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진종선이 매화고개에서 아내를 잃어버리다陳從善梅嶺失渾家 2

진종선이 매화고개에서 아내를 잃어버리다 2

진종선은 왕길과 함께 망루에서 4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이날은 달이 밝았다. 진종선과 왕길 두 사람은 별빛 아래에서 객점도 없고, 인가도 없음을 확인하고 혼이저 멀리 다 빠져버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진종선은 하는 수 없이 왕길에게 등짐을 지게하고자신은 말에 올라타고서 달빛 아래에서 길을 떠났다. 길 위에서 진종선은 생각에 잠겼다.

“대체 누가 이런 도술을 부려 객점을 만들어내고 내 아내를 도적질해 간 것일까? 세상에 이런 기이한 일이다 있는가.”

진종선은 길을 가면서도 울음 울었다.

“아, 내 마누라의 행적을 종잡을 수조차 없구나.”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걷노라니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왕길이 진종선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나리 잠시 걱정은 접어두시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시지요. 앞에 보이는 매화고개는 너무도 험난하고 울퉁불퉁하여 건너기가 어렵습니다만 사각진에 부임하시려면 그 고개를 넘어가야만 합니다. 일단 먼저 부임하신 다음 마님의 소식을 알아보시고 마님을 찾아오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진종선은 왕길의 말을 듣고서 차마 내키지 않았지만 억지로 길을 계속 걸었다.

한편, 신양공은 여춘을 안고서 동굴로 돌아왔다. 여춘은 놀라서 혼비백산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나더니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이 동굴에 먼저 와 있던 여인이 있었으니 이름이 모란牡丹이라, 그녀 역시 오래전에 붙잡혀온 신세였다. 모란이 여춘에게 다가와 너무 걱정하지말라고 달래주었다. 신양공이 여춘에게 말했다.

“이 몸하고 그대가 전생에 인연이 있는지라 그대가 이렇게 이 동굴에 오게 된 것이라. 이곳은 별천지라. 그대는 내 동굴의 신선 복숭아, 신선의 술, 검은깨 밥을 먹으라. 그러면 그대는 불로장생하리라. 동굴 안에있는 저 여신선도 인간세상에서 내가 데려온 거네. 그대는 고민하지 말라. 나랑 같이 신방에 들어 운우지정을 나누도록 하자.”

여춘은 그 말을 듣고 더욱 애절하게 울면서 신양공에게 하소연했다.

“저는 이 동굴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이나 불로장생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보통사람들처럼 살다가 죽기를 원하나이다. 더군다나 운우지정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신양공은 여춘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저 여인에게 마음이 동하였으나 저 여인은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구나. 저 여인이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데 내가 저 여인을 억지로 차지하려 들면 분명 목숨을 버리고자 할 터이니 그럼저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신양공은 금련동주金蓮洞主를 불렀다. 금련동주 역시 신양공이 붙잡아온 여인으로 이 동굴에온지 이미 몇 년이 지났다. 신양공이 금련동주에게 당부하였다.

“여춘에게 잘 권해봐. 어쨌든 좋은 말로 잘 구슬려서 그녀의 마음을 돌려봐.”

금련동주는 여춘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술과 음식을 내놓았다. 여춘은 술도 음식도 입에대지 않고 근심걱정만 하였다. 금련동주와 모란은 여러 차례 여춘을 달랬다.

“기왕에 붙잡혀온 신세인데 어쩔 수 없잖아요. 아, 처마가 낮으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여춘이 금련동주에게 대답하였다.

“언니들은 내가 이생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가 하룻밤에 저 요괴에게 붙잡혀 온 것을 아시기라도 하시는지요? 저에게 운우지정을 나누자고 강요하는데 절대로 그 말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죽음으로저의 정절을 지키고자 합니다. 옛말에도 열녀는 불사이부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죽었으면 죽었지 욕을당하고 싶진 않습니다.”

금련동주가 말하였다.

“산 아랫녘의 일이 궁금하면 거기를 지나온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하잖아요. 나도 동생과 똑같은 일을 똑같이 겪은 사람이라오. 나는 남웅부南雄府에서 살았고 남편도 돈 많고 번듯한 사람이었다오. 하지만 저 신양공에게 붙들려 이 동굴에 온지도 벌써 5년이 지나버렸네요. 동생이 보기에 저 신양공은 참 험상궂게 생겼을 것이오. 실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였지요. 그러나 저 얼굴도 오래 보다보니 그래도 봐줄만 하더이다. 동생 역시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저 신양공의 말을 듣는 게 나을 거요.”

여춘은 그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내며 욕을 하였다.

“당신들처럼 저질스럽고 천박한 여인들이야 모욕을 당하면서도 구차하게 목숨 부지하고 살진 몰라도 나는그런 여자가 아니야!”금련동주가 그 말을 듣고선 이렇게 말했다.

