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포선고는 변신하여 유모가 되고
당새아는 생일에 전생의 인연을 깨닫다
鮑仙姑化身作乳母, 唐賽兒誕日悟前因
당기의 아내 황씨는 출산 후 닷새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친척을 접대하는 바람에 한기를 맞아서 두통과 발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의사의 치료도 약도 아무 효과가 없어서 병세가 나날이 위중해졌다. 당기는 사람을 통해 유모를 구하는 한편 빈주(濱州)에 편지를 보내 명의를 초빙했다. 의사는 산후에 한기를 맞아서 나쁜 열기가 뭉치고 어혈(瘀血)이 막혀서 땀으로도 빼기 어렵다고 했다. 다행히 맥에 원신(元神)이 있으니 일단 두 가지를 풀고 조화를 맞추는 약을 쓰면서 화후를 지켜보자고 했다.
당시 당새아는 사나흘 동안 젖을 먹지 못했는데도 전혀 울지 않고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노매가 쌀밥을 조금 먹여 보려 했지만 그냥 삼켜 버렸다. 포대현은 작은 고을이니 어디서 괜찮은 유모를 구할 수 있었겠는가? 두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너무 지저분해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 부인의 병세는 더욱 심해져서 가슴이 답답하게 막히고 점차 기침까지 하기 시작했다. 빈주에서 온 의사는 진즉 떠나 버린 상태였다. 당기는 조급한 마음에 그저 조상들의 영령이 보우해 주기만을 기원할 따름이었다. 황 부인의 동생과 그 아내가 문안하러 왔다가 살펴보더니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당기에게 뒷일을 준비하라고 권했다. 그때 대문을 지키던 늙은 하인이 들어와 보고했다.
“제녕주에서 왔다는 어느 아주머니가 떠돌다가 여기까지 왔다는데, 돈을 따지지 않고 유모일을 하겠답니다. 보기에는 그래도 상당히 깔끔하더군요.”
당기가 말했다.
“나는 마음이 어수선하니 처남이 가서 좀 봐 주시게.”
“이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 들어오라고 해서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늙은 하인이 그 아주머니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모습은 이러했다.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몸매에
오리 머리 같은 초록빛의 얇은 천으로 만든 헐렁한 적삼 걸쳤고
반쯤 희끗한 머리카락은
부처님 머리처럼 푸르고 매끈한 능라로 만든 작은 머리띠를 둘렀다.
얼굴엔 이중턱이 있고
코는 반듯하다.
두 눈동자는 밝게 빛나고
봄날 별빛 같은 광채가 난다.
두 귀는 바퀴가 큼직하며
새로 뜨는 달처럼 새하얗게 굽었다.
골상(骨相)은 단정하여
규방의 아름다운 모범처럼 온화하고
자태는 아름답고 소찰하여
숲에 이는 맑은 바람처럼 표연하다.
허리에는 솔기도 없는 하얀 비단 치마를 묶었고
발에는 능라는 댄 황갈색 신을 신었다.
모두들 조금 나이가 있는 여자라고 여길 뿐
진짜 불로장생하는 선녀인 줄 누가 알까?
身材不肥不瘦, 穿一頂鴨頭綠的細布寬衫.
頭髮半黑半白, 裹一片佛頭靑的滑綾小帕.
面有重颐, 鼻如懸膽.
雙眸熠熠, 光華動若春星.
兩耳耽耽, 潔白彎如新月.
骨相端嚴, 雍雍乎閨中懿範.
神姿秀逸, 飄飄然林下淸風.
腰繫無縫素羅裙, 脚着有綾黃葛履.
都猜道有似半老的蕭娘, 誰知是眞個長生的仙姥.
당기는 이 아낙이 비록 베옷을 입었지만 용모나 행동거지가 비범한 것을 보자 약간 당황스러웠다. 며칠 동안 심사가 복잡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노매를 불러서 그 아낙을 황 부인이 누워 있는 침대로 안내하게 하고, 자신도 뒤따라 들어갔다. 황 부인은 병으로 의식이 몽롱했으나 마음은 명료해서, 눈을 뜨고 잠깐 살펴보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기의 처남댁이 곧 당새아를 안아서 유모에게 건네주었다. 유모가 받아 안고 살펴보더니 감탄했다.
“어머, 멋지구나!”
그러자 갑자기 헤헤 웃기 시작하더니 마치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이 옹알거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당기는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다. 처남댁이 다시 안자 새아는 고개를 숙인 채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매가 말했다.
“낯을 가리키네요.”
