입니다. 매우 보수적이에요. 『한해』는 매우 훌륭한 소설이고, 『금해석』 역시 중요한 견해를 가지고 있어요. 당시에는 많은 견책소설이 창작되었고, 학자들은 이 견책소설을 중시하고 있지요, 그러나 당시에 나왔던 이러한 사정소설도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 초기의 사정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청대의 사정소설, 즉 재자가인(才子佳人) 소설이 재미없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청말에 나온 것들이에요. 우졘런의 로맨스, 『한해』와 같은 것이지요. 사실 그의 로맨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로맨스는 아닌데 왜냐하면 그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시다시피 『금병매』에서 화본 단편소설로 또 리위(李漁)로, 청말의 소설들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주 다양한 소설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이것들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송진영 : 그럼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박사논문의 일부인 것으로 알려진 『금병매탐원(金甁梅探源)』을 보면 상당한 일차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서방에서 이런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하셨나요?

해 넌 : 당시 내가 금병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때, 이 연구에 대한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단지 흥미를 느끼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도교수가 『금병매』를 연구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고 나는 이에 시도해 보겠다고 했지요. 당시 연구를 시작하면서 『금병매』 연구에 두 가지 주요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하나는 소설이 한 작가에 의해 씌어진 것인지 아닌지, 또 다른 문제는 작품의 근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이에 관한 사실들을 몇 가지 바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957년에서 58년 일년 간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북경과 일본의 도서관에서 많은 자료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런던에도 런던대학도서관, 대영박물관 등에 상당한 자료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지요. 특별히 명대 작가들의 자료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베이징의 베이징도서관, 베이징대학도서관, 그리고 수도(首都)도서관 이 세 곳에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 많은 자료를 열람했습니다. 그리고 북경의 학자들이 나를 도와 자료를 발견하였지요. 그들은 매우 우호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펑위안쥔(馮沅君)이라는 중국의 여류학자는 『금병매』 연구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별히 『금병매』에 보이는 많은 다른 가요집에서 인용된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가요집을 그 때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제59회의 초두에 보면 갑자기 산둥에서 양저우로 주제의 포커스가 아무런 이유가 없이 건너뛰어요. 내가 보기에는 아주 이상했어요. 그런데 명대 공안소설인 하이루이공안소설(海瑞公案小說)을 보면서 이 이야기가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저우 이야기인데 아주 자연스럽게 양저우로 이야기가 옮겨가지요.

송진영 : 사실 교수님의 『금병매』 연구는 중국소설연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도 박사논문 작성 시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당시 중국대륙과 타이완에서조차 본격적인 『금병매』 연구가 시작되지 않고 있었는데요.

해 넌 : 그렇습니다. 당시 『금병매』를 연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지요. 1960년대 타이완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그곳에 『금병매』 연구자는 없었고, 대륙에도 소수의 연구자가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그렇게 나쁜 환경은 아니었어요. 대륙에서는 좋은 판본(『금병매사화(金甁梅詞話)』를 지칭함)을 가지고 있었고, 또 1957년 간행되기도 했으니까요. 그것은 1932년 혹은 33년의 것을 다시 영인한 것이지요. 그러나 인민문학출판사에서 간행하기는 했지만 살 수가 없었어요. 1000부 한정판이었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 살 수가 있었지요.

송진영 : 80년대에 베이징대학에서 『금병매사화』를 한정판으로 영인한 적이 있었는데 상황은 당시와 동일했습니다. 교수 이상의 신분만이 살 수가 있었지요.

해 넌 : 내가 중국에 있을 때 나도 사화본의 영인본을 갖고 싶었어요. 나는 대영박물관의 판본을 이용하고 있었지요. 그때 누군가가 당시 문화부부장이었던 정전둬(鄭振鐸)와의 면담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는 『금병매』에 관한 논문도 쓴 적이 있지요. 나는 그에게 당신의 판본을 사고 싶다고, 그래서 당신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말하였고, 그는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 판본을 가질 수가 있었죠. 그러나 당시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사겠다고는 할 수 없었고 나의 도서관, 즉 런던에 있는 도서관을 대신해 사겠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판본은 지금 런던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요. 당시 중국에서는 푸시화(傅惜華), 우샤오린(吳小林) 선생 등이 많은 금병매의 판본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나와사끼 기꾸야, 사와다, 토리 등이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많은 연구를 진행한 상태는 아니었어요.

