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곁에 두고 자주 꺼내보는 애독서가 있다. 최근 내 겨드랑이 사이로 한 권이 더 끼어들었다. 가와다 준조 지음/임경택 옮김, [무문자 사회의 역사: 서아프리카 모시족의 사례를 중심으로](논형, 2004)다.
요즘 초기 국가에 관한 구전 전승과 최초 문자 기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교수직을 마다하고 거의 평생을 위스콘신대학 도서관의 사서로 복무한 데이비드 헤니지(David P. Henige)라는 서지학자의 “구전 전통과 연대기” 연구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The Chronology of Oral Tradition: Quest for a Chimera[Oxford, 1974])
많은 초기 국가 사회에서 과거를 가늠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왕의 명단이나 계보를 통해서였는데, 이는 대부분의 왕조가 가지고 있던 연대기를 통해 구현되었다. 구전을 통해 전승된 그 계보에는 많은 왜곡이 있었고, 대체로 그 주종은 과거 늘리기였다. 다양한 초기 국가와 사회의 사례를 검토한 헤니지의 연구에서 두드러진 가장 흔한 왜곡 방법은 한 지역에서 일정 시기에 병존했을 여러 정치체 수장들의 명단이 후대에 문자기록을 통해 순차적인 단일 계보로 정리되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존재했던 고대에 대한 존숭이 단일한 계보의 긴 역사 만들기를 추동했을 것이다. 구전 계보의 정확성에 대체로 부정적인 헤니지가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그 부풀려진 연대기 속의 계보에 포함된 이름 그 자체는 날조된 경우 못지않게 정확하게 전승된 것도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아프리카사 전문가이기도 한 헤니지의 1970년대 초반 연구에서 더 진전된 다른 연구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대학원생들과 이 문제로 대화를 나누다 한 학생이 가와다 준조의 연구를 소개해줘 며칠 동안 정독하며 빠져들었다.
1934년 생인 가와다는 1960년대 파리5대학에 유학한 인류학자로 오랜 기간 서아프리카 오토볼타(현재는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의 모시족 무문자 사회 역사를 연구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문자는 인류 역사의 긴 과정에서는 오히려 이례적 현상일 수 있다고 본다. 무문자 사회에도 나름대로의 역사 전승 방법이 있었고, 그 역사의 연구가 문자사회의 역사 연구에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1971년 완성한 박사논문을 토대로 수 년 동안 [思想]이라는 잡지에 연재한 내용을 1976년 책으로 묶어내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주 목적이 앞에서 언급한 헤니지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우선 모시족의 구전 역사 전승에 집중했다. 두 대가는 같은 시기에 비슷한 주제로 연구를 남겼지만 서로의 연구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니지가 가와다의 연구를 참고했더라면 훨씬 심도 있는 연구에 이르렀을 것이다.
전체 20장으로 구성된 [무문자 사회의 역사]의 전반부에서 가와다는 모시족의 계보 구술 전통을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왕의 계보를 중심으로 한 역사는 주로 중요한 제사 의식 때 정중하게 낭송되었고, 때로는 북 소리로만 표현되기도 했다. 그 계보를 정리하고 암송할 수 있는 사람은 모시족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지닌 벤다라고 부르는 이야기꾼이자 악사였다. 가와다는 이러한 구전의 역사를 “긴 시대를 관통하여 집합적인 기억이 아주 잘 끓여진 죽처럼 되어 현재로 흐르고 있는 것”(40쪽)으로 비유한다. “문화적 기억” 이론을 제창한 독일의 이집트학자 얀 아스만은 무문자 사회의 이러한 양상을 “의례적 지속성” 혹은 “의례적 일관성”이라 일컫는다.