그러면서 박수를 치면서 얼러 보려 했지만, 당새아는 힐끗 보더니 역시 외면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황 부인이 말했다.
“아가, 내가 네 어미 노릇을 할 복이 없는 모양이구나.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아기의 친엄마 같은 사람이 되겠구나!”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비 오듯이 눈물을 흘리더니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당기가 다급히 깨우자 부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보, 유모한테 잘해 주셔요!”
당기는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며 유모에게 당새아를 안고 서쪽 방에 가서 쉬게 하고, 처남과 처남댁은 집에 머물며 병간호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황 부인의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어 기운이 거꾸로 치밀어 오르니 노매가 황 부인을 품에 안고 가슴을 문질렀다. 당기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밤중까지 지키고 있었는데, 황 부인이 소리쳤다.
“새아야, 이 어미는 아들을 낳을 거다!”
그러더니 다시 당기에게 말했다.
“노매는 아주 좋은 사람이니 당신이 거두셔요. 그래서 다시 아들을 하나 낳으면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겠지요. 저는 이만 갈게요!”
그리고 곧 눈을 감고 운명하니 당기는 대성통곡하다가 시신을 밖으로 옮겨서 본채의 대청에 안치하고 온 집안이 애도했다. 황 부인이 죽었다는 것을 안 유모는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나자 당새아를 안고 대청으로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당새아가 앙앙 울어대자 당기도 애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아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야,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도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구나?”
아이가 더욱 울음을 멈추지 않자 유모가 달랬다.
“그만 울어라! 아가야, 나중에 엄마한테 높은 봉호(封號)를 드리면 되잖아?”
그제야 방새아가 울음을 그쳤다. 그 모습을 보고 들은 집안사람들은 다들 속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기가 유모에게 분부했다.
“친척 가운데 여자 분들이 조문을 와서 아이를 보려 할 테니, 안고 좀 재워 두시오.”
“친척들이 오실 때 재우면 돼요.”
서둘러 수의와 관을 마련하여 염을 하고 승려를 모셔다가 경전을 외며 예불을 올려 생전의 죄를 참회하는 의식을 거행하니 조문객들이 모두 왔다. 그리고 장장 칠칠 사십구일 동안 애도했다.
당기는 아내가 죽은 그날 밤부터 대청에서 잠을 잤고, 나중에는 대청 옆의 서재로 침대를 옮기고 뒤쪽의 네다섯 칸쯤 되는 안채를 유모에게 내어 주면서 하녀들에게 시중을 들게 했다. 상을 치르는 동안 그는 너무 애통해 하다가 며칠 동안 병치레를 했기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유모가 떠올랐는데 참으로 이상했다. 유모가 왔을 때는 아내의 병세가 위중해서 내력을 자세히 물어볼 틈이 없었는지라 곧 하녀에게 유모를 데리고 나오라고 분부했다. 당기가 자리를 권하고 나서 물었다.
“아이가 요즘 젖을 잘 먹습니까?”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서 그러는지 별로 안 먹는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새아는 태어난 뒤로 줄곧 울지도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소이다. 그런데 유모가 오고 나자 울고 웃을 줄도 알 뿐만 아니라 뭔가 아는 것 같기도 하니, 내 생각엔 필시 무슨 까닭이 있는 것 같소이다. 게다가 유모의 성씨랄지 출신지도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몸가짐이나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대갓집에 계셨던 것 같아서 유모 노릇을 할 분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저희 집을 찾아오셨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소이다. 이제 내 아이를 전적으로 유모에게 맡기고 있으니, 그런 것쯤은 알려주셔도 괜찮지 않겠소이까?”
“천하의 모든 일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수가 있는 법이지요. 저는 성이 포씨(鮑氏)인데, 선친(先親)께서는 연주부(兗州府)에서 태수(太守)를 지내셨습니다. 재임 시절에 선친께서는 늘 제녕 땅에 신동이 있는데 열두 살에 수재(秀才)가 되어 학교에 들어갔으니 나중에 틀림없이 크게 출세할 거라면서 저를 그 사람에게 시집보냈지요. 그리고 임기가 차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저는 남편을 따라 제녕으로 갔는데, 뜻밖에 남편은 재능은 뛰어나지만 팔자가 사나워서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하고 울분이 쌓여 병이 되는 사람에 그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남편이 죽고 사흘 후에 저는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출산하자마자 바로 죽어 버렸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소이까?”