송진영 :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후 80년대 연구자들이 선생님의 논문을 인용해 『금병매』가 집체창작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중국의 쉬숴팡(徐朔方)은 해넌 교수가 자신의 연구가 집체창작을 증명하는 증거로 이용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하는데 이용하였는데, 이 집체창작설에 관한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한지요?

해 넌 : 나는 이를 믿지 않습니다. 쉬교수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활발한 성격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렇게 총명하고 매우 박학한 사람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와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금병매』가 서로 다른 많은 요소들, 서로 다른 쏘스로 이루어졌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많은 작가들에 의해 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금병매』는 한 작가가 여기저기 서로 다른 텍스트에서 조금씩 인용하고 베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너무 많은 책을 보았기에, 그 인용에 있어 착오가 있기도 하고 일관성을 잃기도 했지요. 너무 많이 초록하였기에, 정확하게 기억을 하지 못한 것이지요. 한 장은 『수호전』의 어떤 판본에서 가져오고, 노래는 어떤 가요집에서 베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작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는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진 고급문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한 분량의 책을 읽은 문인으로 추측됩니다. 쉬교수는 또한 이와 달리 설서인(說書人)들에 의해 창작되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금병매』는 성을 다루고 있는, 매우 사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입니다. 이는 구전문학이 아니라 기록된 문학입니다. 사적으로 읽혀지는 작품이지요. 『여의군전(如意君傳)』의 일부분이 『금병매』에 사용되고 있음을 내가 발견했는데, 『금병매』의 작가는 여기서 그러한 묘사를 위한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여의군전』은 기록된 즉 읽기 위한 작품이구요. 결국 쉬교수와의 토론에서 우리는 매우 우호적인 불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송진영 : 서방에서 소설연구 혹은 중국문학연구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 넌 : 문화가 다른 점이라고 할까요. 이 점에서 나는 한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려움은 언어입니다. 우리는 중국어를 일찍이 배우지 않았습니다. 늦게서야 배우기 시작했죠. 지금은 젊은 학자들의 경우, 때로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야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보다 일찍이 배우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언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나요?

송진영 : 한자인 경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배우기 시작했고, 중국어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해 넌 나의 경우 뉴질랜드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후에, 다시 영국에서 학부를 다시 다닐 때, 즉 스물 세 살에야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늦게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나는 열 두세 살 혹은 십대에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합니다. 단지 이런 언어에 관한 문제뿐 아니라 많은 개념 자체가 서로 다르지요. 한국이나 일본은 문화적 배경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지요. 불교, 유교, 도교 등 비록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더라도 알고는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요. 우리는 무엇이든 처음부터 배워야 하거든요.

송진영 :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주 당연히 인식되어 문제의식이 생기지 않는 문제를 서구 학자는 매우 진지하게 또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기 때문에 때로는 매우 신선한 문제의식으로 창조적인 연구성과를 내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해 넌 : 그건 사실입니다. 이것은 조그마한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학자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아니지만, 서구학자들이 신선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아마 우리가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고요.

송진영 : 중국고전소설을 연구할 때 가장 중시해야 되는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평상시 학생들에게 어떤 점을 가장 강조하십니까?

해 넌 : 중국소설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중국 시가, 산문과 중국역사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의 모든 학생들은 스티븐 오웬교수에게서 중국시가를 배우고 그의 학생들도 내게서 배우지요. 나와 오웬교수, 그리고 리어우판(李歐梵) 교수가 공동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지요. 가장 심각한 실수가 바로 중국소설만 공부하는 것입니다. 중국소설은 중국문학 중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중국문학의 더욱 더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가거든요. 그래서 시가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학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어떤 특정한 분야와 방식으로 공부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학생들 스스로 연구하고 싶은 대상과 방법을 찾게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방법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비평이론에 입각해 연구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고증적인 연구를 하지요. 나는 이 두 가지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진영 : 선생님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리고 저도 중국소설을 공부하면서 중국시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 넌 : 사실 이 점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송진영 : 60년대의 『금병매연구』에 이어 백화단편소설에 관한 저서를 70, 80년대에 이어서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단편소설(中國短篇小說)』과 『중국화본소설(中國話本小說)』이고, 그 뒤 리위(李漁)에 관한 저서를 발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관심대상과 그 연구를 이들 저서를 통해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 잠시 소개해주시겠습니까?