20세기 이후 모시족 사회의 계보에 관심을 가진 가와다를 포함한 세 명의 연구자가 모시족의 벤다들로부터 구술로 전승되어 온 왕의 계보를 채록했다. 1908년 레오 프로베니우스(L. Frobenius)의 첫 번째 채록은 비슷한 뒤의 두 개(1953년 A. Prost; 1966년 가와다)와 달리 많이 짧았다. 따라서 결락이 많아 불충분한 채록으로 생각되어 전문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가와다는 자신의 분석을 통해 1908년 채록한 계보가 세대 수에 있어서는 1966년 자신이 채록한 것과 거의 일치함을 밝혀낸다. 계보 속 왕의 이름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이유는 종속된 왕조와 방계 수장들의 이름까지 단일 계보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1953년과 1966년 채록 정보를 제공한 벤다의 박학한 지식과 뛰어난 기억력 덕택에 더 긴 계보가 만들어졌으리라는 것이다(제 5장 계보의 병합). 헤니지의 연구를 충실히 보완해주는 이러한 현상은 사실 세계 최초의 문자화된 연대기인 메소포타미아의 왕명록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 흥미롭다.
한 사회 정치조직 안에서 만들어져 끊임없이 재창조된 이러한 역사 전승의 질은 그 전승을 보유하는 사회의 정치 조직과 깊은 관계가 있다. 대체로 강한 집권 조직의 계보 역사가 길고 깊다(113쪽). 모시족의 경우 그 전승 권한은 악사 중 최고 지위를 지닌 벤다와 그 장인 벤 나바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 자격 요건이 까다로웠고 원로들의 역할을 통해 정확성이 유지되며 전승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엄정성을 갖추고 있었다(132쪽). 이는 다른 무문자 사회에서도 비슷하다. 전문적 기억 전승자들은 최고의 신분을 누렸고, 그 엄정성이 훼손될 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초기 왕조의 긴 연대기가 전적으로 날조된 것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오히려 문자와 글에 익숙해진 뒤 그 계보에 살을 붙여서 다양한 기억이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얀 아스만은 구전에서 문자 문화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집단의 염원을 담은 문화적 기억이 창출된 양상을 제시한 바 있다.
내가 연구의 필요성 때문에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을 이 정도로 간략히 요약할 수 있겠지만, 가와다의 책은 이른바 역사시대에 포함되는 고대사 연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주옥같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구전 전승 사료의 절대연대 결정 문제(6장)와 그 반복되는 주제의 패턴(8장), 그 구연 전승이 문자 기록으로 정형화되는 모습(9장), 수장위의 계승(10장), 후반부에 나타나는 모시족의 구체적인 제도나 역사 발전 문제, 특히 작은 단위 마을의 역사가 근대 혹는 식민지화 이후 국가나 민족의 역사로 포함되는 과정(18장) 등은 현재에도 주목할 가치가 커 보인다.
1970년대 초반의 연구라고는 믿기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전통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기 쉬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198쪽)고 운을 뗀 제17장 “‘전통적’ 사회라는 허상”은 에릭 홉스봄이 연고권을 지니 고 있는 “만들어진 전통”의 원조 격 주장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시각에서 비롯된 아프리카의 후진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기된 이른 바 ‘아프리카의 재발견’에 대해서 가와다는 그것 역시 유럽인의 척도에 따른 재발견이라고 다음과 같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대제국 따위야 없으면 없는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 조직을 발달시 킨 적이 없는 역사가 있다고 한다면 그 편이 훨씬 자랑할 만한 역사가 아닐까?”(138쪽).
내가 한국사 왜소 콤플렉스에 대안적 사고로 제시하는 것과 비슷해서 반가웠지만, 한국에 서와 마찬가지로 아마 아프리카 현지 연구자들에게도 이 말은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 가와다 준조 같은 대단한 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며 그건 그 튼튼한 학문적 토양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우리의 갈 길이 더 멀어 보인다. 전북대 임 경택 교수께서 훌륭한 번역서를 선사했지만 학계의 반응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는 독서인들에게 필독서로 추천한다.