“좋은 말로 타이르는데도 듣지를 않으니 화를 당해도 싸지.”

금련동주는 신양공에게 돌아가 보고하였다.

“새로 데려온 여인은 도시 말을 듣지 아니하고 악담을 퍼부으며 아무리 권해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신양공이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다.

“저런 망할 것이 이렇게 예의를 모르다니. 쇠망치로 때려죽일 것이로되, 용모가 아까워 살려두었던 것을 이렇게 고집을 피우며 말을 듣지 아니하니, 이를 어쩐다!”

신양공이 모란을 바라보면서 당부하였다.

“네가 저 년을 좀 맡아줘야겠어. 저년의 머리카락을 눈썹 아래로 못 내려오게 싹둑 잘라버리고 그리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버리고 신발도 벗긴 다음 산에서 물을 길어 꽃과 나무에 물을 주게 하고 하루 세 끼도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여라.”

그 말을 듣고서 모란은 여춘의 머리를 깎아버리고 두 발에서 신발을 벗기고 물 양동이를 건네주었다. 여춘은 계곡 아래로 몸을 던져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만약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겨 나의 재앙을 거두어가시고 복을 내려주셔서 낭군님을 만날 날이 있을 수도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여춘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물을 길었다. 정말로:

괴롭고 힘들어도 정절을 지키는 여인이 되리,
욕심 많고 음란한 비천한 사람이 되진 않으리라.

진종선의 아내 여춘이 신양동에서 고생하는 이야기는 여기서 접자. 한편, 진종선은 왕길과 동경을 떠난 지 두 달여, 매화 고개 북쪽에 이르러 신양공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그 아내를 찾을길이 막막하였다. 왕길이 우선 임지로 가서 부임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득하니 진종선은 그곳을포기하고 떠나온 것이라. 앞선 촌락에 주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진종선은 주점 문 앞에 다가가말에서 내려 왕길과 함께 주점 안으로 들어가 술과 음식을 사서 먹고는 술과 음식값을 치르고다시 말을 타고 떠나갔다. 매화 고개 아래쪽에 초가집이 하나 보이니 바로 점을 치는 집이라.

‘길흉화복을 족집게처럼 맞추는 신기가 넘치는 양전간楊殿幹 점집’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진종선은 점집 앞에 도착하여 말안장에서 내려 점집 안으로 들어가 양전간을 만났다. 양전간이 물었다.

“무슨 일로 오시었소?”

진종선이 지난 밤 아내를 잃어버린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다. 양전간이 향을 피우고 신을 청하니 진종선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축도하였다. 양전간이 점괘를 잡아내었는지 붓을 들어 네 구절의 점사를 적었다. 시에 이르기를:

이 재난은 천 일 가겠구나,
그 여인은 의지 또한 굳도다.
자양진군이 찾아오는 그날,
깨진 거울이 다시 합쳐지겠구나.

양전간이 입을 열어 점사를 풀어주었다.

“그대는 너무 심려하지 마시오. 그대 부인께서는 천일의 횡액에 빠졌소이다. 3년 후에 자양진군을 다시 만나면 그대 부부 역시 다시 상봉할 것이오.”

진종선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일찍이 동경에서 자양진군을 만났을 때 자양진군이 나동을 우리에게 붙여주셨는데 나동이 귀찮게군다고 우리가 그 나동을 돌려보내지 않았는가. 수천 리 먼 길에 떨어져 있는 자양진군을 어떻게 여기로모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진종선은 그래도 마음이 조금이 놓이는지라 복채를 지불하고 양전간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말에 올라타 왕길과 함께 매화고개를 올랐다. 진종선이 매화고개를 바라보니 진정 험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세상 험준한 길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대유大庾산맥 매화고개가 가장 힘들다 대답하리.
엄니를 가는 호랑이가 떼를 지어 달려가고,
독기를 품는 왕뱀이 땅바닥에 굼실대네.

진종선은 왕길과 같이 매화고개를 넘었다. 고개 남쪽 20리 되는 곳에 작은 정자가 있었으니이름이 접관정接官亭, 즉 부임하는 관리를 맞는 정자라. 진종선은 말에서 내려 정자로 들어가잠시 쉬었다. 이 때 갑자기 왕길이 보고를 하였다.

“남웅 사각진 순검아문巡檢衙門의 호위병들이 나리를 맞으러 왔습니다.”

진종선은 그들을 들어오라 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호위병들과 함께말을 타고 임지로 출발하였다. 관아에 도착하여 현청에 오르니 뭇사람들이 인사를 올렸다. 진종선이 사각진에서 일을 처리함이 청렴하고도 근엄하기 그지없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갔으니, 정말로:

손가락 튕길 정도의 짧은 시간에 창밖의 햇빛은 지나가 버리고,

잠깐 앉아 있는 사이 테이블 앞에 꽃 그림자가 옮겨 앉았네.