해 넌 : 『금병매연구』 이후로, (이 연구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나는 출판할 생각입니다) 나는 중국 화본소설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1973년에 출판한 『중국단편소설』이 바로 그것인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매우 기술적인 작업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나는 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것이 조기화본(早期話本)이고 어떤 것이 중기화본(中期話本)이고 어떤 것이 말기화본(末期話本)인지를 구별하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매우 엉성한 연구라고 할 수 있지만,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유용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주로 작품의 연대와 작자에 관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논쟁이 일기도 하는 작업이고, 어떤 것은 옳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유용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 작품의 특징과 인물의 특징이 서로 다른 게 나타나는데, 이는 서로 다른 작가의 서로 다른 스타일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송말에서 청대에 이르는 화본소설에 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본은 모든 시기에 걸친 작품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화본소설사를 쓸 수가 있지요. 이에 반해서 중국소설사 기술에 필요한 모든 소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요. 만력(萬歷) 이전에 나온 소설은 아주 적어요. 『수호전』, 『삼국지연의』, 『평요전(平妖傳)』 등이 있을 뿐이지요. 나는 바로 16, 17세기에 나온 화본소설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첫 번째 책이 기본적인 고증작업이었다면, 두 번째 책인 『중국화본소설』은 이를 소설사적으로 본 것이지요. 이 둘은 서로 연결된 작업입니다만, 후자가 좀더 집중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 다시 이를 쓰게 된다면 좀더 길게 쓰고 싶습니다. 화본소설은 송대, 원대, 명대에 걸쳐 이루어지고 학자들은 이것을 화본(話本)과 의화본(擬話本)으로 나누곤 하지요. 나는 특별히 삼언(三言)을 연구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아마 상당수의 중국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성세항언(醒世恒言)』에는 두 명의 다른 작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철저히 내 의견입니다. 그 하나는 펑멍룽(馮夢龍)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데, 랑셴(浪仙)이라고 기록되어 있죠, 그의 25편의 작품은 삼언의 펑멍룽의 다른 단편소설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중국화본소설』에서 이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송진영 : 많은 학자들은 펑멍룽이 당시 통행되던 화본소설을 수집하면서 어떤 작품은 그대로 기록하고 어떤 작품은 상당부분 개작했으며, 또한 그 개작의 정도는 서로 다르다고 간주하는데, 어떤 측면에서 두 작가가 존재한다고 판단하게 되셨나요?

해 넌 : 펑멍룽은 확실히 당시 오래된 이야기를 수집하면서 개작을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대부분 그에 의해 다시 씌어졌다고 봐야죠. 삼언 중에는 조기작품, 중간시기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명말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에서 펑멍룽과 구별되는 다른 스타일에 의해 씌어진 작품이 등장한 것이죠. 나는 이것을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스타일을 통해서만 판단할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화부분이 서로 다릅니다. 마치 『홍루몽』과 『유림외사』의 대화가 다르듯이 말입니다.

송진영 : 이 저작 등을 통해 선생님의 관심사가 백화단편소설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중국소설의 중요한 부분인 화본소설에 대한 소설사적 저술을 하신 셈인데 이를 보다 더 확충시켜 중국소설사를 저술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해 넌 :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송진영 : 그럼 세 번째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시겠습니까?

해 넌 : 『중국백화소설』의 한 장절에서 이미 리위(李漁)에 관해 언급을 했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위는 중국소설사에 언급되는 소설가 중에서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소설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후대인에게 충분한 역사적 자료를 남기고 있는 작가이지요. 다른 작가들, 차오쉐친(曹雪芹)이나 펑멍룽만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요. 그 개인에 대해서 충분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리위는 다르지요. 일가언(一家言)은 그에 대한 완벽한 자료입니다. 열 부의 희곡․『한정우기(閑情偶寄)』․산문․서신․시 그리고 소설을 통해서 그를 연구할 수 있지요. 이것이 바로 내가 리위를 택한 이유입니다. 그는 매우 걸출한 작가이고 매우 재미있는 인물이지요.