“올해 8월 15일 유시(酉時)였습니다. 아들도 딸도 없는 저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비구니라도 될까 했는데, 갑자기 꿈에 송생낭낭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네가 낳은 아이는 원래 계집애였어야 하는데 실수로 사내아이의 태에 들어갔기에 내가 다시 포대현의 진짜 효렴의 집으로 보냈느니라. 그러니 여기서 죽은 네 아이는 그곳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지.’
그래서 이곳에 와서 진씨 성을 가진 효렴이 있는지 수소문했지만 다들 그런 사람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팔자를 점치는 악 선생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그 진짜 효렴은 성이 진씨가 아니라 당씨라오. 그 집에서 마침 유모를 찾고 있으니 당신은 참으로 운이 좋소. 그 아가씨는 나중에 대단히 고귀하신 몸이 될 거외다.’
이렇게 해서 제가 이 댁에 오게 된 겁니다.”
당기는 그 말을 믿고 싶지만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고, 믿지 않자니 당새아의 이런 모습이 또 이상하게 여겨졌다.
“지금 그 아이가 바로 댁의 친아들이었다면 부디 잘 키워 주시기 바라오. 그러면 지하에 계신 댁의 남편도 감격하실 게 아니겠소?”
“말이 필요 없지요. 제가 선친을 따라 부임지에 왔을 때 훌륭한 스승을 초빙하여 공부해서 경서(經書)와 역사서, 제자서(諸子書), 문집들을 보면 모두 대체적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여자 스승을 모셔다가 바느질과 자수(刺繡) 같은 일들도 잘 합니다. 따님께서 자라면 제가 당연히 하나하나 가르치고, 훗날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가면 저도 따라가서 여생을 마칠까 합니다.”
당기가 깜짝 놀라서 경건한 마음으로 말했다.
“아이가 자라면 자연히 댁을 친어머니로 대할 것이오. 그런데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소이다. 저번에 유모가 아이더러 나중에 엄마에게 봉호를 주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소이다. 사위가 장모에게 다시 봉호를 받게 해 준다는 얘기는 여태 들어 본 적이 없소이다.”
“따님은 남자보다 나은 여자이니, 그런 말로 울음을 그치게 한 것입니다.”
당기는 유모가 송생낭낭이 죽은 아내의 꿈속에서 한 말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네 차례 읍을 했다.
“그 아이는 평생 유모의 크나큰 힘에 의지할 것이니, 이 몸은 당연히 결초보은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유모가 안채로 돌아가자 당기는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태어났을 때의 일이 떠올라 《통감》을 펼쳐 살펴보았다. 기록에 따르면 문제가 태어날 때 자줏빛 기운이 뜰에 가득하고 손에는 ‘옥(玉)’이라는 글자 문양이 박혀 있었다. 이에 비구니 한 명을 모셔다가 길렀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비구니가 우연히 외출을 했다. 이에 친어머니가 아이를 안았는데 갑자기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돋고 온 몸에 용의 문양이 나타나는지라 깜짝 놀라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가슴이 덜컥 한 비구니가 급히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이렇게 놀라는 바람이 우리 아이가 천자가 되는 데에 십 년이 더 걸리겠구나!”
무릇 역사서에 기록된 것은 헛된 말이 아닐 테니, 이렇듯 기이한 일도 실제로 있었을 것이다. 이에 당기는 집안사람들에게 유모를 ‘포 마님[鮑太太]’라고 부르게 했다.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 당새아도 곧 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기는 잔치를 마련해서 친척 가운데 여자들을 불러서 당새아의 돌잡이를 지켜보도록 했다. 날짜가 되어서 사람들이 다 모이자 노매가 중당(中堂)에 붉은 양탄자를 깔고 돌잡이할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유모가 말했다.
“검(劍)이 있으면 한 자루 가져다 두시지요.”
이에 당기가 조상들이 남긴 송문검(松紋劍)을 가져와서 붉은 양탄자 위에 멀찌감치 놓아두었다. 노매는 곧 당새아를 안고 나왔는데, 당새아는 친척들을 보고도 그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 유모가 소매 안에서 눈부신 광채가 나는 옥도장을 하나 꺼내어 송문검 왼쪽에 두고 나서 당새아를 붉은 양탄자 위에 앉혔다. 그런데 당새아는 다른 것들은 다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앞으로 기어가더니 오른손으로 검을 잡아 몸 가까이 당기더니 두세 번 가지고 놀면서 자꾸 손가락으로 칼집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유모가 검을 뽑아 보여주자, 당기가 서둘러 받았다. 당새아는 또 왼손으로 옥도장을 집었는데, 도장 꼭지에는 붉은 끈이 달려 있었다. 당새아는 제 스스로 그 끈을 팔목에 꿰어 찼다. 그리고 몇 권의 책을 이리저리 넘겨 보았을 뿐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 여러 친척들이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유모가 당새아를 안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 유모가 혹시 요괴가 아닐까 의심했다. 당기도 그렇게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 들은 체했고, 저녁이 되자 자리를 파했다.
