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화열전海上花列傳제1회 1

제1회 조박재는 함과가의 외삼촌을 방문하고
홍선경은 취수당의 중매를 서다
趙樸齋鹹瓜街訪舅 洪善卿聚秀堂做媒

이 장편 소설은 화야련농(花也憐儂)1이 지었고, 제목은 《해상화열전》입니다.

상해가 개항한 후 남쪽 홍등가는 날로 번창해갔고 그곳에 빠져 지내는 젊은 화류객들도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부모형제의 만류도 외면하고 스승과 친구의 충고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우매하고 무지한지요. 이는 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이겠지요.

그곳에서는 서로 추파를 던지며 유혹을 하는 등 온갖 애정 행각이 벌어지지요. 본인들이야 그 재미에 흠뻑 빠져 있겠지만, 그 모습들을 묘사하면 금방이라도 토할 듯 역겨울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정신을 차려 그곳을 완전히 잊고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야련농은 보살심으로 장광설을 발휘하여 그들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였습니다. 유사한 사건을 연결하여 엮되 때로 과장되게 꾸미기도 하여 생생함을 더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음란하거나 외설적인 글 한 자 없으며, 전체를 보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독자들이 이들의 행적을 좇아 낱낱이 살피고 그 의미를 깨치게 되면, 이들이 앞에선 서시(西施)보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뒤에선 야차(夜叉)보다 악랄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지금이야 조강지처보다 살갑고 다정하게 대하지만 지나고 나면 전갈보다 표독스럽게 변하리라는 것을 점치게 될 것입니다.

이 또한 잠에서 깨어나려는 순간, 새벽종 소리를 듣고 문득 인생의 깊은 이치를 성찰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야련농이 《해상화열전》을 지은 이유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을 쓴 화야련농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는지요? 화야련농은 원래 괴안국2 북쪽에 있는 흑첨향3의 주인 지리씨4로, 일찍이 천록대부5를 지냈지요. 진(晉)나라 때 예천군공6에 봉해져 중향국7의 온유향8으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화야련농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화야련농은 원래 흑첨향의 주인이었던지라 매일 꿈을 꾸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꿈이라고 믿지 않고 현실이라 여겨 이 꿈들을 책으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렇듯 꿈속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다 엮고 난 후에야 그 책 속의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그곳에서 꿈만 꾸지 말고 이 책을 한번 읽어 보는 게 어떠실런지요.

이 소설은 화야련농의 꿈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화야련농이 어떻게 꿈 속으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불현듯 그의 몸이 둥실둥실 떠올라 마치 구름이 안개를 재촉하듯 정처 없이 굴러다니는가 싶더니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원래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니었지요. 앞뒤 좌우를 둘러보아도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는 아득하고 끝없는 꽃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꽃바다, 다시 말해 ‘화해(花海)’라는 두 글자가 결코 지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원래 이 바다에는 물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가지에 잎이 달린 수많은 꽃송이가 평평하고 솜처럼 푹신해 보이는 게 마치 수놓은 방석과 비단 융단처럼 바다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화야련농은 그 꽃들만 보고 물은 보지 못한 채 마냥 좋아 덩실덩실 흥에 겨워 춤을 추었지요. 그는 이 바다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고, 땅 위에 있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그곳을 차마 떠나질 못했답니다. 그러나 그 꽃들은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달려 있긴 했지만 모두 뿌리가 없었습니다. 꽃 아래는 바로 바닷물이어서 바닷물이 일렁이면 그 꽃들도 파도와 함께 일렁이다 멈추곤 했습니다. 만약 꽃들이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이나 질투심 많은 앵무새와 제비를 만나지 않으면 메뚜기, 쇠똥구리, 두꺼비, 땅강아지, 개미 같은 벌레들에게 마구 내몰리거나 욕보여 무참하게 찢기었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화려한 복사꽃이나 화사한 오얏꽃, 기품이 있는 모란꽃쯤 되어야 황하강의 우뚝 선 지주산처럼 꿋꿋하게 버티며 뭇 꽃들 속에서 기운을 뿜어내고, 또한 국화같이 빼어나고 매화같이 고고하며 난초같이 빈산에 홀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연꽃같이 진흙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아야 그 모든 굴욕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그 꽃들조차도 시들어버리고 말지요.

화야련농은 이러한 광경을 목도하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참담한 심정을 금치 못하고, 이 일희일비도 무의미하여 결국에는 자신을 해치게 되는 듯하니 그의 마음은 더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그 순간 광풍이 불어 닥쳐 몸을 휘청거리다 발을 헛디뎌 꽃 틈으로 빠져 꽃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화야련농은 비명을 지르고,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이미 천길 아래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떨어진 곳에서 눈을 뜨고 보니 그곳은 상해의 현성과 조계지 경계에 있는 육가석교(陸家石橋)였지요. 화야련농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야 오늘이 이월 십이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이른 새벽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다 그만 길을 잘못 들어 꽃바다에 빠져 넘어졌고, 다행히 넘어지는 바람에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죠. 그는 수많은 일들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 한바탕 꿈을 꾸었구나.”