송진영 : 그는 작가이기도 했지만 당시 강남의 영향력 있는 출판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대부분 직접 출간했으며, 많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또한 첩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소설을 텍스트로 사용했다는 연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해 넌 :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른 출판사에 주지 않고 『무성희(無聲戱)』 등의 작품을 스스로 출판했지요.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출판했는데, 사실 그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죠. 펑멍룽도 타인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했어요. 내가 리위를 연구하면서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가 극에 직접 출연했고 극단을 꾸린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첩들을 데리고 다녔다고들 말하곤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그에게 세 명의 첩이 있었고 나이 어린 두 명의 첩에게 시를 비롯해 글을 가르친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들을 데리고 지방공연을 다닌 것은 아닙니다. 쑤저우 등 가까운 지방 몇 곳을 두 명의 첩과 함께 여행한 적은 있지만, 대부분은 그는 친구들과 함께 지방을 돌아다니며 극을 공연했습니다.

송진영 : 연구와 더불어 선생님께서 상당한 분량의 중국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로 어떤 소설들을 번역하셨는지요?

해 넌 : 세 편의 리위 소설을 번역해 출판했습니다. 『무성희(無聲戱)』, 『육포단(肉蒲團)』, 그리고 『십이루(十二樓)』가 그것이지요. 세 편의 연구서를 집필할 때 사실 작품의 번역이 필요해 조금씩 했지요. 그러다가 연구서의 집필을 끝내고 나서, 리위 번역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번역이 먼저 되어 있지 않으면, 그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기가 어려워요. 『육포단』과 『십이루』는 대학출판사가 아닌 상업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발렌타인출판사에서 내는 총서의 일종으로 출간되었는데 상당한 발행량을 가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는 중국문학에 관심 있는 많은 독자들이 읽기를 바랬습니다.

송진영 : 번역시 독서대상을 누구로 설정하십니까? 즉 중국문학에 어느 정도 소양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시는지, 아니면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번역하는지요?

해 넌 : 이건 어려운 문제인데요. 조금 모호하기도 하고요. 일반 독자의 흥미를 만족시키는데 중점을 두게 되면 학문적인 독자들의 요구는 만족시키기 어렵게 되지요. 그러나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충분히 작품을 즐기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나는 이 두 부류를 모두 만족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주를 다는 문제를 들겠습니다. 발렌타인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때 나는 독자들이 주를 보지 않을까봐 미주가 아니라 각주를 달았지요. 그러나 출판사에서 좋아하질 않더군요. 결국 주를 100개로 제한하고 각주에서 미주로 바꾸었습니다. 이는 일반 독자를 고려한 것이지요. 학문적인 독자들을 만족시키면서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재미있게 독서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우리가 좀 더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송진영 : 대학출판사에서 간행한 『무성희』의 경우에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나요?

해 넌 : 『무성희』는 홍콩대학에서 간행했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내게 『무성희』에 관한 소개의 글을 요청했지만 나는 그것은 다른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그저 번역에 충실할 뿐이라고 거절했습니다. 발렌타인에서 낸 두 권의 책은 출판사의 경영권이 타사로 이전되면서 그 총서의 발간계획이 취소되면서 재간행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소설을 하와이대학의 출판사에서 재간행할 예정입니다. 극소량만 하드카버로 발행하고 나머지는 페이퍼백으로 만들어 가격을 낮추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한 페이지에 일 달러씩 발렌타인으로부터 판권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하와이대학에서 재간행할 생각입니다. 사실 『십이루』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번역서입니다.

송진영 : 서구에 중국소설의 독자가 얼마나 있나요? 중국문학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요?

해 넌 : 중국현대소설의 경우는 조금 독자가 있지만, 사실 중국고전소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일본현대문학도 상당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고전은 역시 마찬가지고요. 중국고전소설의 경우 대학출판사가 아닌 경우에는 출판이 어려운 상황이지요.

송진영 : 함축적인 문자인 한자로 씌어진 소설을 표음문자로 번역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그 고유의 의미가 너무 풀어져서 함축적인 맛을 잃어버리기가 쉬움을 한글로 번역할 때 느끼곤 합니다. 영어로 중국문학, 또는 소설을 번역할 때 이러한 문제를 비롯한 여러 어려움이 있으셨을 텐데 어떻게 해결하셨는지요?

해 넌 : 사실 이 문제는 소설에서보다는 시에서 더 심각하지요.

송진영 : 그렇지요. 소설에 등장하는 상당량의 전고(典故)와 시, 사 등은 소설번역의 어려움을 가증시켰을 텐데요.