진종선이 사각진에 부임한 지도 어언 1년이 넘었다. 그 동안 사람을 보내어 아내 여춘의 소식을 알아보았으나 도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는 바로:

동해바다 바닥에 돌멩이가 가라앉은 듯,
날고 있던 종이연의 끈이 떨어진 듯.

아내 여춘의 소식을 알 수 없는 진종선은 너무도 답답하였다. 진종선은 아내 생각에 하루 종일 눈물만 흘렸다.

진종선이 아내 생각에 푹 빠져 있을 때 호위병이 득달같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나리, 큰일 났습니다. 지금 남웅부 부윤께서 서찰을 보내와 상황을 알려주셨사옵니다. 양광楊廣이라는 도적, 그 도적의 별명은 진산鎭山의 호랑이라고 하는데, 5,7백 명의 졸개들을 모아서 남림촌南林村을 점거하고선 인가를 약탈하고 살인과 방화를 일삼아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합니다. 서찰에서는 또한 나리에게 어서 서둘러 휘하의 장병 1천여 명을 거느리고 무기를 갖춘 다음 도적떼를 수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진종선은 그 말을 듣고 즉시 무기를 챙기고 말안장을 씌운 다음 갑옷을 갖춰 입고 1천의 병사를 거느리고 남림촌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그때 남림촌의 양광은 산채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졸개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관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양광은 칼을 차고 말에 올라타 징소리를 울리게 하며 5백 명의 졸개를 거느리고서 관군을 맞아 싸우러 달려 나갔다. 진종선과 양광은 말대거리도 생략하고 바로 싸우기 시작하였다. 도적떼가 어찌 관군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십 합이 못 되어 진종선은 창으로 양광을 꿰어 말 아래로떨어뜨리고 머리를 베어버리고 졸개들을 도륙하였다. 진종선은 도적들의 머리를 꿰어 들고 남웅부 관아로 돌아와 부윤에게 바쳤다. 부윤은 크게 기뻐하며 진종선에게 상급을 내렸다. 진종선은자신의 순검 관아로 돌아와 술잔치를 열었다. 양광의 머리를 베어버린 일로 말미암아, 정말로:

그 명성이 남웅부에 크게 떨치고,
절륜한 무예는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게 되었구나.

진종선이 남웅부 사각진에 부임한 지도 어언 3년이 되었다. 이제 임기가 찼으니 신임 관리와교대할 때가 되었다. 진종선은 짐을 꾸리고 왕길과 함께 사각진을 출발하여 이틀거리를 하루에당겨 걸으니 마침내 유령庾嶺 아래에 도착하였다. 붉은 해는 서산에 기웃기웃 날이 저물었다.

진종선 일행은 멀리 소나무 숲 속에 절이 하나 있는 걸 발견하였다. 왕길이 진종선에게 아뢰었다.

“나리 저쪽에 절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오늘 머물도록 하시지요.”

진종선이 말 재갈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가보니 절의 현판에 ‘홍련사紅蓮寺’라는 황금색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진종선은 말에서 내려 왕길과 함께 절 안으로 들어갔다. 이 절의 주지는 전대혜선사旃大惠禪師로 법력이 광대하고 덕행이 높은 스님으로 부처의 화신으로 숭앙받았다.

행자가 주지에게 아뢰었다.

“지나가는 과객이 하루 묵고자 합니다.”

주지가 행자에게 모시라 하니 진종선은 방 안으로 들어가 주지를 뵈었다. 인사를 올리니 주지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이신지요?”

진종선이 자신의 소경력을 아뢰었다.

“자비로우신 스님께서 저에게 아내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그 크신 은혜를 잊지 않겠나이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그대의 부인을 뺏어간 일은 바로 천 년 묵은 흰 원숭이 요물이 한 짓이오. 그놈은도술이 변화막측하다오. 그대 부인은 성정이 곧아 절개를 굽히지 않아 그 요물한테 머리카락을 잘린 채 신발도 신지 못하고 물을 길어 화초에 물을 주는 힘든 일을 하고 있소. 그 요물은 신양공이라 불린다오. 그 신양공은 이 절에 와서 설법을 듣곤 한다오. 그대가 부인을 만나고자 한다면 이 절에 좀 더 머물도록 하시오. 그러다 신양공이 찾아오면 내가 그를 잘 설득하여 그대 부인을 풀어주도록 할 것이오. 그대 생각은 어떠시오?”

진종선은 주지 스님의 말을 듣고 너무도 기뻐하며 절에 머물게 되었다. 바야흐로:

오리 쯤 걸으면 닿은 작은 봉우리,
그 봉우리에서 또 길은 동서남북으로 갈리네.
세상의 길 잃은 나그네들,
저 손가락이 가리키는 걸 따라 큰 길로 나아오네.

출처 堆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