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비한 책상 컴퓨터 2
가게 문을 막 연 장이는 늙은 도사에게 업히다시피 찾아온 사상회를 보고 무척 놀랐던지, 그를 부축해서 탁자에 앉히고 찻물을 내오고, 수건을 적셔 와 얼굴을 닦아주며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사상회의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하자, 사람을 보내 집에 알려야 한다는 둥 의사를 불러와야 한다는 둥 자기 나름대로 대책을 정신없이 주워 삼켰다.
“형님, 별 일 아니니 그리 소란 피울 필요 없어요. 한 이틀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 밥까지 건너뛰어서 기력이 좀 쇠약해진 모양이니, 따뜻한 소면이나 한 그릇 말아줘요. 참, 여기 도사님께도 한 그릇 부탁해요.”
“어, 그런 거였어? 괜히 놀랬잖아!”
장이는 옆에서 멀뚱히 구경하고 있던 점소이에게 냉큼 주방에 달려가서 소면 두 그릇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빽 지르고, 그제야 도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인사가 늦었네요. 도사님이 안 계셨더라면 이 친구 정말 큰일 날 뻔했네요.”
“이런 도움이야 인지상정인데, 뭐 인사까지 받을 게 있겠는가?”
“그래도 요즘 세상의 인심이 어디 그렇습니까? 어쨌든 오신 김에 소면이나 한 그릇 드시고 가십시오.”
“기왕 인심을 쓸 거면, 술도 한 잔 얹어주면 더 고맙겠네.”
“이런, 내 정신 좀 봐!”
장이는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왕칠王七! 오면서 죽엽청도 한 병 내와!”
소면이란 게 워낙 요리라고도 할 수 없는 간단한 음식인지라, 점소이 왕칠은 주방으로 들어간 지 오 분도 채 안 지나서 김이 펄펄 나는 소면 두 그릇과 죽엽청 한 병, 그리고 안주로 쓸 땅콩 한 접시를 쟁반에 얹어 들고 나왔다. 장이는 작은 잔에 죽엽청 두 잔을 따라 도사와 한 잔씩 나누어 들고, 다시 한 번 인사치레를 하며 건배를 하더니, 금방 일어서서 계산대 뒤로 돌아가더니 이것저것 정리를 시작했다.
사상회가 국물을 후후 불며 어렵게 면 몇 가닥을 먹는 사이에, 늙은 도사는 어느새 소면 그릇을 다 비우고 찻잔에 죽엽청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거푸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땅콩 몇 알을 집어 들며 도사가 물었다.
“그래, 무슨 고민이 있어서 잠도 못 자고 밥도 걸렀는가?”
사상회는 얼굴이 벌개져서 고개를 숙인 채, 자죽에 대한 그리움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결국, 그 아가씨의 얼굴을 똑같이 그린 그림이 필요한데,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로구먼?”
“예……”
사상회가 조심스럽게 계산대 쪽을 흘낏 보며 대답하자, 늙은 도사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품속을 뒤적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한참 꺼내놓다가, 마침내 빛바랜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더니 사상회에게 내밀었다. 붉은 바탕에 금빛 실로 수놓은 그 비단 주머니는 한눈에 보기에도 예전에는 꽤 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군데군데 실밥이 떨어져 나갔지만, 금빛 실은 여전히 꽤나 정교한 어떤 부적 같은 모양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 이 안에 든 물건이 도움이 될 듯하네. 아아, 지금 풀지 말고 내 얘기부터 먼저 듣게.”
늙은 도사는 의혹에 찬 사상회의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안에 든 것은 좀 오래된 구리거울이라네. 그런데 그건 좀 특별한 기능이 있지. 가령 무슨 물건을 그 거울에 잠깐 비추고 있으면, 거울 표면에 그 물건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네. 그러니 아마 그걸로 그 무슨 대나무라는 아가씨의 얼굴을 비추면, 그 모습이 거울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겠지. 그 다음엔 방안에 걸어놓고 두고두고 볼 수 있을 걸세. 혹시 아나,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고 그리워하면 거울 속의 아가씨가 살아서 밖으로 걸어 나올는지?”
