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완삼이 한운암에서 전생의 사랑빚을 갚다閑雲庵阮三償寃債 1

완삼이 한운암에서 전생의 사랑빚을 갚다 1

좋은 인연 나쁜 인연 어디 정해져 있던가.
괜히 다른 사람 원망하거나, 하늘을 원망하지 말게.
자식들 일찍 낳아 일찍 결혼시키고,
일찌감치 은거하여 말년을 보낸 상자평1이 그립구나.

이 노래는 자식들 일찍 결혼시키라는 얘기. 아, 속담에서도 사내자식은 크면 장가보내고 계집아이는 크면 시집보내라, 시기를 놓쳤다간 괜히 불상사만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딸 시집보내면서 가문을 따지고 인물을 따지다가 시기를 놓치는 자가 어디 한둘이랴. 사춘기 처녀한테 참아라, 참아라 하는 것이 어찌 능사일 것인가? 남자들이야 기루에 가서 하룻밤 사랑이라도 나눈다지만 여자들이야 집안에서 괜히 엄하게 단속한다고 설치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일 생겨나는 경우 한둘 아니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엇하리.

여기 고관 나리를 소개하니, 그의 이름은 진태상陳太常이라. 서경西京 하남부河南府 오동가梧桐街 토연항兎演巷에서 살고 있다. 진태상은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여 전전태위殿前太尉까지 지냈다. 나이 오십에 소실을 들였으나 아들은 낳지 못하고 딸을 하나 두었는데, 그 딸애 이름이 옥란玉蘭이었다. 옥란은 본디 한다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라 나이 열여섯에 화용월태花容月態라. 침선에도 능하고 글씨와 그림에도 재주가 있으니 참으로 재색을 겸비한 재원이었다.

진태상은 부인에게 늘, 자신은 고관을 지낸 자로서 재산도 수 만 금인 데다가 딸 옥란이 재색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이에 어울리는 고관대작의 자제와 옥란을 짝 지워주지 않는다면 체면에 손상이 된다고 말하곤 하였다.

하루는 진태상이 매파를 불러 말하였다.

“우리 아이가 이제 나이가 찼으니 시집을 보내야겠네. 나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녀석을 사위로 맞을 심산이야. 첫째, 고관대작의 아들이어야 해. 둘째, 재주와 용모가 출중해야 해. 셋째, 과거에 급제한 자여야해.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녀석이라면 사위로 맞아들이겠지만, 이 가운데 하나라도 모자라면 절대 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걸세.”

그날부터 매파는 신발에 불이 나도록 사윗감을 찾아다녔으나, 이거 하나가 괜찮으면 저거 하나가 문제, 저거 하나가 괜찮으면 이거 하나가 문제, 정말 세 조건을 만족시키는 상대를 찾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이렇게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서 옥란의 나이 벌써 열아홉이 되어버렸다.

출처 朵云轩

때는 바야흐로 정화正和 2년(1112) 정월 대보름. 나라 전체가 잔치 분위기로 떠들썩하였다. 오봉루五鳳樓 앞에 등불산 하나를 만드니 온통 등불 천지요 사방에는 악기 소리가 넘쳐 났다. 정월 초닷새부터 스무날까지 성문을 닫지 않고 천자의 궁실을 개방하여 여민동락하였다. 「서학선瑞鶴仙」이라는 노래는 이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천자의 궁궐에는 상서로운 안개가 피어오르고,
붉은 기운 타고서 봄이 다시 돌아오는구나.
정월도 벌써 보름,
달도 동그랗게 보름달이 되었구나.
꽃단장 아가씨들 거리를 돌아다니며 노래 부르니,
한 떨기 연꽃이 길 위에 핀 듯하여라.
망루 위에 누대 위에,
별처럼 은하수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등불.
주렴을 살짝 걷어 올리고 하루 종일 음악에 취하니,
팔찌와 목걸이 장식 아름다운 여인들이 모여드네.
오호라,
비단결 속에서,
사향 향기 속에서,
어떻게 노닐지 않을쏜가.
이젠 밤에도 바람이 차갑지 않아,
꽃 그림자 어지럽게 날리고,
웃음소리 거리를 가득 메우네.
화려한 머리핀을 꽂은 여인네들 서로 짝을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네.
서울의 야경이 이렇게 기쁠 줄이야,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태평성대가 예 있었도다.

이런 축제에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어찌 빠질 수 있으랴. 토연항에 완화阮華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형제간의 항렬이 세 번째인지라 완삼랑阮三郞이라 불렸다. 그의 큰형 완대阮大는 아버지를 도와 양경에서 장사를 하였고 그의 둘째 형 완이阮二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였다. 완삼은 나이 열여덟에 용모가 준수하고 글에 능하였을 뿐 아니라 다방면에 모르는 것이 없고 퉁소도 잘 불었다. 완삼은 명문가의 자제들과 교유하며 매일 기루妓樓에 가서 풍류를 즐겼다. 완삼은 정월 대보름에도 몇몇 친구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등불을 감상하였다. 이들은 완삼의 집에서 삼경까지 놀았다. 삼경이 지나 완삼이 친구들을 배웅하러 거리로 나서 보니 행인은 별로 보이지 않고 달빛만이 대낮처럼 환하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완삼은 친구들을 붙잡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기분 좋은 날 어찌 잠들 수 있겠는가? 우리 노래 한 곡 더 하고 가세.”

하여 완삼 일행은 길가의 연석에 앉아 생황과 퉁소, 상판을 연주하면서 이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벽에도 귀가 감추어져 있다는데,
창밖에 어이 듣는 사람이 없을쏜가.

완삼의 집은 진태상의 집과 마주 보고 있었다. 등불 구경을 마친 옥란은 막 잠자리에 들려다 아련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취하게 되었다. 야심한 시각, 모두 잠들었을 이 시각에 어디서 이런 청아한 소리가 들려온단 말인가. 옥란은 하녀를 불러 같이 대문 쪽으로 살며시 걸어갔다. 그 노랫소리를 들은 옥란의 마음은 마치 봄바람에 들린 듯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옥란은 하녀 벽운碧雲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 노랫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나가서 알아보아라.”

벽운도 그 노랫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하던 차에 주인아씨의 말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보았다. 밖에 나가 살펴보니 맞은편 집 도련님의 노랫소리가 아닌가.

벽운은 다시 들어와 아씨에게 아뢰었다.

“앞집 완삼 도련님이 친구들과 부르는 노랫소리예요.”

옥란은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아버님이 완삼이 부마 물망에 올랐다가 인연이 아니었던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시던데 그런 도련님이시라면 필시 재주와 용모가 뛰어나실 거야.’

완삼과 친구들이 번갈아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침내 그쳤다. 옥란은 침실로 돌아왔으나 못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오직 완삼 생각뿐이었다.

‘완삼 도련님처럼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남자에게 시집간다면 한평생이 아깝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하면 만나볼 수 있을까?’

옆집 아가씨 남자 그리는 맘 불현듯 일어나네,
탁문군이 사마상여 거문고 소리 듣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거랑 같다네.

1 상자평向子平은 동한東漢 사람으로 일찍이 은거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자녀들을 결혼시킨 이후에 일체의 집안일을 끊고 명산대천을 유람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