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를 지나 사흘째 되는 날에 冬至後三日/송宋 장뢰張耒
水國過冬至 물의 고장이 동지를 지나니
風光春已生 풍광 속에 봄빛이 생겨나네
梅如相見喜 매화는 만나서 기쁜 듯하고
雁有欲歸聲 기러기는 돌아가느라 우네
老去書全懶 늙으니 책은 하나도 안 보고
閑中酒愈傾 한가로이 술은 더 먹게 되네
窮通付吾道 운명은 유학의 도에 맡기고
不復問君平 다시 점장이에게 묻지 않네
장뢰(張耒, 1054 ~ 1114)는 북송의 문인으로 소식의 제자 중에 뛰어난 사람 4인을 말하는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 중의 한 사람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널리 알려졌다고 보기 어렵지만 장뢰는 당시 문한과 관련이 있는 벼슬을 지내고 시도 쓰고 사도 써서 상당한 지명도가 있는 문인이다.
이 시는 같은 제목에 3편의 시가 있는데 그중 두 번째 시이다. 장뢰는 1097년과 1099년 황주(黃州)로 2번 좌천을 당한 적이 있는데 이 시는 그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황주는 강과 호수가 많아 수향(水鄕)이나 수국(水國)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매화가 날 보고 기뻐하는 것 같다는 말은 매화꽃이 곧 필 것 같다는 말이며 기러기가 돌아가려고 하는 소리를 낸다는 것은 가을에 남으로 왔던 기러기들이 다시 북으로 돌아가느라 하늘에서 운다는 말이니, 이 말 역시 봄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느낀다는 말이다.
늙어서 독서를 하는 데는 온통 게을러지고 한가로운 가운데 술을 마시는 것은 자꾸 늘어난다는 말은 현실에 대한 의지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이 이렇게 지내는 것을 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는 의미가 크다. 자신을 추스르려는 의지가 있기에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는 것이며, 새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한 해의 시작인 봄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궁통(窮通)은 운명이 막히고 트이는 것을 말하고 오도(吾道)는 공자가 ‘우리의 도는 일관되어 있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유학의 가르침을 말한다. 그럼 궁통을 오도에 맡긴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논어》에도 보면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하면 그것을 한스럽게 여기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가, 의를 버리고 이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는가, 임금에게 여러 번 간언해도 듣지 않으면 그만둔다는 등의 가르침이 나오듯이 유학 경전에는 대체로 일관된 처세 철학이 있다.
오도에 맡긴다는 말은 오도에 의지하고 따른다는 말로 옛 성현들이 말하고 걸어갔던 삶의 방식을 따라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일이 안 풀리고 누구에게 모함을 받는다 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해치거나 반대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사악한 방법으로 일을 꾸민다든가 반란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옛 성현이 걸어갔던 유학의 도에 따라 살면 되는 것이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이 사람의 약한 마음을 노리는 사이비 역술가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상의한단 말인가?
군평(君平)은 한나라 때의 유명한 점술가 엄준(嚴遵)의 자이다. 그는 성도(成都)의 시장에서 점을 치는 것으로 생업을 삼은 은자인데 하루에 그날 살 만큼만 벌면 바로 문을 닫고 들어앉아서 《노자》를 읽거나 저술 활동을 하였는데 장건(張騫)이 황화를 거슬러 올라가 직녀를 만나 받아 온 돌을 정확히 알아맞혀 유명해졌다. 여기서는 이런 실존한 은자 군평을 말했다기보다는 이미 보통명사화되어 버린 역술가를 말한다. 당시에도 동지가 지나고 세모에는 한 해의 운명을 점치는 풍습이 유행한 것을 짐작하게 한다.
장뢰의 이런 의연한 마음가짐 때문이지 휘종이 즉위하여 태상소경(太常少卿)으로 다시 부름을 받는다. 오늘날도 진정한 종교인들을 만나면 그 풍도가 확실히 달라 절로 경복(敬服)하는 마음이 들듯이 예전에 유학자들 중에는 성현의 가르침을 내면화하여 상당히 거룩한 위의가 있고 풍도가 고매한 사람들이 많았다. 행동한 것을 보면 마치 오늘날의 종교인과 같다. 내가 지금 말하는 종교인은 종교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종교의 본지를 내면화하여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전광훈이나 이런 무리들을 종교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시는 동지를 지나 봄으로 나아가는 풍물의 변화를 보면서 삶의 태도를 의연하게 견지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 차분히 한 해를 회고하는 요즈음에 음미해 볼 만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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