며칠 뒤는 또 황 부인이 죽은 지 일 년째 되는 날이었다. 당기는 영전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곡을 하며 제사를 지냈다. 당새아가 그걸 보더니 한사코 기어 나와 아버지와 함께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본 당기가 오히려 눈물을 머금은 채 울음을 멈췄으니, 딸이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별일이 없었다.
당새아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유모는 《여소학(女小學)》을 가르쳤는데, 한 번만 듣고도 외울 정도로 지혜와 오성(悟性)이 뛰어났고, 슬쩍 눈길만 스쳐도 내용을 잊지 않았다. 사서오경(四書五經)은 겨우 두 해 만에 모두 읽었는데, 대략적인 뜻을 설명하면 하나만 듣고도 열을 알았다. 또 옛 사람이 해석하지 못한 것을 해석하고, 옛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당기는 집안에 있는 모든 책들은 안채로 보내 딸이 읽도록 해 주었다. 아홉 내지 열 살쯤 되었을 때는 문장이며 시부(詩賦)에 모두 정통했다. 하루는 병서(兵書)를 보려고 하자 유모가 말했다.
“아직 병서를 읽을 때는 아니고, 여기 《무경칠서(武經七書)》가 있으니 먼저 봐 두렴.”
당기는 딸이 병서를 보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의아해서 딸의 의중을 시험해 보려고 유모와 함께 앞쪽 대청으로 불렀다. 막 열한 살이 된 당새아는 새하얀 적삼 위에 먹물처럼 검은 피풍(披風)을 걸치고, 아황색 치마를 입고, 새하얀 능라로 만든 버선을 신은 채, 머리에는 수정과 벽옥으로 만든 비녀를 꽂고 있었다. 구름처럼 쪽을 틀어 올리고 귀밑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 윤기가 반질반질했다. 평소에 향을 쬐거나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옷을 입거나 꽃송이를 머리에 꽂거나 화장을 하는 것 등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 딸은 분명히 환생한 선녀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당기가 유모를 보니 십년 전에 이 집에 들어올 때 입었던 옷과 신었던 신을 그대로 쓰고 있었는데 먼지 하나 묻지 않아서 오히려 새 것처럼 보였다. 당기는 선녀가 아닌가 싶어서 이렇게 물었다.
“유모는 소식(素食)을 하시지만 우리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고기도 조금 먹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러자 당새아가 말했다.
“저는 무슨 일이든 유모가 하는 대로 따라 해요.”
“그러니 착하지.”
그러면서 당기는 책을 누르는 데에 쓰는 네모난 모양에 똬리를 튼 이무기 문양이 조각된 옥을 집어서 딸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딸이 책을 보는 데에 이게 없어서는 안 되지. 그나저나 이걸 소재로 시를 한 편 지어 보렴.”
옥 이무기는 천고의 세월 동안 시서(詩書)를 눌러 왔는데
고집스러운 것이 마치 송나라 때 유생(儒生) 같구나.
어찌하여 용으로 변해 비를 뿌리며 떠나
높은 하늘 드나들며 성스러운 신과 함께 하지 않는지?
玉螭千古鎭詩書, 好似拘方宋代儒.
獨不化龍行雨去, 九天出入聖神俱.
당기가 깜짝 놀라 칭찬했다.
“우리 딸의 시는 격조도 높고 뜻이 심원하니 이 시대의 내로라할 인재라도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그런데 송나라 대의 유생들은 성인의 도리를 서술해서 전한 분들이니 깎아내려 비판해서는 안 되지.”