“세상에 이런 신기한 거울이 있군요! 도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늙은 도사한테야 그다지 쓸모없는 물건이니 너무 개의치 말게. 다만 그 거울을 쓸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데, 그건 절대 거울에 햇빛이 닿으면 안 된다는 것일세. 일단 햇빛에 닿으면 거울에 어려 있던 모습이 사라져버린다네. 그 거울이 다시 새로운 모습을 담으려면 백 년의 시간이 흘러야 하니까, 자네 평생에는 그걸로 끝인 셈이지. 그러니 단단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상회는 그 비단 주머니를 품속에 단단히 갈무리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늙은 도사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올렸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늙은 도사의 모습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였다. 다만 찻잔에 남은 죽엽청 냄새만이 도사의 존재를 증명해줄 뿐이었다.
“어라? 그 술독인지 도사인지 하는 양반은 어느새 가버렸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사도 없이 가버리다니, 이거야 원!”
잠시 멍한 표정으로 품속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사상회는 장이의 투덜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장이를 덥석 끌어안으며 껑충껑충 뛰었다.
“형님, 이제 됐어요! 됐다구요!”
“애송이 도사, 뭐가 됐다는 거야? 어, 어라? 소면은 마저 먹고 가야지, 그러다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하하하, 조금 있다 와서 마저 먹을게요.”
그날 밤부터 사상회의 집안에는 편히 잠을 잔 사람이 드물어졌다. 서재에서건 침실에서건 걸어 닫힌 문안에서 “자죽!”하고 부르는 사상회의 목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밤중에 그가 자죽의 모습이 담긴 거울을 보며 실제 사람을 대하듯 이런저런 얘기를 해대는 통에, 문간방에서 잠자던 하인 진대陳大의 다섯 살 된 아들이 꿈을 꾸다 가위에 눌리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금릉 시내에서 실성한 사상회와 그가 애타게 부르는 자죽 아가씨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물론 소문이 그렇게 빨리 퍼지게 된 데에는 아는 손님을 만날 때마다 그래도 사상회가 한 때는 총기가 넘치던 청년이었고, 비록 ‘애송이 도사’라고 놀리긴 했지만 착실하고 공부도 많이 한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는 천화루 사장 장이의 동정어린 이야기가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한 동안 모두들 쉬쉬했지만, 결국 이런 소문은 결국 자죽의 집안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고 말았다. 난데없이 외출금지 처분을 받은 자죽 본인이 누구보다 소문의 진상을 궁금해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상회가 자신을 연모하다 미쳐버렸다는 것은 신붓감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조금은 올려놓을 것인지라 은근히 자랑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의 소문이란 대개 나쁜 쪽으로 흐르기 마련인지라 걱정스러운 면이 더 많았다. 가령 알고 보니 둘이 부모 몰래 사귀던 사이였는데 자죽이 만나주지 않는 바람에 사상회가 미쳐버렸다는 식으로 구설수가 바뀌는 것도 어쩌면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을 듯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은밀히 사상회의 집으로 하녀를 보내 진상을 알아보게 했다. 그리고 사상회가 거울에 그녀의 모습을 담은 지 꼭 백일이 되던 날,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자죽의 집에서 정식으로 그를 초대했으니, 뒷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위 이야기에 묘사된 컴퓨터의 기능이 서구의 또는 현대의 컴퓨터에서 발견되는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기계 장치의 측면에서는 오늘날 흔히 보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컴퓨터와 억지스러우나마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기능적 차원에서도 인간의 두뇌로 감당하기 어려운 방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및 신속하게 검색한다는 점은 현대 컴퓨터의 여러 기능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책상 컴퓨터’는 단순 계산의 반복과 같은 기계적 자동화 작업의 편리화를 추구한다는 현대 컴퓨터의 초기 단계를 처음부터 건너뛴 상태로 고안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고대 중국인이 상상한 컴퓨터는 기계 자체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대한 꼼꼼한 ‘연구’가 없이 결과적으로 소망하는 기능을 완비한 하나의 완성품으로 상상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박물학적 지식과 미래 예측에 관한 인간의 보편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이상적 도구라는 측면만 반영한 상상적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필요성과 결과적인 기능성을 중시한 상상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의 컴퓨터는 다른 무엇도 아닌 ‘책상’의 형상을 닮아야 했을 것이다. 기왕에 제작의 과정을 고민할 필요 없는 하나의 완성품을 상상했다면, 아예 비서처럼 따라다니는 로봇처럼 시각적 효과가 더 큰 장치를 떠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최근의 어느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홀로그래피holography를 이용한 멋진 사이버 미녀와 음성과 시각을 모두 이용한 입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입출력 장치를 대신하는 방법을 상상하기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고대의 중국인은 이렇게 더 짜릿한 상상을 포기하고, 기껏 상상해낸 컴퓨터를 칙칙한 책상 따위의 모습에 비유했을까?
