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琴師 동정란董庭蘭 선생을 이별하며別董大 二首/당唐 고적高適
1.
千里黃雲白日曛 천 리에 누른 구름 해 가려 어둑한데
北風吹雁雪紛紛 북풍 기러기에 불고 눈도 펄펄 내리네
莫愁前路無知己 앞길에 아는 사람 없다 근심하지 말라
天下誰人不識君 천하에 어느 누가 그대를 못 알아볼까
2.
六翮飄颻私自憐 높이 나는 큰 새 신세 스스로 슬퍼하니
一離京洛十餘年 장안에서 이별한 뒤 십 년 만에 만나네
丈夫貧賤應未足 대장부 빈천은 좋아하지 않는 법이지만
今日相逢無酒錢 오늘 서로 만나서도 술 살 돈도 없네요
연시로 된 2편의 시이다. 보통 첫 번째 시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시를 지은 배경이나 창작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두 번째 수를 함께 읽어야 한다. 연시의 경우 각각의 시가 독립된 경우도 있지만 대개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고적(高適 : 704~765)이 747년 44세 때에 동대(董大)를 하남성 수양(睢陽)에서 만나 작별하면서 지은 시이다. ‘동대’는 동씨 성을 가진 사람이 그 사촌 형제들 중에서 서열이 첫 번째라는 의미이다. 우리말에는 없는 중국 특유의 호칭개념으로 ‘동씨네 맏아들’ 이런 뜻이다.
고적은 하북성 창주(滄洲) 사람으로 749년 4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이런저런 벼슬을 하였다. 《당재자전》에는 50세에 비로소 시를 배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전부터 시를 지었다. 고적도 잠삼처럼 변새시로 이름이 알려졌는데 고적 역시 변방에 많이 근무한 것과 관련이 있다. 고적은 다른 시인들과 달리 예부 상서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판서급의 벼슬을 하여 충(忠)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동대는 본명이 동정란(董庭蘭 : 약695~765)으로 농서(隴西) 사람인데 당시 저명한 금사(琴師)이다. 그는 젊어서는 공부는 안 하고 사방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거지처럼 다니며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50세가 되어 정신을 차리고 공부도 하고 시도 배우고 했는데 고적처럼 변새시를 좋아했다. 동정란이 고적보다 대략 9살 정도 손위다.
판본에 따라서는 시의 순서가 바뀐 경우도 많다. 뒤의 시는 고적이 동정란에게 지금 자신의 처지를 말한 내용이고 앞의 시는 동정란의 앞길에 위로와 축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뒤의 시가 앞에 놓여야 할 듯하다. 그러나 시어의 연상을 생각해 보면 지금 순서가 맞을 듯하다.
육핵(六翮)은 새의 두 날개에 좌우 3개씩 있다는 깃촉을 말한다. 이 깃촉이 있어야 큰 새가 멀리 난다고 하니 결국 큰 새를 의미한다. 그리고 표요(飄颻)는 높이 나는 모양이다. 이는 《전국책(戰國策)》에서 나온 문자이다. 여기서 새가 높이 날기만 하고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고적 자신이 과거 시험에 낙방하고 이리저리 다니는 신세를 비유한 말이다. 그러기에 상심한다는 내용이 뒤에 나온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앞 시에서 눈이 펄펄 내리는데 북풍을 맞고 있는 기러기와 연결된다. 때문에 지금의 순서로 되어야 자연스럽다.
누런 구름이 해를 가려 어둑하고 펄펄 내리는 눈 속에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오는 풍경은 자못 비장감을 준다. 이런 풍경은 10년 만에 만나 다시 헤어져야 하는 두 사람의 내면 풍경이 투영되어 있다. 과연 변새시에 능한 고적의 솜씨이다. 전구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슬픈 얼굴에 웃음을 드리운다. 뭘 걱정하시나? 천하에 누가 우리 금사 동대(董大) 형을 몰라본다고!
두 번째 시에서 가장 주의해서 보아야 할 곳이 3, 4구이다. 응미족(應未足)은 ‘마음에 달갑게 여기지 않는 법이다.’라는 의미이다. 즉 대장부로서 빈한하고 천한 상태에 놓이는 것은 세상의 어떤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에 도가 있고 없는가에 따라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부유하고 귀한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는 공자님 말씀과는 다른 당시 지식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일 것이다. 10년 만에 만나서도 술 한잔 살 돈이 없다고 한다. 동정란은 돈이 있었을까? 어쩌면 둘 다 돈이 없어 시만 주고받고 헤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장한 상황에서도 희망이 담긴 위로의 말을 건네고 10년 만에 만나서도 술 살 돈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이 시를 읽고 나면 고적이 매우 인정이 있으면서도 솔직하다는 인상을 준다. 예전에 가난하게 살면서 궁한 처지에 내몰려도 쩨쩨하지 않고 기백이 있던 분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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