“공자(孔子)의 《논어(論語)》는 단지 학문만 가르칠 뿐 타고난 인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요. 자공(子貢)이 ‘들을 수 없었던[不可得而聞]’ 것은 당연히 위대한 현인 이상의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자사(子思)는 공자의 손자로서 직접 가학(家學)을 계승했기 때문에 《중용(中庸)》에서 인성과 천도에 대해, ‘오직 천하에서 지극히 정성스러운 사람만이 자신의 본성을 다할 수 있고, 하늘과 땅과 더불어 셋이 될 수 있다.[唯天下至誠爲能盡其性, 至可與天地參]’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성인의 도리 중에 조잡한 것은 보통의 부부라도 함께 알고 정밀한 것이라면 천지와 덕을 함께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고, 또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신과 같다고도 하지요. 성인이 신명(神明)하고 변화하게 하는 능력이 어찌 구차하게 행동거지를 법도에 맞추는 데에만 한정되겠습니까? 공자의 학문을 잘 배운 사람들 가운데 오직 맹자(孟子)가 쓴 일곱 편의 글만이 인의(仁義)와 효제(孝悌)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았으니, 이것은 성인의 경지로 들어가는 큰길이기 때문입니다. ‘인성은 선하다[性善]’라는 그의 말은 중‧하등의 사람들을 위한 설명일 뿐이고 맹자 자신이 힘쓴 것은 인간의 본성을 다하여 천도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쉰 살이 되어서야 《주역(周易)》을 공부했고, 맹자는 평생 《주역》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니, 진정 《주역》이야말로 깊고 아득한 천도의 극치인지라 상등의 지혜를 갖춘 이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송나라 때의 유생들은 천도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경서를 해설했으니 참선하는 승려들과 아주 조금 차이는 있다 할지라도 후학들에게 쓸데없는 장애만 만들어 냈을 따름입니다. 또 인성과 이치[性理]에 대해 설명했는데 영향이 모호해서 금방 전부를 천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원류를 통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처에서 장애를 느끼게 됩니다. 평상시에 일용하는 일이라면 성인은 수시로 호응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각기 이치에 합당해야 한다면서 수많은 고리타분한 규범을 설립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마음의 눈을 고정불변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임시방편을 잘 아는 사람은 법도를 넘어선 것이고 변화를 이해하는 사람은 지조를 잃은 것이라고 의심하니, 이야말로 상투적인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공부하는 것은 성현의 본래 뜻을 깨닫기 위함이지 경학자들처럼 그저 경전의 장구(章句)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남들의 해석을 흉내 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송나라 때의 유생들과는 맞지 않는 것이니 아버님께서 의아하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기는 아연히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새아는 그에게 “들어가겠습니다!” 하고는 유모와 함께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당기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우리 딸이 나이가 어려서 이렇듯 빼어난 견해를 가지기는 어려울 테니 틀림없이 유모가 그렇게 가르친 모양이로구나. 계집아이는 도통(道統)에 대해 해설하고 전하는 일은 하지 못할 테니 본분을 지켜서 바느질이나 자수, 길쌈과 같은 여자가 할 일이나 해야 할 텐데……’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 당기가 다시 딸을 불러내서 물었다.
“얘야, 여자가 해야 할 일은 좀 배웠느냐?”
“제 이름이 ‘새아’인 이상 여자가 해야 할 일만 익힐 여자는 아니에요!”
“유모, 그래도 좀 가르쳐야 하지 않겠소?”
“본성을 따르게 해야지 억지로 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얘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열녀들 가운데 본받을 사람은 몇이나 되더냐?”
“지혜로는 신헌영(辛憲英), 효도로는 조아(曹娥), 정절로는 목란(木蘭), 절조로는 조영녀(曹令女), 재능으로는 소약란(蘇若蘭), 절열(節烈)로는 맹강(孟姜)을 꼽을 수 있으니, 이들 모두가 발군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 우애가 깊으면서 부덕(婦德)을 갖춘 이로는 누가 있느냐?”
“조대고(曹大家)를 제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당기는 무척 기뻐하며 마당에 심어 놓은 반죽(斑竹)을 가리키며 시(詩)든 사(詞)든 가리지 않고 한 수 읊어 보라고 했다. 상비(湘妃)야말로 여자의 덕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새아는 즉시 짧은 노래를 한 곡 읊었다.
사랑은 은근하고 눈물은 쌍쌍이 흘러
두 여인의 사랑하는 마음 푸른 대나무에 뿌렸지.
순 임금 따라 구억산으로 가지 않고
상수에 혼자 남아 군왕이 되었구나.
情脈脈, 淚雙雙, 二女同心灑碧篁.
不向九嶷從舜帝, 湘川獨自作君王.
당기는 또 어이가 없어져서 물었다.
“송나라 때의 황후들 가운데 고씨(高氏)나 조씨(曹氏), 상씨(向氏), 맹씨(孟氏) 같은 분들은 어떠하냐?”
“규범을 지킨 부인들이니 송나라 때 유생들이 ‘현량한 황후[賢后]’라고 할 만한 분들이지요.”
