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사 왕선생의 <소상강에서의 감회> 시에 화답하여 同王徵君湘中有懷/당唐 장위張謂
八月洞庭秋 팔월 달 동정호의 가을
瀟湘水北流 소상강은 북으로 흐르네
還家萬里夢 만 리의 집 귀향하는 꿈
爲客五更愁 오경의 새벽 나그네 시름
不用開書帙 책 펼치는 것 소용 없고
偏宜上酒樓 주루에 가는 게 딱 맞지
故人京洛滿 친구들 낙양에 가득한데
何日與同遊 어느 날에 함께 노닐지
장위(張謂)는 자가 정언(正言)으로 지금의 하남성 심양(沁陽) 사람인데 8세기 중반을 살았던 시인이다. 숭산(崇山)에서 공부하여 743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예부 시랑까지 지냈다. 이 연재 19회에서 소개한 <조매(早梅)>가 바로 이 시인의 대표작이다. 이 시는 758년 그가 상서랑(尙書郞)으로 하구(河口), 즉 지금의 무한(武漢)으로 사명을 띠고 가서 여러 사람들과 동정호에서 뱃놀이를 할 때 지은 시이다.
제목에서 왕 징군(王徵君)이라 한 것은 왕씨 성을 지닌 선비로 임금의 부름에 나아가지 않은 처사를 말한다. 징군(徵君)은 징사(徵士)를 높인 말이다. 도연명 같은 사람이 바로 징사이다. 동(同) 자는 같은 운자로 창화(唱和)한다는 뜻이다. 왕 징군이 이날 범주(泛舟)에 참석하여 <소상강에서의 감회(湘中有懷)>를 지었는데 장위가 이에 화답하였기 때문에 이 글자를 쓴 것이다.
동정호에 가을이 오고 소상강이 북으로 동정호에 흘러든다는 것은 시인이 선유(船遊)를 할 때 본 실제 경관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가을이 와서 향수가 일어나고 소상강 물결은 나의 고향을 향해 흐르건만 나는 가지도 못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중정(景中情)의 필치가 극히 자연스럽다.
동정호에서 시인의 고향 하남까지 만 리가 되지 않지만 가지 못하니 멀고 더욱 간절하다. 그래서 새벽녘이 밝아 올 때까지 뒤척이게 된다. 이럴 때는 주변의 서적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것으로는 향수를 달랠 길이 없다. ‘불용(不用)’은 소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루에 올라가 술을 마시는 것이 딱 알맞다고 한다. ‘편의(偏宜)’에서 ‘편(偏)’은 ‘치우치다’는 말이니 ‘편의’는 아주 알맞다는 뜻이 나온다.
집 생각만 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 생각도 간절하다. ‘경락(京洛)’은 낙양을 가리키기도 하고 장안과 낙양을 포괄하여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소상강이 북으로 흐른다는 말은 2구의 향수와도 조응되지만 7구의 이 우정과도 연결된다. 또 객수에 젖는다는 말과 마지막의 친구들과 함께 노닌다는 말 역시 조응되고 있어 시의 수미가 꼬리를 물고 있다. 시의 이런 맥락으로 보면 경락은 낙양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낙양의 친구들 언제 다시 만나 함께 술을 마시며 웃을지 그립기만 하다.
시가 전체적으로 꾸민 데가 없이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이 시의 주요한 특징이다. 그런데 이 시는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 이 시를 지은 758년은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간신히 진압되고 다시 사사명(史思明)이 반란을 일으킨 해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전란의 그림자가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점이 이상하다. 불과 3년 전에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두보가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즉 ‘국도가 함락되니 산하만 남아 있다.‘ 고 말한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이 시에서 그리운 고향에 가지 못하고 낙양의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한 것은 이런 시국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난이 이 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나라가 전란 중이라 해서 다 두보처럼 시를 쓰는 것은 아니며 그 와중에서도 일상과 관행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 시는 보여준다. 시는 이처럼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다양한 정보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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