관점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이것이 어쩌면 어떤 일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의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지식의 축적과 일반론의 구축을 바탕으로 한 미래 예측의 능력은 이미 은殷나라 때의 왕족과 주周나라 이래의 무사巫史 계층에서 특권화·신비화해온 능력이었는데, 그들의 후계자인 문인文人 사대부士大夫들에게도 그런 성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것은 일종의 그들만의 연금술鍊金術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종류의 지식과 일반론의 구축 과정이 함부로 공개되거나 공개될 여지가 많은 형식을 띠어서는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리고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면,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가 자기만의 서재에 은밀히 보관된 책상의 형태를 가지도록 상상된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한편, 망원경이나 사진기가 거울의 모습으로 묘사된 데에도 특별한 상관성이 내재해 있다. 중국에서 거울은 종종 사악하고 위선적인 것의 정체를 밝혀 쫓아내는 주술적 상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종종 어둠을 밝히거나 모호한 사물의 본질을 비쳐보는 도구로서, 당唐나라 때 왕도王度가 썼다는 《고경기古鏡記》처럼 종종 신비한 이야기의 소재가 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중국의 이야기 속에서 거울이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비추는 망원경과 같은 특별한 도구로 묘사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이처럼 단순히 사물의 외형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참 모습을 비추고, 심지어 그것을 둥근 원에 담아 가둬버리는 거울은 그러므로 형상[形]과 정신[神]의 조화를 중시하는 고대 중국인들에게 종종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즉 그들은 백魄과 혼魂의 조화로운 통일체로서 인간이 거울에 모습을 ‘빼앗기면’ 그와 더불어 영혼도 잃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잠재적인 두려움을 가지곤 했던 것이다. 물론 위 이야기에서 거울이 이런 잠재적 공포의 대상으로서 기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형상의 지배(혹은 소유)가 곧 영혼의 지배(혹은 소유)로 연결된다는 생각은 본질적으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은 특별한 거울 즉, 특별한 사진기를 통해 첫눈에 반한 여인의 형상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눈치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위 이야기의 길이가 이처럼 긴 것은 역시 몇 가지 짤막한 이야기를 뒤섞어놓았기 때문이다. 음성과 감정 인식은 물론 심지어 주인의 마음까지 읽는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사상회의 신비한 책상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된 《낭현기》에는 북송北宋 초기에 쓰촨성四川省 러즈현樂至縣에 살았던 방교方喬라는 남자가 어느 도사가 전해준 신비한 사진기(거울) 덕분에 아리따운 미녀 자죽과 결혼하게 된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다. 이를 토대로 새로 엮어낸 위 이야기는 컴퓨터의 주인인 사상회가 자죽과 결혼하도록 역할을 확장하여 대입시킨 점을 빼면, 원래 이야기의 기본적인 틀은 크게 바꾸지 않았다. 또한 서두의 망원경에 대한 이야기는 후당後唐의 풍지馮贄가 편찬했다는 《운선산록雲仙散錄》(《운선잡기雲仙雜記》라고도 함)에 수록된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필자가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은 고대 중국인들의 과학적 상상력을 ‘소개’하기 위함이지, 주제넘게 《서유기西遊記》의 상상력을 토대로 《드래곤 볼》을 만들어내듯 새로운 ‘창작’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력을 소재로 또 다른 《은행나무 침대》와 같은 멋진 영화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고, 그것은 이 글의 독자들 가운데 정말 이야기에 재능이 있는 누군가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