당기는 화가 나서 여태후(呂太后)와 츤천무후(則天武后)에 대해서도 물어볼까 했으나 말을 꺼내기가 곤란했다. 그때는 이미 서쪽 하늘에 달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에 다시 그것을 소재로 시를 한 편 읊어 보라고 했다. 그러자 당새아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조렸다.
이슬이 하늘을 씻어 초승달 떠오르니
요대의 소녀가 맑은 가을 희롱한다.
보검의 칼끝으로 다스리는 듯
하늘 가득한 서리꽃이 천하를 숙청한다.
露洗空天新月鉤, 瑤臺素女弄淸秋.
似將寶劍鋒芒屈, 一片霜華肅九州.
당기는 달이 후비(后妃)를 상징하고 초승달은 어리다는 뜻이니 이것을 주제로 시를 짓게 해서 딸의 장래를 다시 점쳐 보려 했는데, 뜻밖에 시 안에 살기가 풀풀 날리고 전혀 규방 아가씨 같은 운치가 없는지라 슬그머니 물었다.
“네 시와 노래에는 모두 녹림호걸의 어투가 들어 있어서 조조(曹操)나 이밀(李密) 같은 이가 지은 것 같구나. 혹시 옛날에 누가 지은 것이더냐?”
그러자 유모가 대신 대답했다.
“아가씨는 여장부이기 때문에 이번에 지은 시와 노래에서 모두 장엄하고 광대한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유모는 당새아를 데리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당기는 혼자 머뭇거리고 있다가 괴짜 악씨가 했던 말이 점차 들어맞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은 뒤였는지라 딸아이의 팔자를 다시 점쳐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때 늙은 하인이 들어와 보고했다.
“요(姚) 상공(相公)께서 오셨습니다.”
그는 바로 당기의 손아래동서였다. 안으로 모셔서 자리에 앉고 나자 당기가 유모와 당새아의 기이한 일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었다. 요 수재는 시와 노래를 보고 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사덕(四德)을 중시해야지 시나 노래를 가지고 놀면 안 되지요. 하물며 어투까지 차분하지 않아서야 되겠는습니까? 얼른 괜찮은 사윗감을 골라 시집보내 버리시지요. 예로부터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을 밖으로 향하니 신경 쓸 필요 없다.[女生外向, 就不要費心思了]’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일세. 모처럼 찾아와 주었는데 이야기나 나누세. 괜히 내 딸아이 때문에 방해를 받았구먼.”
당시 당새아는 이미 열세 살이 되었는데, 생일이 다가오자 당기는 큰 잔치를 열어 축하하면서 당새아의 이모와 이모부, 외삼촌과 외숙모, 당숙과 당숙모, 작은할머니를 초청했고, 제일 가까운 이모가 또 딸을 하나 데려왔는데 어릴 적 이름은 묘고(妙姑)였고 당새아보다 한 살 어렸다. 남자는 서쪽, 여자는 동쪽으로 자리를 나누어 앉고 나자 모두들 당새아에게 건배하며 생일을 축하했다. 당세아는 일일이 답례했다. 그때 요 수재가 먼저 당새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처조카는 박학하고 이치에 통달하며 식견이 광대한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성스럽고 현숙한 여인들 가운데 누구를 본받고 싶은가?”
“열녀 가운데는 공자와 같은 분이 없으니 저는 그저 맹씨(孟氏)를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자 요 수재가 당기에게 말했다.
“처조카는 고래로 첫째나 둘째가는 여자이니 좋은 사위를 고르는 것이 당연히 어려울 겁니다. 형님께서도 이 일을 시급히 여기셔야 할 듯합니다.”
그러나 여러 친척들이 일제히 말했다.
“여자가 태어나면 시집을 보내야 하니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요!”
이에 당기가 말했다.
“아직 딸아이하고 유모에게 물어보지 않았소이다.”
당새아가 말했다.
“저는 시집 안 가요! 아버님 천수가 다할 때까지 모신 후에 출가해서 도를 공부할 거예요. 절대로 시집가서 남의 아낙이 되지는 않겠어요!”
그러자 곁에 있던 늙은 하녀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뿐만 아니라 저도 절대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당기의 사촌형이 나서서 당기에게 말했다.
“이 하녀는 나이가 많구먼. 일찌감치 짝을 찾아 주었어야지, 어쩌다가 이렇게 되도록 미뤄 두었는가?”