해 넌 : 그렇습니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전고의 번역은 상당히 어려워요. 또 이와 더불어 또 다른 어려움은 인물의 이름을 번역하는데서 나타납니다. 번역과 음역의 방법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장편소설의 경우 번역한 이름이 너무 길면, 영어권의 독자들은 기억하기가 매우 어렵게 됩니다. 한편 음역의 경우는 그 뜻을 알기가 어렵구요. 그리고 번역의 주된 문제는 올바른 언어선택, 서술자의 목소리(the voice of narrator) 등에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리위는 항상 동일한 말(words)과 동일한 톤(tone)을 사용했는데 번역시 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송진영 : 번역하신 책들을 보면 제목을 모두 번역하셨는데요?

해 넌 : 그렇습니다. 『한해』를 The Sea of Regret로, 『십이루』는 A Tower for the Summer Heat로 처리했지요. 이는 일반 독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지요.

송진영 : 실제로 인명은 어떻게 처리하시나요?

해 넌 : 주인공들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음역합니다. 예를 들자면 바오위(寶玉)과 다이위(黛玉)는 Baoyu과 Daiyu로 그대로 옮기죠. 그러나 소인물들의 이름은 번역합니다. 시런(襲人)은 향수라는 뜻을 지닌 Aroma로, 칭원(晴雯)은 Skybright,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송진영 :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해 넌 : 저도 이것이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번역시 일반 독자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송진영 : 중국소설연구와 번역 외에 또 관심을 가지고 계시거나 좋아하는 중국문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해 넌 : 나의 모든 저서는 고전소설에 관한 것이지만 사실은 루쉰(魯迅)에 관한 글도 있습니다. 그리고 라오서(老舍)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진영 : 최근 미국에서는 비교문학연구가 상당히 성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동아시아학과 내에서는 일본문학과 서구문학의 비교가 활발한 듯 합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해 넌 : 내게는 비교문학과의 학생도 있고 동아시아학과의 학생도 있습니다. 동아시아학과 학생이 보다 더 많은 편이기는 하지요. 나 역시 비교문학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다. 최근 나는 청말의 소설을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거의 끝나갑니다. 그러나 비교문학 전공자들은 때로 성급하게 연구를 진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문학이론 일반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중국문학과 중국 역사, 철학 등에 대한 지식을 좀더 쌓고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비교문학과의 학생들이 중국과 관련된 코스들을 이수할 것을 권장하고 우리 과의 학생들에게도 문학이론과 영국문학 등에 관한 코스를 들을 것을 요구합니다. 내가 이전에 한 루쉰에 관한 작업은 비교문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시 유럽의 작가들이 어떻게 루쉰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해 논했습니다.

송진영 :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야는 무엇입니까?

해 넌 : 다음번 저서에 관해 특별한 계획을 세운 바는 없지만 원앙호접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뎨셴(陳蝶仙)은 원앙호접파 작가들 가운데 상당히 괜찮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황금수(黃金祟)』를 보고 있습니다. 그의 베스트셀러소설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은 문언으로 씌어져 있고 자전적 소설입니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그의 실제 생각과 생활에 상당히 접근해 있습니다. 이를 번역하고 이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데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또한 『풍월몽(風月夢)』에 관해서도 연구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야말로 본격적으로 도시를 묘사하고 있는 중국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양저우(揚州)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한 도시를 완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금병매』와 『홍루몽』도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이처럼 철저히 한 도시를 묘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송진영 : 학교에서는 주로 어떤 과목을 가르치시는지요? 이번 학기에 중국소설사와 『홍루몽』을 강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밖에 어떤 과목을 가르치셨는지요?

해 넌 : 아시다시피 우리 과에는 겨우 몇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거의 모든 분야를 가르치지요. 나도 하바드에서는 아니지만 시도 가르쳤었고, 하바드에서는 주로 산문, 소설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최근에 상웨이(商偉) 교수가 부임하기 전까지는 고문도 가르쳤습니다.

송진영 : 미국에서는 지역학 중심으로 동아시아에 관한 모든 것이 하나의 학과에서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어와 문학뿐 아니라 중국역사와 철학까지 포괄하고, 한국, 일본, 베트남이 또한 이에 포함되고 있어 매우 방대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요.