화야련농은 잠깐 동안의 이 기이한 경험에 탄식했습니다.

이 화야련농이 정말 꿈에서 깨어났을까요? 독자 여러분도 이 수수께끼가 어떻게 풀릴지 한번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1 농(儂)은 상해어로 ‘당신’을 의미한다. 화야련농이라는 필명은 ‘꽃도 당신을 가련히 여기다’라는 뜻이다.
2 槐安國 : 꿈속의 나라
3 黑甛鄕 : 꿈
4 趾離氏 : 꿈의 신
5 천록(天祿)은 술의 대명사이다.
6 예천(醴泉) 역시 술의 대명사이다.
7 衆香國 : 백화가 활짝 핀 공간. 기루, 화류계를 의미한다.
8 溫柔鄕 : 화류계

按:此一大說部書,係花也憐儂所著,名曰《海上花列傳》。祇因海上自通商以來,南部煙花日新月盛,凡冶遊子弟傾覆流離於狎邪者,不知凡幾。雖有父兄,禁之不可;雖有師友,諫之不從。此豈其冥頑不靈哉?獨不得一過來人為之現身說法耳!方其目挑心許,百樣綢繆,當局者津津乎若有味焉;一經描摹出來,便覺令人欲嘔,其有不爽然若失、廢然自返者乎?

花也憐儂具菩提心,運廣長舌,寫照傳神,屬辭比事,點綴渲染,躍躍如生,卻絕無半個淫褻穢污字樣,蓋總不離警覺提撕之旨云。苟閱者按跡尋蹤,心通其意,見當前之媚於西子,即可知背後之潑於夜叉;見今日之密於糟糠,即可卜他年之毒於蛇蠍。也算得是欲覺晨鐘,發人深省者矣。此《海上花列傳》之所以作也。

看官,你道這花也憐儂究是何等樣人?原來,古槐安國之北,有黑甜鄉。其主者曰趾禽氏,嘗仕為天祿大夫,晉封醴泉郡公,乃流離於眾香國之溫柔鄉,而自號花也憐儂云。所以,花也憐儂實是黑甜鄉主人,日日在夢中過活,自己偏不信是夢,祇當真的,作起書來。及至捏造了這一部夢中之書,然後喚醒了那一場書中之夢。看官啊,你不要祇在那裏做夢,且看看這書倒也無啥。

這書即從花也憐儂一夢而起。也不知花也憐儂如何到了夢中,祇覺得自己身子飄飄蕩蕩,把握不定,好似雲催霧趕的滾了去。舉首一望,已不在本原之地了,前後左右,尋不出一條道路,竟是一大片浩淼蒼茫、無邊無際的花海。看官須知道,「花海」二字,不是杜撰的。祇因這海本來沒有甚麼水,祇有無數花朵,連枝帶葉,漂在海面上,又平勻,又綿軟,渾如繡茵錦罽一般,竟把海水都蓋住了。

花也憐儂祇見花,不見水,喜得手舞足蹈起來,並不去理會這海的闊若千頃,深若千尋,還當在平地上似的,躑躅留連,不忍捨去。不料那花雖然枝葉扶疏,卻都是沒有根蒂的。花底下即是海水,被海水沖激起來,那花也祇得隨波逐流,聽其所止。若不是遇著了蝶浪蜂狂,鶯欺燕妒,就為那蚱蜢、蜣螂、蝦蟆、螻蟻之屬,一味的披猖折辱,狼籍蹂躪。惟夭如桃,穠如李,富貴如牡丹,猶能砥柱中流,為群芳吐氣;至於菊之秀逸,梅之孤高,蘭之空山自芳,蓮之出水不染,那裏禁得起一些委屈,早已沉淪汨沒於其間。

花也憐儂見此光景,輒有所感,又不禁愴然悲之。這一喜一悲也不打緊,祇反害了自己,更覺得心慌意亂,目眩神搖;又被罡風一吹,身子越發亂撞亂磕的,登時闖空了一腳,便從那花縫裏陷溺下去,競跌在花海中了。

花也憐儂大叫一聲,待要掙扎,早已一落千丈,直墜至地。卻正墜在一處,睜眼看時,乃是上海地面華洋交界的陸家石橋。花也憐儂揉揉眼睛,立定了腳跟,方記得今日是二月十二日。大清早起,從家裏出門,走了錯路,混入花海裏面,翻了一個筋斗,幸虧這一跌倒跌醒了。回想適纔多少情事,歷歷在目,自覺好笑道:「竟做了一場大夢。」嘆息怪詫了一回。

看官,你道這花也憐儂究竟醒了不曾?請各位猜一猜這啞謎兒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