“몇 번 권해 보았지만 본인이 한사코 거절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선왕이 다스릴 때에는 ‘안으로 혼기가 찼지만 결혼하지 못한 여자[怨女]가 없고 밖으로는 나이가 들어서도 결혼하지 못한 남자[曠夫]가 없다고 했네. 자네는 집안의 주인인데 어째서 하녀의 뜻을 따르는 것인가? 그러니까 조카가 이런 이상한 말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 이게 다 자네가 가정교육을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일세!”
요 수재가 다시 이어받아 당새아에게 말했다.
“《주역》의 첫머리에 있는 두 괘가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인데 진괘(震卦)와 이괘(離卦), 손괘(巽卦), 태괘(兌卦)는 남녀를 가리키기 때문에 ‘건괘의 도리는 남자가 되고 곤괘의 도리는 여자가 된다.(《周易》 〈繫辭〉: 乾道成男, 坤道成女)’라고 했고, 또 ‘음과 양이 교대로 나타는 것을 도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라고 했네. 게다가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합하여 어리면 만물이 변화하여 정순하게 되고, 남녀가 교합하면 만물을 낳아 기른다.[天地絪溫, 萬物化醇, 男女構精, 萬物化生]’라고 했네. 이것은 대지의 변함없는 규율이고 고금을 관통하는 대의(大義)일세. 처조카, 이후로 다시는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말게.”
“혼돈(混沌)이 개벽하여 음양이 나뉘고 기(氣)가 변화하여 흐르면서 만물을 발육시켰지요. 하지만 음이 양에게 시집가고 달이 해에게 시집간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외삼촌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조카의 일은 전적으로 포 마님의 생각에 달린 것 같습니다.”
유모가 말했다.
“삼강오륜은 성인이 말씀하신 위대한 도리인데 어찌 여자가 시집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가씨께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겠다고 하셨지만 선가(仙家)에서도 부부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이 일은 모두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에 여러 친척들이 말했다.
“포 마님은 성현과 같은 분이니 이후의 일을 주관하시면 되겠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친척들이 모두 작별하고 떠나려 하자, 당새아가 부친에게 말했다.
“제 생일인데 어머니가 생각나서 너무 슬픕니다. 그래서 시를 한 수 지어 봤는데 겸사겸사 큰아버지와 외삼촌, 이모부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곧 꽃무늬가 들어가 있는 종이에 시를 써서 돌려보게 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요대에서 유배되어 온 지 열여섯 해
어린 계집이 돌아보니 저절로 불쌍해지는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황천길 함께 가기 어렵고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 이한천에 함께 산다네.
오늘밤은 오색구름 아직 흩어지지 않았는데
한가을의 밝은 달은 누굴 위해 둥글게 떠 있는가?
젊은 여인들은 모두 무산의 꿈속으로 들어갔는데
누군가 굳이 처녀의 전기를 쓰고 있구나.
一謫瑤臺十六年, 兒家回首自生憐.
母亡難伴黃泉路, 父在同居離恨天.
此夕彩雲猶未散, 千秋皓月爲誰圓.
香閨盡入巫山夢, 有個偏爲處女傳.
당새아에게 이모부가 되는 요 수재가 말했다.
“만당(晩唐)의 기풍으로 쓴 시인데, 마지막 구절만은 맞지 않구먼. 예로부터 지금까지 처녀의 전기라는 것은 없었거든.”
유모가 말했다.
“처녀의 전기는 오직 신선 세계에만 있을 수 있으니, 이게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내일 사주단자(四柱單子)를 써서 여러 친척들께 보내 드릴 테니 각자 신경 써서 괜찮은 신랑감을 물색해 주십시오. 제가 도리에 맞게 권하면 아가씨도 분명히 제 뜻에 따를 겁니다.”
그러자 친척들이 모두 말했다.
“그저 포 마님만 믿겠습니다!”
친척들은 곧 유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고, 당새아는 곧 큰아버지 등의 친척들을 배웅했다. 하지만 묘고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언니와 함께 있고 싶어 했다. 당새아는 무척 기뻐하며 아버지께 말씀 드려 허락을 얻고 나서, 묘고의 손을 잡고 유모를 따라 안채로 들어갔다.
시간이 이경(二更, 밤 9시 36분 전후)이 되어 가자 집안사람들은 각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자 당새아가 말했다.