해 넌 : 중국, 한국, 일본학 등 세 주 분야는 역사, 철학, 종교와 문학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언어학, 베트남어, 몽골어, 티벳어(현대)를 포함합니다. 한국어문학 담당교수가 최근에 임명되었는데 아직 부임하지는 않았고 아마 다음 학기부터 과목을 담당할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의 이런 체계가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송진영 : 이 체계의 장점이라면 보다 폭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너무 방대해서 그 전공분야를 심화시키기 좀 어렵지는 않나요? 동양의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 철학이 나뉘어 있고, 또 중국이면 중국, 한국이면 한국으로 그 과가 세분되어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말입니다.

해 넌 : 글쎄요. 우리는 동아시아역사학과와 비교문학과 등과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이 입학하면 나와 다른 교수가 함께 이 학생이 무엇을 전공하려는지에 따라 그 학생이 무슨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지 디자인합니다. 그리고 학생이 전공을 심화하도록 유도하고 있지요.

송진영 : 혹시 한국에는 와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한국문학이나 한국소설을 접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해 넌 : 지난해 옌칭 인스티튜트(Yenching Institute)의 디렉터로서 한국을 잠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몇 개 대학을 방문했었지요. 사실 한국문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구운몽(九雲夢)』 정도만을 알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것은 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과에서 아마 한국문학에 관해 한 두 개의 박사논문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제가 지도교수의 한 사람으로 함께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한국어는 모르지만 한국소설 가운데 중국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되었습니다. ‘판소리’에 관한 논문이었는데, 판소리에 등장하는 많은 전고를 체크한 적이 있습니다.

송진영 :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과 중국문학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해 주십시오.

해 넌 : 한국에 많은 중국문학전공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보다도 많은 연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듣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한국 내 연구자로는 내 학생이었던 서경호 교수와 방문학자로 옌칭에 다녀갔던 몇 명의 학자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한국의 중국문학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앞으로 서로 많은 인적인 그리고 자료의 교류가 있기를 원합니다. 송선생이 하바드에 있으면서 이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송진영 : 고맙습니다. 양자의 이해를 증진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틀간에 걸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해 넌 : 저도 즐거웠습니다.

[부록] 해넌(韓南)교수의 저작과 번역서 목록

Books:
1. Chinese Short Story, Harvard University Press, 1973.
2. Chinese Vernacular Story, Harvard University Press, 1981.
3. The Invention of Li Yu,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
Translations:
1. The Carnal Prayer Mat(Rouputuan), Li Yu, Ballantine Books, 1990.
2. Silent Opera (Wushengxi), Hong Kong University Press, 1990.
3. A Tower for the Summer Heat, Li Yu, Ballatine Books, 1992.
4. The Sea of Regret : two turn of the century chinese romantic novels,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5.

Articles:
1. The Text of the ChinP’ingMei, Asia Major, 1962.
2. The Source of ChinP’ingMei, Asia Major, 1963.
3. Early Chinese Short Story: A Critical Theory in Outline,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No. 27, 1967.
4. The Authorship of some Ku-chin hsiao-shuo Stories, HJAS No. 29, 1969.
5. Sung and Yuan Vernacular Fiction: A Critique of Modern Methods of Dating, HJAS No. 30, 1970.
6. The Composition of the P’ing yao chuan, HJAS No. 31, 1971.
7. The Making of Pearl-sewn Shirt and the Courtesan’s Jewel Box, HJAS No.33, 1973.
8. The Technique of Lu Hsun’s Fiction, HJAS No. 34.
9. The Fiction of Moral Duty: The Vernacular Story in the 1640s, in Robert Hegel and Richard Hessney, eds., Expressions of Self in Chinese Literatur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5.
10. Judge Bao’s Hundred Cases Reconstructed, HJAS No. 40.

漢譯本;
1. 『韓南中國古典小說論集』, 台北;聯經出版事業公司, 1979.
2. 『中國白話小說史』, 尹慧民譯, 杭州;浙江古籍出版社, 1989.
3. 『魯迅小說的技巧』{國外魯迅硏究論集}, 樂黛雲編, 北京大學, 1981.
4. 『百家公案考』{國外學者看中國文學}, 侯健編, 臺北, 1982.
5. “論肉蒲團的原刊本”, 『書目季刊』 28. 2, 1994.

[엮은이 주] 이 글은 『중국소설연구회보』 제28호(1996년 11월)에 실렸으며, 엮은이의 주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