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망언姑妄言 자서自序 자평自評

自序

夫余之此書,不名曰「眞」而名曰「妄」者,何哉?以余視之,今之衣冠中人妄,富貴中人妄,勢利中人妄,豪華中人妄,雖一舉一動之間而未嘗不妄,何也?以余之醒視彼之昏故耳。至於他人,聞余一言曰妄,見余一事曰妄;余飲酒而人曰妄,余讀書而人亦曰妄,何也?以彼之富視余之貧故耳。我旣以人爲妄,而人又以我爲妄。蓋宇宙之內,彼此無不可以爲妄。嗚呼!況余之是書,孰不以爲妄耶?故不得不名之妄言也。然妄乎不妄乎,知心者鑒之耳。

時雍正庚戌中元之次日 三韓曹去晶 編於獨醒園

제가 이 책을 ‘진실된 말’이라 이름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지은 것는 무슨 까닭일까요? 제가 보기에, 오늘날 옷 잘 입고, 돈 많고, 권세와 이익을 탐하며, 화려함 속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터무니없습니다. 비록 행동 하나 하나라고 해도 터무니없지 않은 것이 없으니 왜일까요? 저는 정신차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볼 뿐입니다.

다른 이들은 제 말 한마디에 터무니없다고 하고, 제 행동 하나에 터무니없다고 합니다. 제가 술을 마셔도, 책을 읽어도 또한 터무니없다고 하죠. 왜 그럴까요? 돈 많은 그들은 저를 가난하다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터무니없다 여기고, 사람들 또한 저를 터무니없다 여깁니다. 어쩌면 이 우주 안에서 서로 터무니없지 않은 것이 없겠지요. 아….! 하물며 제가 쓴 이 책을 누가 터무니없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터무니없는 말妄言’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지 아닌지는 마음을 아는 이만이 살필 수 있을 뿐이겠지요.

옹정 경술년 백중날 다음 날 (1720년 음력 7월16일), 삼한 조거정이 독성원에서 엮다.

自評

余著是書,豈敢有意罵人?無非一片菩提心,勸人向善耳。內中善惡貞淫,各有報應。句雖鄙俚,然隱微曲折,其細如髮,始終照應,絲毫不爽。明眼諸公見之,一目自能了然,不可負余一片苦心。其次者,但觀其皮毛,若曰不過是一篇大勸世文耳,此猶可言也。倘遇略識數字,以看鼓詞之才學眼力看之,但曰好村好村,此乃諸公爲腹所負自村耳,非關余書之村也。求其不看爲幸。何故?諸公自恐其汙目,余更恐其汙書。

書於獨醒園

어찌 감히 사람을 비난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썼겠습니까? 모두 한 조각 보리심으로 착하게 살 것을 권유할 뿐입니다. 책 속의 선과 악, 정절과 음란은 각기 인과응보가 있습니다. 문장은 비록 저속하지만 그 안에는 미묘하고 복잡한 사연이 있고, 그 섬세함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가늘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관성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눈이 밝은 이들이 보면, 한눈에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며, 제가 고심한 것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다음 책을 피상적으로 보는 이라면 이 책이 그저 착하게 살기를 권하는 글이라고 할 것이니 그것도 일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몇 글자 정도 아는 이가, 북을 두드리며 이야기와 노래를 하는 만담鼓詞처럼 제 책을 보며 그저 “정말 저속하군 저속해”라고 한다면 이는 자신을 기만하고 그 스스로 저속한 것일 뿐, 제 책이 저속한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이들은 책을 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구요? 여러분은 눈이 더러워질까 두렵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제 책을 더럽힐까 훨씬 더 두렵기 때문입니다.

독성원에서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