“오늘밤은 하늘이 푸른 물과 같고 옥 같은 이슬이 흘러 물결을 일으키며 가을바람이 상쾌하게 부는데다가 달빛도 맑고 밝으니 정말 좋군요. 이야말로 ‘지금 사람은 옛날의 달을 보지 못하지만, 지금의 달은 옛 사람을 비춘 적이 있지.(李白, 〈把酒問月〉: 今人不見古時月, 今月曾經照古人)’라는 시 구절에 딱 어울려요. 저는 동생하고 함께 달구경을 할까 하는데, 유모도 함께 정원에 잠깐 나갔다 오실래요?”
이렇게 해서 진귀한 과일을 차리고 향긋한 차를 끓였다. 이야기가 한밤중까지 이어지는데 갑자기 정확히 동쪽에서 오색구름이 떠올라 천천히 하늘 가운데로 퍼지면서 마치 소용돌이치듯이 빙글빙글 돌며 둥근 문양을 만들어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려는 것 같더니, 밝은 달이 단정하게 그 가운데에 얹히게 되었다. 기이한 꽃이 둘러싸고 특이한 색채가 일렁이는 모습이 그야말로 온갖 꽃을 수놓은 비단처럼 뒤섞여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내니, 이것이 바로 세속에서 ‘달무리[月華]’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당새아는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노라니 자기도 모르게 구슬픈 기분이 들어서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처럼 어린 게집애가 어떻게 달나라 궁전의 자매들을 따라 할 수 있으랴? 그런데 유모, 내가 보기에 유모는 신선 세계에 속한 분이라서 분명히 과거와 미래를 잘 알고 계실 텐데, 제 지난날의 인연을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지 않아도 너희 자매를 한 번 일깨워 주려던 참이었지.”
당새아가 즉시 무릎을 꿇자 묘고와 하녀도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서 들어라!”
당새아가 일어나려 하지 않자 유모가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그런 다음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너의 옛 집이지. 너는 원래 당나라 궁전의 항아였고, 묘고는 시녀인 소영이었어. 또 한황이라는 시녀도 있는데, 그 아인 다른 곳에 전생했지.”
그러면서 유모는 요지에서 벌어졌던 잔치와 천랑성이 청혼했던 일들 자세히 들려주었다. 당시아가 다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유모, 저도 깨달았어요! 어쩐지 예전부터 달만 보면 쓸쓸한 기분이 들더라니. 휴! 언제나 다시 요대에 올라갈 수 있을까요?”
당새아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자 유모가 말했다.
“내가 있으니 괜찮다.”
묘고가 당새아에게 말했다.
“저는 원래 언니의 시중을 들던 몸이었으니 이제부터는 돌아가지 않을래요.”
유모가 말했다.
“그건 천천히 하자꾸나. 우리 새아에게는 묵은 부부 인연의 빚이 아직 남아 있거든.”
당새아가 흐느꼈다.
“일단 색계(色戒)를 범하게 되면 틀림없이 타락하게 될 거예요. 유모, 제발 이 재난을 해결해 주셔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리자 유모가 말했다.
“알고 보니 아직 덜 깨달은 게로구나! 요지 모임에서 관음보살께서 하신 말씀을 잊었단 말이냐? 네가 유궁국의 왕비였을 때 후예와 반년 동안 부부로 지낼 운수가 아직 남아 있었는데 네가 달나라도 도망쳐 버렸지. 지금 후예도 인간 세계에 전생했는데 어떻게 억지를 부릴 수 있겠느냐? 이것은 정해진 운수이니 석가여래도 바꿀 수 없어. 다행히 천손낭낭께서 하늘나라에서 여러 면으로 보호해 주고 계시니 그래도 조정할 방법이 있을 게다. 소식이 오면 내 나름대로 방법이 있으니, 안심해라. 걱정할 필요 없어.”
당시아가 재배하여 감사했다.
“그런데 유모는 어느 선녀이신가요?”
“그건 지금 묻지 마라. 나중에 밝힐 때가 당연히 있을 게야. 모든 일은 그저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돼.”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날이 밝아오려 하니, 각자 침실로 가서 쉬었다.
진시(辰時, 오전 7~9시)이 되자 당기가 안채로 들어와 유모에게 말했다.
“오늘은 새아의 사주단자를 친척들에게 보내서 괜찮은 사윗감을 물색해 보라고 해야 되겠소이다. 그래야 아비로서 할 바를 다하는 것일 테니 말이오.”
“지당하십니다. 한 사람의 견문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고, 부부의 인연은 천 리나 떨어져 있어도 실에 묶인 듯이 끌려오게 마련이지요.”
당기는 무척 기뻐하며 나갔다.
그나저나 동방의 절세가인이 남국의 다정하고 멋진 인재와 맺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